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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나고 난 뒤

by 바람꽃

2025. 7월 중순 쯤,

수년 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주 월요일 7시만 되면 통기타를 짊어지고 기타동호회에 참석했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도 항상 실력이 고만고만한 기타는 잠시 내려놓고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한 싸지 않은 플룻을 꺼내어 들고 때마침 알게 된 '시민오케스트라' 동호회에 발을 들였다.

다른 단원들보다 너무 늦게 시작하긴 했지만 그래서 뒤처지지 않도록 더욱 열심히 연습하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특히 우리 팀에 이제 막 대학을 갓 졸업한 플룻 전공자가 있어서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플룻을 불면 소리가 크게 나서 소음이 될 수 있으므로 아파트에서 연습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퇴근 이후 5시부터 남편이 들어오는 6시까지 겨우 1시간 정도만 겨우 집중할 수 있었다. 전에는 퇴근하면 마트도 들르고 여기저기 볼일도 보고 해찰을 많이 부렸었는데 이제는 '땡!'하면 무조건 집으로 가서 최대한 연습 시간을 확보한다.

나의 플룻 경험이라고는 20여 년 전에 3달 정도 배운 것과 어느 퇴직 교장선생님의 재능기부로 아파트 단지에서 같은 취미를 가진 친구들끼리 모여 2달 정도 연주한 것이 전부다. 단원들이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내 소개를 할 때 지휘자님이 잔뜩 기대하시는 모습으로 내 경력을 여쭤보셨는데 겸손이 아니라 정말로 전혀 자랑할 것이 없고 너무나 초보여서 많이 죄송했다.


처음에는 음표 아래에 계이름을 쓰고 운지법도 열심히 그려가며 나만이 알 수 있는 암호 악보를 만들었다. 그리고 다른 회원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도록 함께 연주했던 곡을 녹음해서 계속 듣고 따라 하며 거의 매일 반복을 했다. 며칠씩 여행을 갈 때도 남편 몰래 무거운 악보와 플룻을 꼭 챙겨서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연습하기 위해 노력했고 해외여행 갈 때 조차도 챙겨갈 수 있는지 궁리해 보기도 했지만 '총기 소지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남편의 무서운 말에 할 수 없이 포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3달을 꼬박 연습한 끝에 드디어 공연 날이 바짝 다가왔다. 우리 팀은 가끔 주말에 만나서 연습도 했지만 공연 경험이 전무한 나로서는 다른 악기들과 협연 할 때 박자 맞추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함께 연주한 녹음 파일을 들으면서 공연 연습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력이라 여겨졌다.


드디어 공연 당일,

어제까지만 해도 날씨가 무척 포근하고 따스해서 은행잎 가득한 거리를 걷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새벽부터 갑자기 천둥번개가 요란하게 울어댔다. 일기예보를 보니 '오늘은 갑자기 황사가 낀 흙비가 내린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히 늦은 오후에는 그친다는!

이른 새벽에 잠이 깨서 무척 긴 하루가 될 것 같았다. 똑같은 출근길이었지만 오늘은 뭔가 마음가짐도 다르고 별 탈 없이 잘 보내는 하루가 되길 기도했다.

공연은 저녁 7시 30분이었지만 리허설 때문에 5시까지 문화예술회관으로 모이기로 했다. 일부러 조금 일찍 사무실을 나와서 미장원에 들러 부스스한 머리에 드라이도 하고 단원들과 나눠 먹을 간식도 샀다.

공연장에 들어서니 무대가 텅 비어 있었다. 전에는 항상 관람자의 입장이었지만 이번에는 내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직접 연주하는 주인공의 입장이라고 생각하니 너무나 꿈만 같고 주변 환경도 색다르게 보였다.

사실 이렇게 공연하는 것도 나의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였다. 가끔 지인들이 공연을 하고 SNS에 사진을 올리는 것을 보면서 매번 부러워했었는데 오늘 드디어 나의 작은 꿈 하나를 이루게 되는 셈이었다.


오케스트라의 악기들 중 단원이 없는 더블베이스, 비올라, 호른, 오보에, 피아노, 드럼 등은 전문가 객원이 참여하여 리허설 때 함께 연주했다. 또한 오늘 초대되는 성악가와 시니어 합창단과도 연습 해 볼 예정이었다.

리허설을 시작하기 전 얼굴이 잔뜩 굳어있는 단원들을 보면서 지휘자님이 한마디 하셨다.

“여러분은 아마추어입니다. 아마추어란 자기 할 일 다 하고 다른 것도 잘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여러분은 프로보다 더 대단한 겁니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이 순간을 즐깁시다.”

즐기자는 지휘자님의 말씀에 조금은 긴장이 풀렸지만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리허설을 하고 나니 저녁 식사로 준비한 김밥과 간식을 챙겨먹을 시간도 부족했다. 급하게 몇 개를 집어 먹고 악기를 다시 조율한 후 부랴부랴 바로 무대에 섰다.

객원이 조금 섞이긴 했지만 우리의 연주는 생각보다 웅장하고 여느 전문 오케스트라 공연 만큼 활기차고 예술적이었다.

