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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AY

고교 동창 모임2

by 바람꽃

2025.6월 중순, 30년 만에 처음 만났던 고등학교 친구들과 아쉬움을 뒤로하며 두 달 후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었다. 이번에는 서울에서 1박 2일 일정으로 뮤지컬도 보고 더위를 식히며 서울 구경을 하기로 했다.

6월에 만났을 때만 해도 '언제 8월이 오나' 싶어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만 같았는데 벌써 예정일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다들 아프지 않고 잘 지낸 덕에 결국 D-DAY를 맞이했다.


기차 티켓을 발권하고 최대한 가볍게 짐을 챙기는 동안에도 나의 마음은 이미 서울에 있는 것처럼 설레고 흥분되었다. 총 7명 중 한 명은 하필 시댁식구들과 모임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빠지게 되었다.

조금 미안했지만 남은 우리들끼리 즐겁게 잘 지내기로 했다. 미리 예약해 놓은 뮤지컬 티겟은 약간의 취소 수수료를 내고 다시 돌려주려고 했으나 맘 좋은 친구가 간식 사먹으라고 고스란히 지원해 줬다.

이제 내일이면 모두 모여 서울의 밤거리를 걸으며 즐기고 있을거라 생각하니 벌써부터 잔뜩 기대가 되었다.

평소에 틈틈이 모아 둔 행운의 클로버들 중 다섯 잎과 예쁜 것을 골라 정성스럽게 코팅을 해서 준비하고 행사용 가랜드와 사탕 등 주전부리도 담았다.

다음 날, 잔뜩 설레는 마음으로 퇴근 시간만 기다리고 있는데 친구들 단톡은 이미 분주했다. 누가 먼저 출발했고 어디에서 내리는지, 식당은 어디가 맛집이고 내일 비소식이 있으니 양우산도 챙기라는 등...


나는 남편이 송정리역까지 데려다줘서 다행히 이른 시간에 광주 친구들을 먼저 만날 수 있었다. 분명 두달 전에 본 친구들의 모습은 어렴풋이 기억되어 있었지만 많은 인파 속에서 찾기는 쉽지 않았다. 전화 통화를 하면서 손을 높이 들라고 했더니 반갑게도 바로 맞은 편에 앉아 있었다.

엊그제 만난 것처럼 가벼운 인사를 하고 간단한 간식을 사들고 드디어 서울로 출발~

서울역에 와 본지가 몇 년 만인지 기억이 까마득했다. 역을 나오자마자 촌사람 티 내듯 증명 사진을 남기고 먼저 와서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을 향해 택시로 고고!


한밤중인데도 불구하고 여기 저기서 울어대는 서울 매미 소리는 정말 씩씩하고 우렁찼다. 우리 동네에서 우는 매미와 별반 다르지 않을텐데 괜시리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맹이 하나까지 모두 특별하게 느껴졌다.

‘포방터시장’이라는 곳에서 내려 어머니와 아들이 운영한다는 닭볶음탕 집에서 친구들과 재회를 하고 10시가 넘은 시각에 늦은 저녁을 먹었다. 맛집이어서인지 손님도 많았지만 우리도 만만치 않게 수다스러웠다.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일반 가정집의 윗층으로 '6명이 모두 잘 수 있고 저렴하다'고 해서 겨우 골랐는데 에어컨이 고장인지 온도가 잘 안 내려가고 2명이 잘 수 있는 옆방은 겨우 선풍기 하나로 밤새 더위를 안고 자야 하는 신세였다. 특히 따뜻한 물도 안나와서 샤워조차 하기 힘들었다. 사장님께 이러한 불편한 점을 말씀드리고 선풍기라도 하나 더 달라고 했더니 기분이 언짢으셨는지 그냥 환불해 주신다고 했다. 조금 많이 불편했지만 이 늦은 시각에 다른 숙소를 구하기도 애매하고 어차피 우리는 이 밤을 꼭 붙잡고 꼴딱 샐 분위기였으므로 버텨보기로 했다.


30년 만의 첫 만남은 조금 어색했었지만 지금은 다시 고등학교 시절의 분위기를 조금씩 찾아가는 것 같아 마음이 훈훈해졌다.

