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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가을가을' 한다~

by 바람꽃

별로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 저녁 시간대에, 우리 부부는 TV를 조금 멀리하고 건강도 챙길 겸 한참 더워지기 시작하는 7월 첫날부터 늦은 저녁 시간에 운동을 하기로 했다. 집 밖을 나서기만 해도 땀이 비 오듯 흐르는 여름에 접어들면서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보통은 점심 식사 후에 습관적으로 동네 한 바퀴를 돌았었는데 갈수록 날이 뜨거워지고 햇볕이 너무 따가워서 감히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루 종일 앉아만 있으려니 뱃속도 거북하고 몸이 점점 무거워지는 것 같아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은 위기감을 느꼈다. 또한 차가 없다면 기본적으로 걸어야 하므로 자연스럽게 건강을 챙길 수 있을텐데 집을 나서면 근처의 마트만 가더라도 차를 타려는 고질적인 버릇 때문에 다리는 더 가늘어지고 쓸데없이 배만 나오는 것 같았다.

남편도 거실에 에어컨이 없어서 덥기는 마찬가지이고 퇴근하고 나면 줄곧 TV 앞에 붙박이가 되니 이래저래 ‘이열치열’이라는 마음으로 함께 도전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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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주는 하루도 땡땡이치지 않고 계획대로 잘 움직였다. 하지만 주말이 되니 그동안 열심히 운동한 것에 대한 보상 심리인지 하루 정도는 쉬고 싶다는 게으른 마음이 앞섰고 그 다음 주에는 남편이 약속 있으면 그 핑계로 나도 집순이를 고수하고 내가 약속 있으면 남편도 나가기 싫어해서 일주일을 얼렁뚱땅 보내고 말았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끈기를 가지고 좀 더 열심히 하자고 약속했다.

우리 아파트에서 조금만 나가면 산책하기 좋은 길이 있는데 끝까지 왕복으로 걸으면 거의 3km다. 가끔은 안 가본 곳을 간다고 샛길로 빠지거나 다른 길로 돌아 가다가 생각지도 못하게 너무 많이 걸어서 한밤중에 만보를 훌쩍 넘기고 무릎이 후끈거릴 때도 있었다.


한동안은 가보지 않은 '골목길 투어'를 하기도 했다. 평소에는 우리 동네 골목들이 어디를 가나 뻥뻥 뚫려 있고 깨끗한 편이어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데 밤에 찾아가는 골목은 대부분 좁고 어두운 데다가 빈집도 많고 주변에 잡풀이 우거져서 발 디디기조차 힘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가끔 생각지도 못한 멋진 야경을 볼 수 있었고 때때로 탐험하는 기분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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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가로등 불빛조차 없는 곳을 지날 때면 많이 무섭기도 하고 조금 높은 언덕을 오르면 숨이 턱 막힐 정도로 고생스럽기도 했지만 남편이 앞에서 내밀어 주는 손을 잡고 따라가니 기분이 설레기도하고 든든하기도 했다. 혼자서는 절대 하지 못할 동네 투어를 남편과 함께 여기저기 구경 한번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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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이상을 여기저기 계속 걸으니 하늘의 달 모양이 초승달에서 보름달을 지나 하현달로 점점 바뀌는 모습도 볼 수 있었고 또한 낮에는 몰랐던 것도 발견 할 수 있었다. 어느 건물 이층에 불빛이 한한 휘트니스 센터가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고 조금 낡아서 그만두었나 싶은 식당은 여전히 손님맞이를 하기도 했다.

화끈거리는 열기가 가득한 날에도 어느 곳에 잘 숨어있다가 나타나는지 사방에서 개구리 가족들이 목청껏 노래를 부르더니 지금은 개구리 소리보다 풀벌레 소리가 더 가득하다. 비 오는 날을 제외한 매일 저녁 8시 반이 되면 남편과 무조건 집을 나서는데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어깨동무도 하면서 나란히 걸을 수 있어 더욱 좋았다.


가끔 피곤한 하루이거나 주말이 되면 자전거를 끌고 집을 나선다. 며칠 전에는 거리가 꽤 되는 해안로를 따라 멀리까지 돌아다니기도 했다.

최근에 병원에서 ‘콜레스테롤이 높다’는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하고 있다가 이참에 음식과 운동으로 조절이 가능한지 실험을 해봤다. 거의 한달 이상을 나름 빡세게 관리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1도 변함이 없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유전적이거나 비슷한 생활 습관 때문에 그럴거라고 했다. 결과는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운동은 계속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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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작할 때는 무척 후덥지근하고 더웠지만 입추가 지나자 찐득찐득하던 바람도 금새 선선해지고 내내 찜통을 방불케 했던 무더위도 밤에는 한풀 꺾여서 점점 시원해지기 시작했다.

지금이 9월 중순인데도 벌써부터 바람막이나 긴 옷들을 챙기게 되고 여름 내내 맨발로 돌아다녔었는데 이제는 양말도 가지고 다닌다. 특히 새벽에는 집 안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너무 싸늘해서 베란다 창문도 하나씩 닫았는데 남편과 서로 이불을 차지하겠다고 티격태격할 정도로 코끝이 차가워졌다.

아직도 한낮의 햇살은 많이 따갑지만 벌써 여름이 ‘가을가을’ 하는 것 같다.

이젠 반팔, 반바지를 입고 운동하러 나가면 살갗에 스치는 바람이 서늘하게 느껴질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많이 떨어졌다.

더군다나 우리 아파트는 3층인데 어느 날 아침 생뚱맞게 귀뚜라미 한마리가 거실에 나타났다. 어떻게 들어왔는지 아직도 의문이지만 귀뚜라미도 자기의 계절을 느끼는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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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하면서 특이하게 생각된 점은, 8월 만해도 서로의 어깨가 스칠 정도로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았었는데 오히려 날이 선선해지니 한산할 만큼 많이 줄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시원한 날에 운동을 많이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이유를 추측해 보건데, 날이 더울 때는 집안도 더우니 ‘차라리 밖에 나가서 산책하고 개운하게 씻고 자는 것이 낫겠다’는 마음인 것 같고 이제는 시원해졌으니 ‘굳이 나가서 일부러 땀 흘릴 필요가 없겠다’는 분위기인 것 같다.


낮에 조금이라도 걸음을 걸었던 날은 하루라도 땡땡이치고 싶다는 핑계와 긴 머리를 매일 감고 말려야 하는 부담스러운 마음을 담은 게으름이 스멀스멀 밀려와 내 발목을 계속 붙잡았지만 현혹되기 쉬운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꾸준히 잘 달려온 나와 남편에게 '토닥토닥' 칭찬의 박수를 보낸다.

어느새 해도 많이 짧아졌다. 언제까지 밤마다 산책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남은 날들을 최대한 즐기려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은 좀 쉬자'고 궁시렁거리는 남편을 떠밀며 집을 나선다.

길었던 것 같으면서도 무척 짧은 것 같은 아쉬운 여름을 배웅하며 작별 인사를 보낸다.


'여름아~~~ 그동안 수고했어. 남은 더위도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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