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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꽃 May 01. 2024

낚시는 이제 그만!

물고기들아 미안해~~

낚시는 이제 그만!

나는 낚시를 좋아한다.

바다낚시, 민물낚시 할 것 없이 푸른 하늘 아래 누군가의 안부를 전하듯 살랑살랑 부드러운 바람이 잠시 머물다 가는 것도 좋아하고, 발 내딛는 곳마다 새벽안개가 내려앉은 듯 풀잎 위에 맺힌 말간 이슬방울과 잔잔한 물결 위에 춤추듯 일렁이는 윤슬의 반짝임도 좋아한다. 

작은 호수 근처에는 내 몸 하나 살짝 기댈 수 있는 한 평 작은 풀밭이어도 긴 낚싯대 

드리우며 조용히 물멍 할 수 있는 공간이라면 어디라도 좋다. 


까만 밤이 아직 기지개를 켜기도 전에 먼 바다에서 낚시하기 위한 갖가지 장비?(썬크림. 썬글라스. 모자. 토시. 장갑 등)들로 완전무장을 하고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감상하며 집을 나서거나, 인적 드물고 물 맑은 저수지를 찾아 전날 미리 준비해 놓은 도시락과 

낚시 도구들을 챙겨  먼 길 떠나는 나그네처럼 한 짐 등에 지고 나서는 이른 새벽녘에도 잠 못자는 피곤함보다 오늘 하루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이 먼저 앞선다.   

물론 나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남편을 재촉해서 따라 나서는 것이긴 하지만!       


남편을 만나기 전에는 낚시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어서 ‘세월을 낚는다’는 뻔한 레퍼토리를 단순히 핑계라고 생각했었고 그냥 ‘시간 떼우기’ 하는 거라고 여겼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직접 해 보고 나니 ‘이런 맛?에 낚시를 하는구나’ 라고 새삼 공감하게 되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이런 맛’은 사실 물고기를 낚으면서 느끼는 손맛이 아니다. 

물론 물고기가 잡혔을 때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짜릿한 느낌 역시 좋아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방이 탁 트인 드넓은 공간에서 어떤 잡음이나 잡념 없이 명상에 빠지듯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가지며 자연과 하나가 되는 듯한 분위기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어쩌면 ‘세월을 낚는다’는 의미 자체가 내가 생각하는 이러한 여러 이치도 함께 포함된 것이 아닐까 싶다.     


낚시는 결혼 전부터 신랑하고 취미로 같이 다니기도 했지만 결혼하고 1년 후, 시부모님과 같이 살게 되고 직장 다니면서 아이들 셋을 키우다 보니 오히려 나의 유일한 돌파구!였다는 생각이 든다. 

밤에는 애들을 데리고 자야 해서 남편 깰 까봐 조그마한 뒤척거림에도 먼저 일어나 

우유를 번갈아 타주느라 살도 많이 빠졌었다. 직장 다니면서는 잠결인지 꿈결인지 비몽사몽 속에 헤매기도 하고 야근 없이 정시에 퇴근하기 위해 쉬는 것도 뒤로 미루고 근무시간 내내 정신없이 일했던 기억도 아련하다. 

보통 주말에는 집에 있으면서 밀린 청소나 집안일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을 하는 것이므로 티도 안 나는 반면, 새벽녘부터 분주하게 서둘러서 남편을 따라나서고 집에 돌아오면 시어머님이(나보다 남편한테 하시는 말씀이지만) ‘고생했다’고 해 주시니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 해소도 할 겸 오히려 내가 더 나가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물론 시부모님과 같이 살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이러한 자세한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주말이면 애들 맡기고 부부끼리만 놀러 다니는 속 없는 며느리"라고 뒷담화했을 것 같기도 하다. 

애들이 커서는 시부모님과 같이 우리가족 모두 갯바위 근처로 바람도 쐴겸 낚시를 함께 가는 경우도 자주 있었는데 잡은 고기로 즉석에서 회도 떠 먹을 수 있고 삼겹살을 구워먹을 수도 있어서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취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낚시는 여전히 남편보다 내가 더 좋아한다. 믿거나 말거나 사실 내가 남편보다 조금 더 잘 잡는다. 지금은 시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시고 애들도 다 커서 타 지역에서 살고 있으므로 별일 없는 주말이면 바다로 강으로 나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낚시의 손맛'을 지금도 잘 모른다. 

