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오랜만에 가슴 뛰는 기사

한 슬럼지역의 도피처가 되고 있는 컨테이너 도서관 이야기


정신없는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는 중이라 몇 주간 블로그 포스팅에 게을렀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프로그램을 꽉 짜 놓고는 힘들어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미국은 여름방학이 두 달로 길어요. 교육업에 종사한지 24년째... 매년 7-8월 두 달은 (남의)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달이라고 여기며 반 평생을 살았는데 올해는 힘이 많이 드네요. 역시 나이는 무시할 수 없나봅니다.


한국 음식점이나 반찬가게가 근처에 없는 동네에 살고, 외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요리를 거의 매일 하던 저도 올 여름은 퇴근후엔 부엌에는 들어가고 싶지도 않았어요. 다행히 팬데믹 동안 이 곳에도 한국음식을 배달해주는 곳이 많이 생겼어요. 그 중 간이 세지 않은 반찬집을 찾아서 주문해서 먹고 있습니다.


힘든 가운데서도 기분 좋은 일은 팬데믹 기간동안 공격적인 프로그램을 한 덕분에 타운 관계자들의 눈도장을 확실히 찍은 것이예요. Library Board에는 타운의 시장 대행, 타운 의회 멤버, 타운 교육청 디렉터 등 타운의 행정을 맡고 있는 다양한 리더들이 포함되어 있어요. 한 달에 한번 도서관장과의 회의가 있어 도서관에 오셔도 저의 방에는 한번도 들르시지 않던 보드 멤버들이 언젠가부터 저희 방에 와서 내 이름을 기억해주고 내가 하는 프로그램을 알고 있다고 하면서 칭찬을 해 주기 시작하셨어요. (웃으면서 고맙다고는 하는데... 아직도 영어로 small talk은 참... 힘들어요. ㅠㅠ; ) 높은 사람에게 칭찬을 받아서 기분좋다기보단 앞으로 제가 도서관 운영과 관련한 어떤 제안을 했을때 힘이 실릴 수 있다는 기대감이 좋은거죠.




오랜만에 쓰는 포스팅이라 안부 겸 서론이 좀 길었어요. 몇 달전 감동적으로 읽었던 기사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읽은지 오래되었는데 마음만 먹고 소개가 늦었네요.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인 NPR의 온라인 사이트에서 읽은 기사입니다. 사진이 위주인 기사이기에 링크로 들어가셔서 사진을 보시는걸 추천드려요.

https://www.npr.org/sections/goatsandsoda/2021/06/27/1010021027/photos-improvised-library-brings-joy-of-books-to-kids-living-in-gang-territory


기사는 남아공의 Cape Town에 있는 한 도서관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남아공의 대표적인 도시인 Cape Town에서도 Scottsville이란 지역은 마약과 조직폭력으로 알려진 우범지역입니다. 이 곳에 도네이션받은 중고책들을 컨테이너박스에 모아서 도서관을 만든 사람이 있습니다.


Terence Crowsler는 바로 자신의 고향인 이 곳에서 자랐습니다. 어릴때 언어장애가 있어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한 그는 30분을 걸어서 근처 도서관으로 가서 책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 곳의 아이들은 가난과 실업, 역할모델의 부재를 당연히 받아들입니다. 
저희가 바라는 것은 독서로 인해 그런 기준들이 변하는 것입니다.
= Terence Crowster, the founder of The Hot-Spot Library =
 

이 컨테이너 도서관은 두 라이벌 조직폭력 집단 구역 가운데 경계에 있습니다. 두 집단간의 폭력사태가 일어날 경우 직접적 피해를 받는 장소에 있다는 뜻이죠. 하지만 두 폭력집단또한 이 동네에서 도서관이 가지는 영향을 알고 있기에 도서관을 건드리지 않습니다. Terence Crowster가 이 도서관의 이름을 The Hot-Spot Library로 지은 이유입니다.


도서관이 설립된 2017년에는 우유박스 책장에 꽂힌 중고 책들로 가득한 3*6 미터의 컨테이너에서 30명의 회원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지금은 100명의 성인회원을 포함한 전체 700명의 회원과 2000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두 번의 절도사건으로 $1500 가치의 전자제품을 분실하기도 했지만 도네이션을 통해 다시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Terence는 이 도서관을 홍보하기위해 근처 학교들을 찾아다니며 "독해 능력"에 대한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통계 상 90%의 남아공 사람들이 글을 읽고 쓸 줄 안다고는 하지만 단지 22%의 4학년 학생들만이 "독해 능력"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아공의 교육을 걱정하는 전문가들은 많은 학생들이 읽기를 공부로 생각하고 있는 현실에서 즐거움을 위한 독서를 알려주는 것이 절실하다고 주장합니다.


The Hot-Spot Library 또한 즐거운 독서활동을 위해 '북 리뷰" 시스템을 통해 사용자가 다른 사용자에게 책을 추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한 공작 활동 등 다양한 도서관 프로그램을 통해 도서관 활용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저는 책읽기가 좋아요. 저의 대부분의 친구들이 이 도서관에 온답니다.
여기는 안전한 공간이예요. 바깥은 언제나 총격이 있거든요.
= Bernalee Victor, 12세 도서관 사용자 =

The Hot-Spot Library의 성공에 힘입어 두번째 컨테이너 도서관의 개관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두번째 도서관 또한 조직폭력집단 갈등 지역에 세울 계획입니다. 폭력집단 소속으로 네 번의 총상과 두 번의 칼에 의한 중상을 입었던 Ngxola가 두번째 도서관의 관장이 될 예정입니다.


독서의 힘이 제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를 이해하게 해 주었습니다.
저의 상상력 또한 열어주었지요.
= Ngxola Sabelo, 전 폭력조직원 =

Terence는 두 번째 도서관의 성공도 확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여는 안전한 안식처를 만들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자신을 잘 알게 된다면 자신들이 될 수 있는 미래의 모습이 무엇인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




도서관에서 근무하기는 하지만 저는 도서관에 대한 찬양이나 환상에 대해 시니컬한 편이예요. 세상엔 도서관보다 중요한 것이 많이 있다고 생각해요. 선교지에서 도서관을 오픈하려다 중요도에서 밀려서 실패한 경험이 영향을 미쳤을수도 있고요. 또, 나이가 들수록 건강이 중요하게 여겨지다보니 물질적인 거에 치중하게 되기도 하고요. "책이 밥 먹여주냐?" 뭐 그런거죠. ^^; 그래서 제가 하는 일에 지나친 보람을 느끼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예요. 아이러니한 표현이긴한데 "나 없으면 세상이 안 돌아간다"는 자만심을 경계하고 싶거든요.


하지만 가끔 이런 기사를 읽게 되면 마음이 따듯해지고 가슴이 뜁니다. 책이 밥 먹여주지 않지만 우리가 또 밥만 먹고 사는것은 아니쟎아요. 내 삶이 풍성해지는데 책 만한게 또 없지요. 물질적 관점에서도 비용 대비 고효율이쟎아요. 위의 소개한 도서관처럼 내가 속한 커뮤니티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도서관까지는 아니라도 내게 주어진 아이들의 독서 인생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힘을 내어 여름방학을 잘 마무리해보려고 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벌금 때문에 도서관을 끊지 마세요! 제발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