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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캠핑

낭만을 위하여

by 바람꽃

설이나 추석이 되면 시댁 식구들은 시부모님과 함께 으레껏 큰 집에 모여서 지내기도 하고 가끔은 서로의 의견을 모아 펜션이나 숙박할 수 있는 장소를 빌려 명절을 보내기도 했다.

더군다나 이번 설 명절에는 우리 식구와 26년 동안 함께 사셨던 시부모님이 작년 한해에 모두 돌아가셔서 어느 곳을 가도 걸릴 것이 없었다. 월요일이 공휴일로 지정된 덕분에 휴일이 더 길어져서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나가는 반면 3형제들은 처음으로 겨울 캠핑을 즐겨보기로 했다.

기상청에서는 명절연휴동안 눈도 오고 가장 추울 거라고 예보했었는데 '나이 먹고 한겨울 혹한기 극복 캠프도 아니고 웬 생고생인가?' 싶어 처음에는 걱정도 되고 약간의 불만도 있었는데 나의 예상과 달리 오히려 캠핑장에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50개가 넘는 데크에 각양각색의 텐트가 가득했다.


조카 손주까지 거의 20명이 넘는 인원이 머물러야 해서 우선 작전을 세웠다.

캠핑장 데크는 여유 있게 2군데를 정하고 첫날은 3형제 부부와 시누이, 그리고 우리 애들을 포함해 총 10명 정도의 식구들이 제일 큰 텐트 안에서 다 함께 자고 다음 날에는 조카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잠시 들러 나머지 텐트에서 밥도 먹고 놀다가는 식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다들 큰 형님이 정해주시는 메뉴대로 고기, 술, 과일 등 다양한 음식과 각자의 준비물을 챙겨 월요일에 나주에 있는 캠핑장에서 만났다.


첫째 날!

오후 쯤 캠핑장에 도착했을 때 큰형님이 먼저 오셔서 큰 텐트를 치고 계셨는데 '바람이 너무 세서 풍선에 매달려 날아가 듯 몇 번 날라갈 뻔 했다는, 그래서 겨우겨우 붙잡고 서너번 시도한 끝에 힘겹게 세웠다'는 웃지 못 할 에피소드를 들으며 바람이 잦은 틈을 이용 해 다른 텐트 하나를 마저 마무리하고 각자가 챙겨 온 짐들을 풀었다.

'어디를 가든지 꼭 준비 해 놓은 물건 중 하나씩 빼먹기 일쑤!'인데 고기 구울 때 가장 중요한 숯!이 빠져서 추위도 녹이고 숯도 만들 겸 제일 먼저 모닥불을 피웠다. 남편은 미리 은행에 들러 빳빳한 세뱃돈을 준비했다면서 주머니를 뒤지더니 '앗차! 그것조차도 전날 입은 외투 주머니에 그대로 놓고 왔다'고 한다.


'다이어트'와 '건강 관리'는 언제 했냐는 듯 보글보글 육수 진한 어묵탕을 시작으로 먹어도 먹어도 줄어들지 않은 고기와 상다리 휠 정도로 차려진 푸짐한 음식에 배가 터지도록 나눠먹고 넉넉하게 준비해 온 장작을 밤늦도록 태워가며 '이 정도 추위는 나이와 상관없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에 취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첫날을 보냈다.

오는 길에 재래시장에 들러 산 생굴 망태기와 시누이가 준비 해 온 국산 홍어도 있었지만 먹을 것이 너무 많아 한쪽 구석에 밀려 밤새 내린 눈에 하얗게 파묻히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을 정도였다.

진한 고기 냄새에 주변을 얼씬거리는 길냥이를 위해 미리 준비해 놓은 사료와 고기도 푸짐하게 나눠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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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날씨는 눈이 계속 내렸다, 흐렸다, 다시 괜찮았다가 한바탕 싸리 눈도 내리고 또 함박눈이 내리는 등 종잡을 수 없이 계속 변덕을 부려댔지만 푸르스름한 저녁 하늘에 밝은 빛을 내뿜는 총총한 별들도 마주 할 수 있어 더욱 좋았다.

늦은 시각까지 찬바람과 매캐한 연기 맞아가며 '불멍'에 빠지는 순간도 결코 놓치지 않았다.

이따금씩 거센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버티며 불멍을 즐기는 우리 모습에 텐트를 날려버릴 만큼 휘몰아치는 바람이 성질을 부리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모든 상황들이 '한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낭만'이라고 여기니 아무래도 좋았다.


밖에서는 눈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눈보라가 사납게 몰아쳐도 정작 텐트 안은 전기장판의 따스한 온기와 두툼한 이불의 포근함과 조금 비싸 보이는 곤로의 훈훈함에 의지해 전혀 춥다고 생각되지 않았고 마치 한 방울, 두 방울 빗줄기 떨어지듯 눈 쌓이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따스한 밤을 보냈다.


둘째 날!

새벽녘에 식구들이 화장실 가랴, 곤로에 기름 채우랴, 부산하게 왔다갔다하면서 소곤거리는 기척이 들리기도 했지만 평소 습관대로 귀마개를 하고 잤기 때문에 잠은 편히 잘 잤다.

환한 새벽을 흔들어 깨우는 새소리와 인근 마을에서 들리는 장닭들의 알람을 들으며 대충 눈곱만 떼고 조금은 꾀죄죄한 모습으로 떡국을 준비했다. 아침 댓바람부터 고기를 구워 홍어 삼합을 해 먹고 어제 못 먹은 굴도 구워 배를 채우고 밤새 내린 눈으로 오리 인형도 만들면서 동심의 세계에 잠깐 발을 담궜다.