중간에 ‘태극기 휘날리며’ 영화 OST를 연주할 때는 나도 녹음을 하고 싶을 만큼 선율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지휘자님 스타일은 ‘조금 어려운 곡을 선곡해서 멋진 공연을 이끌어 내시는 분’이라고 들었는데 다들 연습할 때는 많이 힘들어했지만 이제야 그 의중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특별출연하신 ‘실버합창단’은 연세가 많으신 시니어 분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등장하실 때 지팡이를 짚고 오시는 분도 있었다. 나도 시니어합창단은 처음이라 기대를 별로 안했었는데 ‘인생’‘새들처럼’ 곡을 부르시는 동안 하모니가 너무나 잘 어우러져서 무척 감동이었다. 분홍색 민소매 이브닝드레스와 검은색 정장에 꽃단장을 하신 어르신들 모습과 열정이 나중에 나도 꼭 도전해 보고 싶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성악 등 특별출연곡을 연주할 때 1/3정도의 단원들이 잠시 퇴장했는데 이것은 더 잘하는 단원이 남아서 연주한 것이 아니고 단순히 무대가 좁아서 일부가 들어간 것이었다. 그래도 플룻 파트에서 '세컨드'팀인 내가 대표로 남아서 기분이 조금 우쭐했는데 나중에는 오히려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긴 단원들이 부러울 정도였다.


사실 리허설할 때만 해도 컨디션이 좋았었다. 하지만 연습에 너무 집중하다 보니 정작 공연 시작도 전에 얼굴은 빨갛게 달아오르고 뒷골도 당겨 오는 것 같고 눈앞이 점점 흐려졌다.

특히 고음 부분에서는 실수할까봐 소리를 자신있게 내기도 힘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작은 실수도 연속 발생했다. 다행히 다양한 악기를 함께 연주하니 내 실수가 크게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나 스스로에게 무척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공연 끝이 다가올수록 내 몸 상태가 조금 이상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마지막까지 어떻게 버텨냈는지 실수한 것은 둘째 치고 오히려 쓰러지지 않고 잘 견뎌낸 것만으로도 무척 감사했다.

앵콜 곡까지 무사히 마치고 흐릿한 정신을 다잡을 새도 없이 남편과 지인이 안겨 준 꽃다발을 들고 사진을 남겼다. ‘내가 꽃다발을 받고 무대 위에 서서 사진을 찍은 적이 언제였던가?’ 기억이 까마득했다.

사람들이 대부분 나가고 남아있는 단원들끼리 무대 정리도 했다. 우리 오케스트라를 이끌기 위해 주구장창 혼자 발로 뛰고 수고하시는 단무장님이 마지막까지 여러 소품들과 빌린 악기도 챙기고 온갖 잔일을 하시는 모습을 보고 무척 감사하게 생각되었다.


공연이 끝나고 난 뒤 후유증은 장난이 아니었다. 물론 학창 시절 이후 첫 공연이라 최고조로 긴장도 되고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스트레스도 있었겠지만 온몸이 뻐근할 만큼 어깨도 무겁고 숨도 잘 안쉬어졌다.

아파트까지 올라가기가 너무 힘들어서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고생해 준 악기와 악보도 차 안에 모두 내팽개쳐둔 채 몸만 겨우 빠져나왔다. 남편이 찍은 사진도 보는 둥 마는 둥 대충 넘기고 바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남편 말로는 내가 밤새 심하게 코를 골았다는데 돌이켜보니 나에게는 아주 좋은 경험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체력적으로 굉장히 고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다음 날 아침, 알람 소리에도 눈이 안떠지고 몸을 일으키기 힘들어서 알람을 여러 번 맞추기도 했다.

남편은 내가 많이 지쳐하는 모습을 보고 출근하기 전에 딱 한마디 내던지고 사라졌다. “그만둬!”


약국에 가서 피로회복제를 사먹고 조금 늦게 출근을 했다. 그래도 시간이 조금 지나니 몸 상태가 나아졌다. 지금은 어제 기억도 조금씩 되돌아보게 되고 남편이 보내준 영상과 사진을 둘러보기도 했다. 생각보다 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인지 아니면 공연 후의 여운인지 틈만 나면 연주곡들이 머릿속에서 계속 반복되었다.

'이것도 공연 후의 후유증 중 하나일까?'


남편 말로는 ‘공연도 아주 좋았다’고 했다. 사실 내 실력이 부족해서 다른 지인들에게 홍보하기가 걱정스러웠는데 남편이 녹음해 둔 파일을 들어보니 오히려 ‘이렇게 좋은 공연을 안 본사람이 손해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7월부터 시작해서 지도강사에게 속성 과외를 받고 꾸준히 연습한 덕분에 오늘까지 왔다. 그동안 수고한 나 자신과 항상 웃는 모습으로 불평 한마디 없이 잘 지도해 준 한쌤과 지휘자님을 비롯한 단원들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이런 기회를 다시 갖게 된다면 '조금 덜 긴장하고 체력안배에 더 신경을 써야겠다' 고 반성했다.

남편도 대학시절 클래식기타를 공연한 경험이 있어서 대화꺼리도 더욱 풍부해지고 공감대가 많이 형성되었다.

공연도 막을 내렸으니 이제 퇴근 후는 다시 '자유시간'이 되었다. 물론 종종 연습은 계속 할테지만 마음의 부담이 많이 줄어들었다. 오늘은 당장 마트부터 들르는 여유를 부려봐야겠다. 그리고 나의 공연 준비를 위해 부스스한 곱슬머리를 공짜로 손봐주신 친절한 미장원 사장님과 꽃다발을 들고 깜짝 방문해 준 동아리 회원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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