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눈을 좋아한다.
한겨울에 태어나서 그런지 눈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가슴도 설레고 뛰어나가서 한바탕 눈을 굴리며 뒹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 놓고 마냥 눈을 좋아할 수만은 없다.
평일에는 출근도 해야 하는데다가 직장에서는 유아들 통학 차량이 운행되므로 자연스럽게 눈이 조금만 오기를 바라게 된다.
특히나 모두 잠든 새벽에 우리 지역에 5cm 이상 눈이 쌓이면 지자체 공무원인 남편은 위험한 도로에 나가 넉가래로 눈을 치워야 하기 때문에 이래저래 걱정이 많아진다.
어제가 '입춘'이었다.
이제 곧 봄 꽃이 필 거라는 생각에 창밖으로 내비치는 햇살이 유난히 좋아 보여 오랜만에 시원한 바람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려고 준비했었다.
솜털 달린 장갑도 끼고 가방도 최대한 가볍게 하고 단단히 무장을 한 채 현관을 나서려는데 밖에서 계속 낯익은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나 해서 창문을 열어보니 평소에 다소곳이 제 자리를 가만히 지키고 있는 크고 작은 나무들이 유난히 들썩이며 나뭇가지들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아뿔사! '입춘대길'이 아니라 '입춘 한파!'였다.
모처럼 큰맘 먹고 운동 삼아 자전거를 타보려고 했더니 또 날씨가 안 도와준다.
결국 다시 운전용 모드로 바꾸어 출근을 했다.
낮동안 계속 휘날리던 바람은 결국 눈보라까지 동원하더니 밤새 바쁘게 몰아치고 있었나 보다.
다음 날 아침, 남편은 결국 비상을 알리는 메세지를 받고 제설작업에 동원되어 미리 챙겨 놓은 두툼한 옷들을 두 겹씩 챙겨 입고 뒤뚱뒤뚱 걸어 나갔다. 나 역시도 다른 잡생각은 접어두고 넘어지지 않도록 온 신경을 집중해 엉금엉금 거북이가 되어 출근을 했다.
지금도 사무실 밖에는 간간이 햇볕도 비치지만 어제 내린 눈뭉치들과 섞여 눈발이 매섭게 휘날리고 있다.
그나마 낮에 내리는 눈은 오히려 금방 녹을 수 있으므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기상청에서는 이번 주 내내 대설경보와 폭설이 예보되어 있다고 해서 또 걱정이 앞선다.
당장 오늘 저녁에 전입자 환영을 위한 회식도 있는데 차도 없이 어떻게 가야 할지, 가면 또 어떻게 돌아와야 할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걱정이란 놈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도 끝도 없이 달려든다.
유치원 앞 작은 놀이터에는 눈 놀이를 하기 위해 꼬맹이들이 만들다 만 눈덩이가 이리저리 뒹굴고 있다.
현재의 상황을 아무리 걱정한다고 해도 어차피 결과는 바뀌지 않을테고 동전의 양면처럼 결국 누군가에게는 우려가 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즐거움을 갖게 되는 것 같다.
나 역시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은 미뤄두고 지금은 그저 예쁜 엽서같은 멋진 풍경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직원 중 한 분이 이런 말을 했다.
'아침에 눈이 와서 조금 일찍 집에서 출발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모습을 보게되어서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른 시각에 사람들이 모여 도로의 눈을 열심히 치워 주셨던 인상적인 모습과 우리 유치원 앞마당에 수북이 쌓인 하얀 눈도 유아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미리 쓸어주셔서 새삼 고마웠다'고!.
이렇게 추운 겨울, 누군가를 위해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고생해 주시는 분들께 나도 '꾸벅' 고개숙여 감사 인사를 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