사실 친구들과 첫 만남 때 악기를 연주하는 친구와 조금 서먹한 기분이 남아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깽깽이라는 별명을 부를 정도로 많이 친했다'고 여겼었는데 나만의 생각이었나 싶어 조금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이번 모임 때는 친구가 먼저 내게 다가와 주었다. 내 모습이 너무 달라져서 긴가민가 했다가 첫 모임이 끝난 후 '졸업사진을 보고서야 기억이 났다'고 했다.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역시 내가 많이 변하긴 했나 보다. 예전처럼 다시 친했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안심도 되고 기분도 더욱 좋았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들의 축하이벤트를 위한 가랜드를 설치하고 장식을 하는데 벌써 시간은 밤 12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부랴부랴 기념 사진을 남기고 바로 '동대문 새빛시장'으로 향했다.

역시 서울답게 새벽이어도 거리마다 불빛이 환했고 심야버스도 운행 중이었다. 노란 천막이 펼쳐진 야시장에서 유명한 브랜드로 가득한 아이템들을 구경하면서 서울 도심에 점점 스며들었다.


성향이나 취향에 따라 무리가 나뉘어지는 친구들 모습도 볼거리 중의 하나였다.

유명 브랜드를 선호하는 친구들, 구글이나 지도를 보며 길을 안내해 주는 무리들, 꽁무니에 딱 붙어서 아무 걱정 없이 순진하게 따라가는 우리들...


서울의 어둠을 가르며 쇼핑에서 미리 돌아온 친구들끼리 '줌바'도 췄다. 나는 원래 몸치여서 춤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잠깐이나마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친구가 소개해 준 채널을 보며 어린아이처럼 같이 흔들고 나니 오히려 몸도 가벼워지고 잠이 확 깨는 것 같았다.

친구들이 다시 모이자 이번에는 모두 누워서 '마사지 팩'을 했다. 미리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시원한 팩을 얼굴에 붙이고 머리를 맞대었다. 여기에서도 절대 빠질 수 없는 사진 한 컷!

어떤 친구는 '온도 차이에 따라 손가락 색깔이 변한다'는 매니큐어를 가져왔는데 '값이 6,500원'이라며 양에 비해 무척 비싸다고 여러차례 강조했다. 덕분에 손톱, 발톱에 서로 같은 메뉴큐어를 바르고 증명 사진도 남겼다. 나의 엄지발톱 끝에는 6월에 이 친구들 만난다고 모처럼 발랐던 하늘색 메니큐어가 첫사랑 기다리듯 여전히 살짝 남아 있었다. 그때의 설레임과 두근거림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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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성격과 관련한 'MBTI'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눴는데 분명 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엄청 활발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소심해진 것인지 친구들도 의아해 했다. '나는 살면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친구들을 만나면서 잊고 있었던 나를 찾아가는 기분이다. 시간이 지나면 그 시절의 나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도 여지없이 새벽 4시를 확인하고 또 다음 여정의 재충전을 위해 불을 끄며 밤새 소란스러웠을 서울의 밤을 다독였다.


새벽에 조금 추운 기분이 들어 일어났더니 역시 부지런한 애들은 벌써 목욕탕까지 다녀왔다.

친구들이 사온 샌드위치와 음료에 어제 사 놓은 청사과로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또 분주하게 챙겨서 우리의 원래 목적이었던 '뮤지컬'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사공들은 많았지만 다행히 배는 목적지를 향해 앞으로 잘 나아갔다.

나는 ‘완전 길치’라고 이미 선언했기 때문에 아무 걱정 없이 애들이 이끌어주는 대로 환승도 해보고 뒤만 쫄랑쫄랑 따라다녔다. 친구들이 서로의 핸드폰을 들고 길을 찾고 있는 사이 나는 열심히 부채질을 해줬다. 똑똑한 친구들 덕분에 걱정없이 따라다닐 수 있었다.


잠을 못 잔데다가 날이 무척 더워서 뮤지컬 하는 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았는데 수고하는 친구들이 안쓰러웠는지 친구 하나가 문득 질문을 던졌다. “얘들아, 여행이 무슨 의미인 줄 알아?”

“여행은 출발할 때는 설레고, 가서는 고생이고, 갔다 와서는 추억하는 거래~”

맞는 말이다. 친구의 자문자답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더욱 힘을 내어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걸어갔다.