점심 식사는 나중에 합류한 둘째 형님네 아들내외가 짬뽕을 만들어 줘서 배 터지게 잘 먹었다. 자기 입맛에 따라 국수도 먹고 밥도 비벼먹는 등 계속 음식을 집어넣으니 아마 뱃속에서 욕 했을 것 같기도 하다.

차례차례 방문한 조카사위들 맞이하고 손주들 재롱도 보며 모닥불 주변에 모여앉아 한가한 오후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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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조카들이 각자 집으로 가야해서 후딱 이른 저녁을 차려주고 본격적으로 우리 형제들만의 오붓한 시간을 가졌다. 입으로는 그동안의 회포를 모두 털어냈으니 이제는 슬슬 몸으로 활동할 시간!

형제들이 다 함께 고스톱 쳤던 기억이 벌써 수년 전인데 이번에 원멤버 5명(부부 대표 각 1명과 우리 부부, 시누이 1명 - 이때 우리 부부는 절대 인정사정 봐주지 않음)이 다시 한번 뭉치게 되었다.

거의 5시간 동안을 같은 자리에, 같은 자세로 앉아 폭탄을 때리고 누구는 쓰리고도 맞으며 지폐들이 돌고 도는 것 같았지만 매번 마지막에 털고 일어날 쯤이 되면 여기저기에서 ‘부부 도박단’이라는 단어가 우리 부부에게 쏟아진다.

결론적으로, 오늘 밤도 우리 부부만 또 주머니를 채운 것 같다. 나는 절대적으로 상대방의 패를 읽을 줄도 모르고 속임수라고는 1도 모르는데 생각보다 나름 잘 치는 것 같다. 그나마 나는 조금 땄지만 남편은 의도치 않게 남은 식구들의 주머니를 탈탈 턴 꼴이 되어서 결국 다음 날 점심을 사기로 했다.

우리가 두 눈에 불을 밝히며 친목을 도모 하는 동안 간간히 쏟아지던 눈도 쉼 없이 내렸다.

온 세상이 순백색 눈으로 가득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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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설날)!

최근에는 겨울의 낭만을 가득 품은 시골 마을을 접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2박 3일의 캠핑을 하면서 모처럼 논두렁, 밭두렁을 포함해 온 사방이 끝도 없이 새하얗게 바뀐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렸을 때는 방문을 여는 순간부터 반짝이는 하얀 눈을 헤치고 산으로 들로 친구들과 뛰어다녔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삼일 째 되는 날에는 부스스한 내 모습이 자연인과 너무 닮아가는 것 같아 일어나자마자 추위를 견뎌내며 샤워를 했다. 뜨거운 물도 공짜로 쓸 수 있었는데 치아가 저절로 부딪히는 한기를 밀어내고 따뜻한 물을 맞는 기분은 말할 수 없이 상쾌했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뽀드득거리며 눈 속에 빠지는 기분 또한 마치 멍멍이가 흰 눈을 보며 방방 뛰어 다니는 것처럼 내 마음도 설레면서 더욱 맑아지고 새하얘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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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내린 눈을 온 몸으로 받아 낸 자동차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릴 반겼다.

나뭇가지를 주워 머리를 깎듯 눈뭉치를 털어내니 희끗희끗한 민둥머리가 된 것 같은 모습부터 '왜 이제 왔냐'고 살짝 삐진 눈, 콧구멍 벌렁거리는 물개 모습 등 천의 얼굴을 찾아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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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삐진 모습 물개 모습 곤히 잠든 모습


나이 50이 넘어 처음 경험해 본 ‘겨울 캠핑’은 눈이 많이 와서 더욱 황홀했고 생각보다 바람이 차지 않아서 더 좋았다.

하지만 이틀 밤을 지내는 동안 결로로 인해 텐트 안에 물방울이 사방으로 번지고 추위 속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니 피로도 점점 쌓여갔다.

눈이 더 쏟아지기 전에 후다닥 짐을 챙기고 그림같은 풍경과 아쉬움을 남긴 채 캠핑장을 뒤로했다.

형님들 말씀을 들어보니, 다들 후유증이 약간씩 있었는데 입술이 부르트거나 얼굴이 얼었었는지 열꽃이 피고 하루 종일 잠에 취했다고 했다. 나도 세찬 바람에 얻어맞은 듯 얼굴에 뾰루지가 나고 발갛게 달아올랐다!

시숙님들이 '다음에 겨울캠핑 또 가자~'는 말에 역시나 입술에 물집이 생긴 남편은 '고생'이라고 생각되었는지 '겨울 캠핑' 얘기만 꺼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캠핑을 다녀 온 후 뒷정리를 하며 겹겹이 챙겨간 이불과 옷들을 빨기 위해 세탁기를 여러 번 돌리고 매캐한 장작 냄새를 뒤집어쓴 패딩들을 드라이 맡겨야 하는 번거로운 일들이 남았지만 한겨울 도전 해 보기 쉽지 않을 우리가족의 첫 겨울캠핑은 함께 했던 즐거운 순간과 잔잔한 여운이 마음 한켠에 모여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다.

어느 개그 유행어 중 '해봤어?, 안 해 봤음 말을 말어!' 처럼 흰 눈 반짝이는 솜이불 같은 세상도 좋고, 포근함 가득한 따스한 겨울이라도 캠핑 한번 가볍게 나서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낭만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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