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대던 3월 말, 오랜만에 담양에서 남편 삼형제 부부가 뭉치기로 했다.
경치도 좋고 음식도 맛있어서 최근에 '핫플레이스'로 알려져 점심시간에 가면 한참을 대기해야 하지만 제일 바쁜 시간을 피해서 가보기로 했다. 혹시라도 반주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차편을 어떻게 하나 고민하던 참에 마침 집에 와 있던 딸이 광주에 볼일이 있다고 해서 일단 딸에게 신세를 지기로 했다.
목포로 다시 내려올 걱정은 나중에~
빗방울이 약간씩 떨어지고 식사 시간이 조금 늦었는데도 역시나 빈 자리 하나 없이 만원이었다.
맛 집으로 소문난 샤브샤브 식당에 고기와 각종 야채와 간식들이 무한리필이라 끊임없이 가져다 먹고 볶음밥에 후식까지, 내 뱃속에서 '너무한다'고 투덜거릴 만큼 많이 저장했다. 금방이라도 터질것 같은 무거운 배를 안고 장소를 옮겨 소화시킨다는 핑계로 근처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차까지 마시면서 서로의 안부를 전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더 먹는 것은 잠시 쉬고 이제 집에 갈 시간!
작은 시숙님이 시간이 있어서 데려다 주기로 하셨고 당연히 가까운 고속버스터미널에 내려줄 거라 생각했으나 고맙게도 우리 부부 둘이 오붓하게 데이트 하라고 송정역까지 태워다 주신다고 했다.
나도 오랜만에 기차를 타고 싶어 부리나케 기차 시간을 검색하니 다행히 약간 촉박하지만 조금 서두르면 충분히 탈 수 있는 기차가 있었다. 송정역에 도착해 시골에서 막 올라온 촌사람처럼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어설프게 티켓을 끊고 헐레벌떡 뛰어서 겨우겨우 승강장에 도착!
나의 경우, 목포에서 살기 때문에 기차는 대부분 서울(종점)까지 타고 다녔던 게 대부분이었고 이렇게 집과 가까운 광주에서 타 보기는 처음이었다.
기차가 편하고 빠르다는 것은 당연히 알지만 조금 비싸기도 하고 평상시에는 거의 자가용이나 고속버스를 타고 다니므로 거의 이용할 일이 없다. 오늘도 그냥 가까운 터미널에 내려주셨으면 그대로 고속버스타고 내려왔을텐데 시숙님의 배려로 색다른 시간을 가졌다.
지금도 기차만 지나가면 꼬리가 얼마나 긴지 칸칸이 세어보게 되는데 어린시절, 엄마 손을 꼭 잡고 서울에 있는 언니 집을 가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미리 준비해 간 계란도 까먹으면서 스쳐 지나가는 차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봤던 기억들이 지금도 아련하다.
주말이었는데도 종점(목포)과 가까워서인지 아니면 기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적어서인지 많이 한산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날이 조금 추웠지만 남편과 단둘이 기찻길에 서 있으니 기분은 새롭고 많이 설렜다.
수년 만에 타보는 기회라 타자마자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과 주변의 예쁜 모습들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위해 찰칵찰칵 인증 샷을 남기고 기차만의 여운을 느껴보기도 전에 따스한 히터 기운에 취해 잠시 눈을 감았는데 벌써 '목포역'에 도착했다는 안내가 나왔다.
오늘 종일 분주하게 다닌데다가 뱃속은 따뜻했지만 추위에 떨어서인지 쏟아지는 잠의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마지막까지 데이트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서산 끝에 남아 있는 햇살에 기대어 남편과 집까지 걸어가 볼 생각이었으나 바람이 차갑고 많이 불어서 일찌감치 포기했다.
대신 목포역 근처에 있는 유명한 빵집에 들러 맛있는 빵을 사고 택시를 탔다. 저녁 식사는 간단하게 빵?!
짧은 시간이었지만 즐겁고 기분 좋은 하루였다. 가끔은 이렇게 자가용을 버리고 남편과 버스를 타거나 기차를 타면서 이색적인 데이트를 즐기는 '낭만의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굿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