뮤지컬은 너무나 훌륭했다.

대공황 시기의 뉴욕을 배경으로 시골 출신의 신인 댄서가 브로드웨이에 올라와 오디션에 도전하면서 전개되는 스토리인데 최근에 뉴욕으로 여행을 다녀와서인지 더 의미있게 다가왔다.

그러나 황홀한 뮤지컬을 보면서도 밤새 잠이 부족한 관계로 졸다, 깨다를 여러번 반복했다. 잠을 깨기 위해 중간에 사탕도 먹고 껌도 씹고, 비몽사몽간에 나 혼자 쇼?한 기분... 그래도 환한 조명 아래 스피드한 탭댄스와 화려한 연기와 노래가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정말 멋진 무대였다.

친구들 몇은 뮤지컬을 보기 위해 일부러 원피스를 준비해서 입기도 했다. 나중에 또 뮤지컬을 보게 된다면 나도 꼭 치마를 준비해야지~


우리가 모일 때 마다 ‘인생네컷’은 항상 빠지지 않는 이벤트였는데 다행히 공연장에 비치되어 있어서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할 수 있었다. 좁은 공간에 나란히 서서 한 명씩 자리를 옮겨가며 찍는 과정은 조금 번거로웠지만 오늘을 기억하는 마지막 순간이라 모두 열심히 집중했다. 우리들만의 추억 여러 개가 함께 쌓여갔다.


오랜만에 서울 물 먹은 기분은 역시 피곤하고 힘들었다. 뮤지컬이 끝나고 간단하게 간식을 먹고 또 각자의 집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환승하며 발빠르게 움직였다.

친구들도 '쌈빡하게 즐기기에는 서울만한 곳이 없다'고 입을 모았지만 역시 사는 곳은 다들 '자기 동네가 최고'라고 했다. 조금이라도 함께 더 머무르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하며 나중에 또 보고싶은 뮤지컬이 있으면 '번개팅'이라도 해서 다시 오자고 약속했다.


여행을 다녀온 후, 남편에게 친구들과 무엇을 했고 밤새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알려줬다. 딱히 슬픈 기억은 전혀 없었는데 나 스스로 감격해서인지 이야기 하는 동안 괜시리 눈물이 났다.

남편은 원래 자기 빼고 친구들끼리만 노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데 나의 고등학교 친구들에게만은 유독 이해심이 많았다. 우리의 꽃다운 이팔청춘을 함께 하면서 나눴던 소중한 시간과 추억들을 '우리만이 함께 공유하고 서로를 이해해 줄 수 있는 값진 선물'이라고 했다.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교에 들어간 남편의 입장에서는 마음을 나누고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고등학교 친구들을 가진 내가 무척 부러워 보였던 것 같다.

직장 동료나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공유할 수 없는 우리의 속사정을 우리 친구들은 아무 편견이나 사심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위로해 주고 응원해 줄거라 생각되었다.


광주까지 배웅도 해주고 늦은 시각에 마중도 나와 준 남편이 고마워서 다음 날 후끈거리는 열기에 땀방울이 등 줄기를 타고 흘러내릴 만큼 더웠지만 아주 기쁜 마음으로 오랫만에 요리 솜씨 좀 발휘해 봤다.

오늘도 행복 하나 더 추가!


친구들과 꼬부랑 할머니가 될 때까지 만나고 그 내용을 꾸준히 기록한다면 '책 한 권도 거뜬히 나올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만의 소소한 이야기가 실린 책을 나눠 들고 기념 사진을 찍는 그날이 올 때 까지 '오래 오래 좋은 추억 많이 만들며 잘 지내고 싶다'는 희망 사항 하나를 버킷리스트에 담아 본다.


다음 모임은, 우리의 깽깽이가 직접 공연하는 날짜에 맞춰 12월 중순 쯤 '전주'에서 만나기로 했다.

원래 친구들은 1년에 한두 번 정도 만날 계획이었다고 했는데 내가 합류한 이후로도 벌써 3번째 모임이다. 그래도 벌써 기대가 된다.


"친구들아~ 서로 수고해 줘서 많이 고마웠고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다들 몸 건강히 잘 지내고 또 예쁜 모습으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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