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동창 모임3
2025년 12월 19일 금요일 오후,
전주의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에서는 정기연주와 송년을 기념하는 음악회를 ‘전주시립국악단’과 ‘전주시민국악단’의 합주로 개최했다.
프로그램은 여러 국악기로 울려퍼지는 다양한 캐롤송을 시작으로 몰입과 재미를 더하는 퓨전 국악 연주와 시민무용단의 멋진 공연, 대통령상을 수상한 명창들의 신명나는 판소리와 유쾌한 사회까지 처음에는 조금 낯설었지만 너무 빨리 끝나서 아쉬움이 가득할 만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국악 공연은 생소한 악기와 익숙하지 않은 소리들이 섞여서 더 집중하며 들었다. 맑은 피리소리부터 이름 모를 악기도 여럿 있었으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수록 추임새도 넣게 되고 다함께 빠져들어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우리의 가락임에 틀림없었다.
사실 이 공연은 시립국악단인 나의 고등학교 친구도 함께 연주했는데 자랑스러운 우리 친구도 응원하고 올해가 가기 전에 한 번 더 만나기 위해 몇달 전부터 미리 계획했었다.
오늘은 가장 복잡한 금요일인 데다가 인천에서부터 대전, 광주, 목포에서 이동하므로 오는 시간이 서로 달라서 조금 일찍 도착할 수 있는 몇 명이 친구의 음악회를 대표로 관람하기로 했다. 나도 조금 일찍 서둘러서 기차를 타고 출발했는데 평상시에는 남편 뒤만 따라다녀서 부담없이 다니다가 중간에 내려 환승하는 것도 처음이라 혹시라도 기차를 잘못타거나 놓칠까봐 몇 호차인지, 어느 방향인지 계속 티켓을 보면서 번호를 확인하는 등 간만에 불안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기차가 조금 연착되어 공연에 늦을까봐 한편으로는 긴장의 끈을 꽉 쥐고 있었지만 마음 속으로는 혼자 나서는 여행이 무척 오랜만이라 마냥 신나 있었다. 수십 년 만에 타보는 비둘기호 조차도 어릴 적 엄마 손 잡고 서울가던 옛 생각이 새록새록 떠올라서 정답게 느껴졌다. 짙은 어둠을 가르는 기차 안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창밖을 바라보는 이 순간들이 무척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 본다.
1박인데도 캐리어를 끌고 다녔던 나는 다행히 공연 시간 안에 먼저 도착해서 한숨을 돌리고 다른 친구들이 공연장에 바로 들어올 수 있도록 문자로 안내한 후 인증샷을 남기는 여유도 가졌다.
아쟁 중에 수석인 친구는 세련된 국악단의 단복을 입고 맨앞에서 열심히 활을 움직였다. 아쟁의 연주를 관람하는 것이 처음이라 무척 생경했지만 친구의 모습만큼은 너무나 근사하고 보는 내내 설레일 만큼 멋져보였다.
친구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플래카드도 준비했다. 공연 중간에 응원하기가 눈치보여 거의 끝날 때 쯤에야 플래카드를 들고 친구의 이름을 부르는 용기를 낼 수 있어서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감동받은 친구의 표정을 보니 우리의 기쁨도 배가 되었다.
공연이 끝나고 먼저 모인 5명이 숙소에 들러 짐을 풀고 저녁 식사를 위해 근처 식당을 찾아 나섰다. 전주의 신시가지여서인지 먹거리도 많았고 젊은이들이 많이 북적거렸다. 네온사인이 화려하게 반짝이는 도심 한가운데에서 우리도 나이를 잊은 듯 시내를 누비며 맛집을 찾아다녔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결국 고깃집으로 들어갔다. 우리들의 모든 고민거리와 걱정거리는 뒤로 미룬 채 오랜만에 잔을 부딪히고 다시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재잘거리며 밤을 밝혔다. 그리고 거의 11시가 다되자 행운의 '네잎크로버'(모임 명칭), 우리 7명의 친구들이 모두 모였다.
희한하게도 친구들을 만나면 시간 개념이 사라진다. 평상시에는 밤 11시만 되도 눈꺼풀이 무거워지는데 여기서는 밤 12시까지 가게에 머물러 있다가 숙소에서 꼭두새벽이 되도록 이야기꽃을 피우고 희미한 여명이 살짝 다가올 쯤에서야 겨우 눈을 붙인다.
이번에도 당연히 새벽 4시가 다 되어서 아쉬움을 남긴 채 마지막 불을 껐다. 약간의 늦잠을 자고 아점을 챙겨 먹고 잠깐 앉아서 이야기 나누는가 싶으면 또 벌써 헤어질 시간이 되는 것이 우리의 반복적인 패턴이 되어 버렸다.