단지 손가락에 걸쳐진 가느다란 줄 하나에 느껴지는 미세한 움직임에 따라 순간적으로 훅 잡아 당겨버리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손맛을 느낄 새가 없이 물고기가 줄에 매달린 채로 내 옆을 순식간에 지나쳐 저만치 갔다 오거나 이미 내 앞에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바다에서도 손맛을 느낀다기 보다 그냥 무엇인가 움직임이 느껴져서 행여라도

떨어져 나갈까봐 잽싸게 잡아당기다 보면 이런 나에게 잡힌 것이 억울하다고 하소연

하는 것 같은 눈빛을 보내는 운수 나쁜 물고기가 걸려 있을 뿐이다. 

수년째 낚시를 하고 물고기를 잡지만 고기 잡는 방법은 여전히 적응이 잘 안되고 서툰 편이다. 왠지 나에게 걸린 물고기들은 ‘진즉 뒤로 가다가 넘어져서 코가 깨질 운명이었거나 아니면 눈 뜬 장님’일 거라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민물낚시는 이왕이면 깨끗한 곳으로 가기 위해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찾아 다니기 때문에 아직 햇님이 일어나지 않은 어스름한 새벽에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가끔은 도시락도 준비해야 하고 번거롭기도 하지만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속담을 되새기며 이제 막 하루가 시작되고 있는 엄마 품 같은 자연으로 다가가는 기분이 민물낚시의 매력이지 않은가 싶다. 

또한, 바다보다는 그 크기나 분위기가 훨씬 덜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아한다. 주변에 집들과 축사가 거의 없는 숨은 저수지를 찾아 산쪽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더 고요한 데다가 이름을 알 수 없는 새와 야생화 등 자연과 산이 어우러진 그림 같은 풍경에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물멍하기에 그야말로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바다 낚시는 보통 하루 내내 배를 빌리거나 바다 한가운데 고정되어 있는 빠지에서

고기잡이를 하기 때문에 한밤중에 출발하는 경우가 다반사고 특히 나의 입장에서는 

화장실 가기도 쉽지 않은 애로사항도 있지만 그런 불편함 조차도 즐겁게 여겨질 정도로 좋아한다. 새벽바람을 맞으며 넓은 바다를 가로지르다 보면 환하게 떠오르는 일출도 볼 수 있고 갈매기의 멋진 비상과 잔잔한 바다의 속삭임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힐링

되는 멋지고 기분 좋은 시간이다. 거기에다가 가끔 월척을 낚으면 최고의 선물을 받은 듯한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낚시하기가 두려워졌다. 

한번은 겨울이 끝나갈 무렵이어서 별 기대나 준비없이 낚싯대 몇 개만 챙겨 들고 수로가 있는 가까운 곳으로 민물낚시를 갔었는데 동자개, 은빛 붕어 등 제법 씨알이 큰 것들이 잡혔다. 잡은 고기들을 보관할 만한 마땅한 곳이 없어서 수풀 사이 얕은 물 속에 

대충 가둬두고 또 다시 낚시 삼매경에 빠져 있는데 어느 순간 보니 좀 전에 잡은 물고기들이 죽어서 내 앞에 둥둥 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어차피 가져가지도 못할 거 

그냥 살려 줄걸’ 하는 후회와 함께 괜히 나 때문에 성급하게 죽어버린 물고기들에게 

얼마나 미안한 생각이 들던지 몸이 굳은 채로 떠다니던 그 모습이 머릿속에 박힌 채로 '내가 나의 재미를 위해 살아있는 물고기들에게 못 할 짓을 하는 건 아닌가' 하고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그 전에도 작은 물고기는 방생해 주는 편이었지만 이날의 기억은

두고두고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날이 따뜻하면서 물색이 약간 탁하거나 물고기가 많이 나올 것처럼 약간 흐린 날이면 진즉 내가 먼저 낚시가자고 남편을 졸랐을 터인데 이젠 낚시가자는 말을 쉽게 할 수가 없다. 

새벽공기 가르며 바다로, 강으로 향하고픈 마음은 굴뚝 같지만 웬만하면 낚시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지금 이 순간도, 금빛 물결 반짝이는 넓은 바다가, 한 점 바람 

조용히 스치는 잔잔한 저수지가 나를 기다리는 것만 같고 낚싯대만 드리우면 월척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지금이라도 바로 떠나고픈 마음이 간절하지만 이제부터는 생명을 헤치는 취미가 아닌 다른 취미를 찾아보려고 노력 중이다. 

가끔씩 내 마음속에서 오롯이 물멍을 하고 싶은 마음이 수시로 일렁이겠지만 그때는 

고기를 잡기 위한 목적이 아닌 물 속에서 유유히 왔다 갔다 놀고 있는 물고기들을 애완동물 대하듯 사랑스럽게 바라보면서 지난 날을 추억하는 재미로 시간을 보내며 힐링할 수 있도록 마음을 가져야겠다.  

그동안 나에게 잡혀 준 수많은 물고기들아 미안! 

그리고 이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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