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경

by 바람꽃

우리 부부는 결혼기념일 30주년을 코앞에 두고 있다.

마음 만큼은 실상 그렇게 오래된 것 같지 않은데 아이들 모두 성인이 된지 오래고 몸도 마음도 여기저기 삐그덕거리는 것으로 보아 세월은 우리 부부가 이미 중년 대열에 들어섰음을 팍팍 느끼게 한다.

다가오는 결혼기념일을 서로 축하하기 위해 연가를 내고 남편과 오랜만에 서울 구경을 나섰다.

남편은 연휴동안 평소에 가기 힘든 경북 지역에 가서 텐트도 치고 쏟아지는 별들을 바라보며 자연을 만끽하길 원했지만 추운 것을 유독 싫어하는 난 ‘추운데서 자다가 입 돌아갈 수도 있다’는 핑계를 고수하며 캠핑은 따스한 날 가자고 살살 구슬렸다.


크리스마스에는 남편이 '일직'이라 집에서 나혼자 내내 뒹굴거리며 짐?을 챙기고 다음 날 이른 아침, 홀로 며칠동안 남아 있을 냥이에게 든든하게 밥을 챙겨주고 설레는 마음으로 서울로 향했다. 사실 우리가 이번에 복잡한 서울까지 차를 가져간 데는 다른 목적이 있었다.

세상의 온갖 다양한 만물을 판매하는 ‘도깨비 경매장’에 들르기 위해서였다. 남편이 유튜브에서 우연히 알게 된 경매 프로그램은 '이런 세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신기하고 매혹적이어서 꼭 한번 방문하자고 벼르고 있었다.

우리는 악기에 관심이 많았는데 혹시나 욕심 나는 클래식 기타나 수제악기를 싸게 살 수 있는지 그날 운에 걸어보기로 했다.


‘서울’하면 ‘복잡하고 사람 많고 볼거리와 먹거리가 많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정작 우리 숙소 주변은 무척 조용하고 편의점은 있으나 마트도 찾아 보기 힘든 외진 곳이었다. 숙소에 주차를 하고 지하철 역까지 걸었는데 시골에서나 볼 듯한 풍경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여유롭게 산책할 수 있는 공원길을 따라 냇물이 졸졸졸 흐르고 한겨울인데도 작은 물고기들이 '나 잡아봐라~' 하고 놀리는 듯 시커멓게 모여 있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물위를 한가롭게 서성이는 해오라기와 백로?도 마주했다.

이곳이 ‘내가 아는 서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시냇물도 깨끗하고 공기도 맑고 무척 한산해서 더 정겹게 느껴졌다.


첫 일정으로 식당을 하고 계시는 시누이에게로 갔다.

남편은 역시 '인간 네비'답게 길을 잘 안내했다. 나는 지하철을 타려다가 옆 사람 통행로에 카드결재를 잘못하는 바람에 못나갈 뻔하거나 이미 결재가 되었는데도 지나가야하는 타이밍을 놓쳐서 직원에게 이실직고? 해야하는 황당한 해프닝도 있었지만 모두 색다른 경험이었다.

시누이와 반갑게 재회를 하고 휴게소에서 부실하게 먹은 점심 대신 푸짐하게 차려주신 소고기 전골을 얻어먹으며 재충전을 한 후 사람들이 가장 많은 번화가로 향했다.

년말이어서인지 거리에는 인파에 치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렸고 휘황찬란한 조명과 트리들이 반짝이는 도심 속을 걸으며 서울을 제대로 느끼고 체험했다. 입을 다물지 못하고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 나에게 남편이 촌스럽다고 할 정도로 먹거리와 볼거리가 다양했다.

말로만 듣던 '홍대 거리'에도 들렀는데 정작 홍대는 어디에 있는지 깜깜해서 찾아볼 수가 없었다. 역시 홍대 주변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 취향의 옷가게나 공연 무대 등 이색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특히 나는 반짝이는 액세서리를 좋아했는데 종류도 다양한 데다가 높은 곳까지 진열되어 있어서 아무리 발품을 팔아도 하룻밤 새 모두 구경하기 힘들 정도였다.


날씨는 맑았으나 살갛에 닿는 바람은 코를 베어 갈 정도로 칼바람이었다. 나는 무릎 아래까지 늘어지는 패딩을 입어서 별로 추위를 몰랐지만 코가 빨개지도록 추워 보이는 남편에게 내 체온이 가득한 목도리를 내주었다.

찬바람을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해 마스크도 했는데 숙소에 돌아오니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면서 열이 났다.