항상 제일 바빠서 얼굴 보기 힘들지만 한밤 중인데도 직접 운전하고 달려와 밝은 웃음을 전해준 인선이, 최근에 갑상선 수술을 해서 몸관리가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직장에서 워크숍을 마치자마자 버스타고 내려와 준 우리의 리더이자 총무인 현순이, 아무말 없이 뒤에서 우리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갸장 맏언니같고 믿음직스러운 수영이, 악기도 잘 다루고 성격 또한 똑 소리나는, 우리 중에 생일이 가장 빠르면서 가장 어려 보이는 승희, 보기에는 순하고 믿음도 강하면서 다른 친구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보이지않게 애써 주는 현, 마음 씀씀이도 곱고 모난 곳 하나없이 우리들을 잘 챙겨주고 늦은 나이에도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은, 눈빛이 맑고 피부가 뽀얀 은아 등 모두가 소중하고 특별했다.
‘퇴직하고 함께 해외여행 가자’는 작은 꿈도 갖게 되었다. 다들 건강하게 잘 지내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우리 일곱 친구의 만남이 오래도록 쭉~ 이어지길 바라며 우리의 소망이 이루어져서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을 추억하는 날이 계속 되기를 바랬다.
사실 이번 행사 준비로 친구들 사이가 조금 삐거덕 거릴뻔 했으나 서로를 믿어주고 이해하고 배려해 준 덕분에 거칠어진 땅이 더욱 다져지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가끔 어려운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재치도 발휘하고 순간순간 아이디어를 내는 걸 보며 ‘우리 친구들이 원래 이렇게 똑똑했나?’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특히 귀찮거나 힘든 일들 앞에서도 서로서로 손을 보태고 군말 없이 양보해 주고 욕심없이 내어주는 친구들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착하고 순한 친구들임을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기 전에는 옛 친구로 보이는 또래들이 웃음을 나누며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냥 부럽기만 했었는데 이제는 나에게도 어깨에 힘이 들어갈 만큼 듬직하고 끈끈하고 자랑스러운 친구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감사하고 믿음직스러웠다.
다음 날 먹은 두번째 식사는 이탈리안 음식이었다.
친구들이 일곱이나 되어서 서로 지역이나 식성이 다르므로 샐러드 부페나 낙지, 감자탕 등 먹고 싶은 것도 다양했는데 이번에는 나의 의견을 들어줬다. 약간 소심한 내 입장에서는 주차장과 오픈 시간을 고려해 두 대의 차가 도로를 가로지르며 여러번 뺑뺑이 도는 것이 조금 미안했으나 또 그만큼 신경써 주고 양보해 준 단짝들이 많이 고마웠다.
마지막 일정으로 카페에 들렀는데 시간이 조금 남아서 피곤한 친구들은 차를 마시고 나머지는 추억 몇 장 더 쌓아볼 심산으로 밖으로 나갔다가 주변 풍경이 너무 예뻐서 산책을 하고 호수 주변을 돌았다. 길도 잘 모른 채 너무 멀리까지 가서 왔던 길을 다시 고스란히 되돌아가는 바람에 헤어지는 시간이 갑자기 바빠지는 헤프닝도 있었다.
학창 시절의 고3도 아니고 고2 친구들이 이렇게 일곱씩이나 무리지어 어울리는 것도 흔하지 않은 데다가 여러 지역에서 함께 모이기도 쉽지 않은데 우린 올해 벌써 4번이나 뭉쳤다. 만나면 행복하고 헤어지면 너무나 아쉬운 연인 같은 우리 친구들의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따스한 포옹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우리가 마지막 포옹을 할 때 시커멓게 흐리던 하늘도 내내 참고 있었던 비를 한방울 두방을 떨어뜨렸다. 하늘조차도 고맙게 느껴졌다.
집에 가는 내내 새벽까지 깨어있다가 죙일 웃고 떠드느라 몸이 많이 지치고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더욱 훈훈하고 따스해지는 것 같았다. 우리들이 함께한 소중한 시간을 나눈 사진을 정리하며 다시 한번 마음에 담았다. 이제는 다들 갱년기에 접어들어서 정말 서로의 건강 잘 챙기며 함께 해외여행 가자는 약속을 잘 지킬수 있도록 또 열심히 잘 지내자 다짐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으라고 한다면, 사진 찍기 위해 도서관 앞에 모여 모두 '하나 둘 셋'하고 뛰었던 장면이 생각난다. 점프를 하기위해 최선을 다해 뛰는 모습이 정말 웃기면서도 인상적이었다. 어느 친구도 한마디 덧붙였다. '조금 우울하거나 친구들이 보고싶으면 이 사진을 들여다봐야겠다'고!
가장 젊은 오늘, 우리들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몇 주 전에 손가락 살까지 뜯기며 겉저리를 만들었던 남편은 혼자서 배추를 사다가 또 김장준비를 해놨다. 남편도 나없이 잘 지내주고 연락이 늦어도 이해해줘서 더욱 고마웠다.
오늘의 모임을 위해 신경써 준 친구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해본다. 나도 최근에 공연을 해 봐서 알지만 친구들 챙기랴, 공연 준비하랴, 더군다나 친구들 앞에서 연주하는 시간은 많이 긴장되었을 것이다.
'승희야, 수고해줘서 고마워~~~.
친구들도 고생많았고 또 건강하게 지내고 예쁜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
내 칭구들 많이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