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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릇과 상사화

이룰 수 없는 사랑

by 바람꽃

요즘 우리 주변 곳곳에 붉은 상사화가 보여서 관심이 갔다.

잎과 꽃이 영원히 만날 수 없어서 붙여진 이름!

그런데 한편에서는 꽃무릇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상사화와 꽃무릇이 같은 의미인지 확인하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같은 수선화과'에 속하지만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꽃무릇'은 가을을 대표하는 붉은 꽃 중의 하나라고 한다. ‘9월에서 10월 사이에 꽃이 피며 꽃이 진 후에 잎이 자란다.’ 지금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다. 가장 큰 특징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잎과 꽃이 함께 자라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사화' 역시 ‘서로 그리워한다’는 뜻을 가지며 꽃무릇과 마찬가지로 잎과 꽃이 서로 시기를 달리하여 만날 수 없기 때문에 생겨난 이름이다. ‘상사화의 잎은 꽃무릇과 반대로 봄에 먼저 나왔다가 더위가 시작되면 모두 사라진다.’ 이후 7월에서 8월 사이에 꽃이 피며 연분홍빛 혹은 연보라색의 꽃을 피우는데 백합을 닮은 것 같으면서 꽃무릇과 약간 다른 모습이다.

결국 꽃무릇과 상사화는 꽃과 잎이 동시에 존재하지 않고 모두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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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영광 불갑사에서 '꽃무릇 축제'가 개최된다고 해서 주말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남편과 영광으로 향했다. 애들이 어렸을 때 온 가족이 함께 왔던 이후로 너무나 오랜만이어서인지 가는 길이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차들이 점점 엉금엉금 기어다니고 하나둘 긴 꼬리를 만들기 시작해서 우리는 그냥 차를 버리고 걸어가기로 했다. 목적지까지는 2km 정도가 남았으나 행사장까지 이어지는 꽃길과 마을 풍경이 너무 예뻐서 지루하지도, 길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이제 곧 수확을 기다리는 고개 숙인 벼들이 노랗게 익어가는 정겨운 시골길을 걷다 보니 산들산들 시원한 바람도 느낄 수 있었고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 사이로 멋지게 날아오르는 왜가리도 볼 수 있었다.

어릴적 동네 담장 너머로 보이던 마른 대추와 달리 요즘은 사과인지 대추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로 통실통실한 굵은 대추와 붉게 익어가는 사과나무에 가을 기운이 가득했고 거리는 온통 붉은 물결로 넘쳐났다.


불갑사까지 올라가는 양쪽 길에는 각종 먹거리와 볼거리가 다양했다. 입구에서부터 막걸리가 우리의 발걸음을 유혹했는데 '한 잔에 천 원' 한다고 해서 남편과 사이좋게 나눠 먹고 여기저기 구경을 하며 올라갔다.

영광의 특산물인 모시송편을 비롯해서 다양한 먹거리도 많았고 한쪽에서는 불우이웃돕기를 위한 노래를 부르거나 팬플룻 공연을 하시는 분도 있어 오감이 즐거웠다.

불갑사는 애들이 어렸을 때 분명 와봤을 텐데도 너무나 낯설었다. 특히 절에 들어가면 대부분 대웅전이 출입구를 향해 있고 부처님을 마주 볼 수 있는데 이곳은 불상이 다른 쪽을 바라보고 있어서 매우 생소했다. 절의 규모가 제법 크고 건물이 많아서 쉬엄쉬엄 돌아다니다가 바로 위쪽에 있는 호수로 올라갔다.

산들바람에 찰랑거리는 초록 물결과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는 것 같은 꽃무릇이 어우러져 더 멋스럽게 느껴졌다.


아침에 조금 늦은 시간에 출발했더니 점심시간은 이미 지나 있었고 배꼽시계가 진즉부터 알람을 울려대서 부랴부랴 걸어 내려가는데 한쪽에서 화가들이 모여 캐리커쳐를 그리고 있었다. 사실 신혼여행 때 조그만 나무 위에 우리 부부의 모습을 불로 새겼던 까마득한 기억만 남아 있어서 진작부터 꼭 해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가졌었다. 마침 대기하는 사람도 없어서 문득 지금이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배가 고픈 참이라 남편의 눈치가 많이 보였지만 후딱 해 보자고 졸랐다. 그런데 뱃속의 아우성을 참고 기다린 보람도 없이 줄을 잘못섰는지 기대와 달리 우리 부부와 많이 다른 모습이어서 괜히 돈과 시간만 버린 것 같아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남편도 '마누라는 조금 비슷하지만 자기를 너무 못생기게 그렸다'며 내려가는 내내 불평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사실 생각할수록 조금 실망스럽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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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서 대충 점심을 때우려고 했으나 재료가 소진되었다는 둥 대기 줄이 너무 길다는 이유로 할 수 없이 다시 걸어서 차가 있는 곳까지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근처에 셔틀버스가 있었지만 우리가 가는 방향과 맞지 않다고 남편이 그냥 걸어가자고 했는데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기사님께 좀 태워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너무나 친절하게 응해 주셨다. 가끔은 남편 말 안 듣길 참 잘한 것 같다! 버스로는 5분도 안 될 만큼 잠깐 이동했지만 그 길을 고스란히 걸었다면 길바닥에서 쓰러졌을지도...


함평으로 내려와서 비빔밥을 뚝딱 비우고 마침 재래시장이 열리는 날이라 참새가 방앗간 들리듯 또 시장을 한바퀴 돌았다.

그런데 앗차! 싶었다. 남편이 배추와 쪽파가 좋아 보인다며 갑자기 '김치를 담자'고 했다. 작년에 김장할 때의 고생이 생각나서 마음은 무조건 말리고 싶었지만 어차피 허드렛일만 도와주는 입장이라 할 수 없이 그러라고 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쪽파만 다듬었는데도 허리가 끊어질 듯 너무 아팠다. 그동안 남편은 마늘 까고 배추 절이고 뚝딱뚝딱 양념을 만들었는데 정말 대단해 보였다.

오늘도 만삼천 보가 넘도록 너무 걸어서 많이 피곤하고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졌지만 갓 지은 하얀 쌀밥에 방금 담은 김치를 먹으니 피로가 싹 사라지는 것 같았다.

오늘도 남편 덕분에 구경도 잘하고 엉겁결에 생각지도 못한 김치도 담고 참 알찬 하루를 보냈다.


'자갸~~ 오늘도 수고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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