몇 군데 안들렀는 데도 만 보를 이미 걸었고 다시 숙소를 향해 걷다가 근처에 있는 공원 구경을 마저 했더니 금새 2만 보를 넘겼다.

딱히 어느 목적지를 향해 간 것도 아니고 아직도 구경하고 싶은 곳이 많았는데 저녁 시간에 이리저리 잠깐 구경하다가 이렇게 2만 보를 넘은 것을 보니 역시 서울이 크고 넓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다음 날은 드디어 경기도 용인에 있는 도깨비 경매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밤새 날이 추워서 인지 숙소 바로 근처 신호등에서 차 시동이 갑자기 꺼져버렸다. 다행히 다시 시동을 걸어서 서비스 센타를 찾아갔다. 우리 지역보다 기온이 훨씬 낮아서 차가 잠시 정신을 잃은 것 같다. 다행히 오늘이 토요일이라 가까운 곳에서 저렴하게 정비를 받을 수 있었다.


당초 계획과 다르게 오전 시간을 훌쩍 넘기고 지나가는 길에 점심을 먹고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

도심 외곽에 있는 건물이었는데 주차장이 여러 개 있어도 주차 자리가 없을 정도로 차가 많았다.

골동품부터 다양한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는 가게들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니 유튜브에서 생중계했던 경매장이 나왔고 경매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남편과 나는 매장에 들어서기 전 다짐해 둔 게 있었다. ‘중국산일 수도 있으니 사고 싶다고 무작정 손들지 않기!’

나는 혹시나 다이슨 드라이기나 구스 이불 같은 새상품이 나오면 사고싶다고 남편에게 살짝 귀뜸을 해뒀다.


역시나 잡동사니 물건들은 어디서 그렇게 쏟아져 나오는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조금 피곤해서 남편 어깨에 기대어 눈을 잠깐 붙이고 있는 동안 정말로 드라이기를 설명하고 있었다. 얼핏 다이슨이라고 들은 것 같아 남편에게 얼른 손을 들어라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다이슨 같은 드라이기?였다. 박스를 보니 역시 중국산이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그나마 내가 산 물건이 가격도 훨씬 싸고 새상품인 것 같아 만족하기로 했다. 조금 후에 구스 이불도 경매했는데 남편이 반대를 해서 사지 못했다.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았다.

바로 옆 창고에서는 골동품 경매도 했다. 그림이나 도자기 같은 오래된 작품이라 경매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남편이나 나나 예술품에는 전혀 문외한이라 살짝 구경만 하고 나왔다.

가끔 행운권 추첨도 했지만 역시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벤트였고 귀한 악기도 만나기 쉽지 않았다. 결국 드라이기 하나 들고 새참으로 오뎅 하나 사먹고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했다.


나는 남은 저녁시간에 더 많은 곳을 둘러보고 싶었지만 어제 너무 무리한 관계로 남편이 다리가 아파서 꼼짝할 생각을 안했다. 시누이도 바쁘셔서 무엇인가를 같이 할 만한 시간이 없었다. 다행히 우리 숙소 내에 목욕탕이 있어서 다음날 일찍 다같이 목욕을 하기로 했다. 시누이 식당에서 마지막 손님이 나갈 때까지 정신없이 수다를 떨다가 다 함께 숙소로 복귀했다.

아들 덕분에 육군 숙소에서 편한 밤을 보내고 잠깐이나마 시누이와 함께 때도 밀며 개운하게 하루를 시작했다. 전혀 생각지 못한 일정이었지만 새해를 맞이하기 전 목욕재계도 하고 더욱 알차게 보낸 것 같다.

다시 시누이를 데려다 주기 위해 차를 끌고 서울 중심으로 향했다.


시누이는 서울에서 오랫동안 살아서 지나가는 곳마다 마치 가이드처럼 관광지 설명과 길 안내를 해줬다.

시내를 들어서니 역시 서울답게 자동차도 오지게 많고 길도 복잡하고 네비가 안내를 해 줬어도 몇 번이나 다른 길로 쏠려갈 뻔했다.

10km정도 되는 거리를 거의 한 시간 정도 기어가서 시누이를 보내드리고 우린 다시 냥이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2025년도가 가기 전에 생각지도 못한 서울 구경과 시누이와 잠시라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까지 또 좋은 추억을 쌓았던 것 같다.

남편은 또 서울을 가게되면 '절대 차를 가져가지 않겠노라!'고 선언을 했다.

아무튼 난 남편과 시누이 덕분에 서울 구경한 번 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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