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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

감사하는 하루~

by 바람꽃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이른 아침부터 아파트 안에서도 느낄 수 있을만큼 거센 바람이 하루종일 불어대더니 오후가 되어서는 결국 뽀송뽀송한 솜털 같은 흰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부터!'라는 듯 토요일인 지금까지도 계속 '잠깐 쉬었다, 한동안 내렸다'를 반복하며 거의 일주일째 온 천지를 하얗게 뒤덮고 있다. 문득,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이 생각났다.

우리 지역에 이렇게 오랫동안 눈이 많이 내렸던 적이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기억이 까마득하다.

나보다 먼저 아침을 깨운 귀여운 동물 발자국 옆에 조심스럽게 나의 발자국을 새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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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입춘 한파’에 대해 글을 남겼다.

‘누군가를 위해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고생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하다’고.

그런데 오늘 난, 또 한번 진한 감동을 느끼게 되었고 그 상황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누고 싶어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단설유치원인데 방학이 없고, 며칠 동안의 자율등원 조차도 등원하는 유아들이 꾸준히 있어서 시일이 오래 걸리는 큰 공사나 수업에 방해될 만한 용역 작업 등은 대부분 주말에 한다.

행정실 관리자인 나의 입장에서는 할 수 없이 양해를 구하고 나를 포함한 3명의 직원들이 번갈아가며 주말 근무를 하면서 일을 마무리한다.

오늘은 각 교실 천정형 난방기 청소를 해야 하는 단순 작업이라 내가 근무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출근하기 위해 밖으로 나오니 온 세상은 눈 천지였고 어제까지만 해도 몇 번이나 쓸어냈던 유치원 주변은 인도를 포함해 보이는 모든 곳이 다시 새하얀 도화지가 되었다. 동장군은 지칠줄도 모르고 밤새 쌓인 눈 위에 더 높은 성을 짓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유치원에 대해 설명을 조금 덧붙이자면, 초등학교 부지 안에 자리 잡고 있어서 교문과 주차장을 같이 사용하고 있다.

조심조심 운전해서 직장에 도착한 시각이 오전 8시가 조금 넘었는데 옆에 있는 초등학교 건물 근처 언덕배기에서 어느 분이 열심히 눈을 치우고 계셨다.

‘초등학교는 방학 중인 데다가 주말이고, 이렇게 눈이 많이 쌓여서 방문할 사람도 거의 없을텐데 누가 저렇게 열심히 치우고 계실까?’ 생각하며 무심히 지나쳤다.

사무실에서 용역업체 사장님을 만나 교실을 안내 해주고 작업 지시를 하는 등 한참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창밖에서는 끊임없이 눈삽을 밀어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보니 초등학교 운동장 입구까지 거의 100미터 정도 이어진 길을 혼자 다 쓸어내고도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까지 쉬지 않고 계속 치우고 계셨다. 하늘은 여전히 흐렸고 장대비 같은 함박눈이 내렸다가 잠시 멈췄다를 반복하며 동장군은 종일 심술을 부리고 있었다.

오랜 시간 찬 바람을 맞으시는 것 같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막 끓인 뜨거운 물에 믹스커피를 타서 들고 나갔다. 연세가 제법 되어 보이시는 어르신 한분이 겉옷 하나만 걸치신 채로 묵묵히, 분주하게 움직이고 계셨다.

아래는 잠깐의 대화 내용이다.


나: 안녕하세요?, 저는 여기 유치원에 근무하는 직원인데 누구신가요?

A : 초등학교 봉사자인데요.(아마 지자체에서 지원해 주는 시니어 봉사자 중 한분이셨던 것 같다)

나: 혼자 너무 고생하시는 것 같은데 대충 하시고 들어가세요.

A : 원래는 두명이 더 와서 같이 했었는데 다른 분들은 먼저 가셨어요. 이렇게라도 해놓으면 다음에 눈이 와도 치우기 쉬어요. 출근하시는 분들도 다니시기 훨씬 좋을거에요.

나: 이렇게 고생하시면 오늘 일당 누가 챙겨줘요?

A : 원래 쉬는 날이라 수당은 없죠. 뭐 일당 생각하고 봉사하나요?

나: 날이 많이 차요. 지금 하신 것도 너무 많이 하셨어요. 감기드실까 염려되요. 어서 들어가세요.

A : 걱정 마세요. 하던 거 마저 하고 들어갈게요.

나: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는데 너무 고생해주셔서 감사해요. 건강하세요.


그렇게 짧은 대화를 마치고도 어르신은 고집스러울 정도로 오랜 시간 열심히 눈삽을 밀고 계셨다. 가끔씩 창밖을 내다보며 그만하시라고 몇 번을 말씀드려도 꿋꿋하게, 50여대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큰 주차장까지 깔끔하게 마무리하셨다.

나는 패딩까지 두꺼운 옷을 겹겹이 껴입고도 추웠는데 가벼운 차림으로 거의 3시간 동안 학교 주변을 홀로 쓸고 계시니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지만 무엇보다 잔잔한 감동이 스며들었다.


넓디 넒은 학교 주변을, 더군다나 사람들 왕래도 거의 없는 추운 겨울 토요일 아침에, 우리 집 앞마당처럼 쓸고 계시는 분이 조금은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렇게 안 보이는 곳에서 묵묵히, 열심히 손길 내밀어주신 덕분에 누군가는 또 미끄러지거나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겨울을 잘 지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따스해지면서 존경스러움과 훈훈함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내가 더 이상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고 개학하고 나면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렇게 좋은 분이 계셨다'고 두고두고 소문을 내야겠다. '너무너무 감사했고 감동이었다고!'

그리고 '백마디 말보다 행동으로 큰 가르침을 보여주신 어르신'이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바랬다.

퇴근 무렵이 되어서야 사무실에 내빈 접대용 율무차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조금 일찍 알았더라면 가시기 전에 따뜻하게 한잔 더 타드렸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미안함이 남았다.

조금은 시끄럽고 복잡한 요즘이지만 세상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고 종일 감사하는 하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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