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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2학년이 "해리 포터"를 읽는다고요?

독서레벨의 인플레이션... 심각한 문제입니다

미주 이민자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사이트 중 missyusa 가 있습니다. 미국생활의 소소한 노하우를 서로 공유하고 온라인상에서 친구와 수다를 떠는 것같은 재미를 주는 사이트입니다. 며칠전 엄마들의 자녀교육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페이지에서 기함할 만한 포스팅을 읽고 스크린 캡쳐를 했습니다. 

한국계시는 분들이 보시기에도 이 대화가 정상적이라고 생각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초등 2학년이 "해리 포터"라니욧! 언급되어있는 "Land of Stories", "Wings of Fire", "Percy Jackson" 모두 기가 막히는 답변입니다. 심지어 그 책들을 거의 외웠다니... 


물론 "학습을 위한 읽기"가 아닌 "즐거움을 읽기"를 권장하는 공공도서관 사서로서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선택해도 좋다고 해야하는게 맞습니다. 그러니 어느 누구도 "해리 포터"를 읽을 자유는 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초등 2학년인 여러분의 자녀가 "해리 포터"를 읽지 않더라고 (혹, 읽지 못하더라도) 완전히 괜찮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아동사서 이전에 교육업종에 종사했고 그 중 3년은 한국에 발령받아 근무를 했기에 한국학생들이 자신의 실제 레벨보다는 어려운 책을 읽고 있다는 현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트렌드가 미국으로도 옮겨온걸까요? 특별히 우리나라 아이들이 도전정신이 강한 걸까요? 아님, 보여주기 위한 독서를 하는걸까요? 다양한 이유가 있을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해하지도 못하는 두꺼운 책을 붙잡고 있는 것은 그냥 시간낭비일 뿐입니다. 시간낭비로라도 컴퓨터 게임 대신 책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앞으로 살아갈 날 동안 독서라는 좋은 취미를 유지하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할지, 부정적으로 작용할지는 장담하기가 힘듭니다. 


이번 여름에 제가 저희 타운의 초등 2-3학년 학생들과 북클럽에서 "Saving Winslow" by Sharon Creech를 읽고 있어요. 이 책과 "해리 포터"를 계량적 단위로 비교해 보겠습니다. 비교할 책으로 특별히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오늘 아이들과 프로그램을 했기 때문에 고른거예요.

한 눈에 보기에도 1년 이상 리딩레벨이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수있습니다. "Saving Winslow"도 결코 쉬운 책이 아니예요. 도서관의 북클럽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독서를 좋아하고 자연스럽게 학교 성적도 좋은 학생들이 대부분이예요. 그래서 올 가을에 2-3학년에 올라가는 아이들이라도 이 정도의 책을 읽을 수 있는 아이들만 북클럽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2학년이지만 아직 챕터북을 시작하지 않은 아이들을 위해서는 "Reading is Fun"이라는 다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Saving Winslow"에는 날때부터 연약하게 태어난 한 아기염소 Winslow를 돌보는 Louie라는 아이와 그의 친구 Nora가 있습니다. Nora는 Winslow가 살아남지 못하면 받을 상처가 두려워서 자신의 감정을 숨긴채 Winslow에게 무뚝뚝하게 대합니다. 아침 일찍 Nora가 Winslow를 데리고 나가 산책을 했다는 것을 알게된 Louie가 왜 그랬냐고 묻자 Nora는 "나는 원래 아침 일찍 일어나는데 내가 Winslow와 산책할때 너를 깨우고 싶지 않았어"라고 대답합니다. 지난주에 제가 아이들에게 내준 discussion question이 있었습니다. 


Why do you think Nora did not tell Louie that she was taking Winslow for a walk?

정답이라는게 없긴 하지만 Nora가 Winslow에게 대한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Louie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아이가 없었어요. 참여한 아이들은 모두 책에 적혀있는 Nora의 대답을 언급했어요. Nora의 숨은 의도를 아이들에게 대놓고 알려주지 않고 질문을 통해서 깨닫도록 하느라 고생했어요. 그리고 겉과 속이 다르게 행동하는 Nora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시키는 것도 힘들었어요. 그런데 한 학년 레벨이나 높은 "Harry Potter"로 같은 아이들과 북클럽을 한다면.... 상상하기도 힘드네요.


오늘 이 책으로 프로그램을 했기 때문에 한 예로 드는 것 뿐입니다. 다른 책들을 읽었을때도, 또 더 높은 학년의 아이들과 더 어려운 책을 읽었을때도 줄거리만 겨우 이해하고 있는 아이들과 북클럽을 하면서 작가가 숨겨놓은 유머코드, 등장인물의 심정의 변화, 문화적 배경 등을 전혀 감을 잡지도 못하는 현실에 매번 부딪힐때마다 "다같이 읽고 있어도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구나"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줄거리만 이해하고 즐기는 것도 어떠냐? 하면서 북클럽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좋은 책은 여러 층의 레이어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한 겹만 받아들여도 좋고, 또 여러 겹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더 좋은 책이 좋은 책이지요. 


아이들이 줄거리만 이해하면 어떠냐? 그렇다면 2학년이 "해리 포터"를 읽고 줄거리만 겨우 따라잡겠다는데 왜 불만이냐고 물으신다면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제가 좀 흥분해서 막말을 좀 하겠습니다.) 영어를 못하는 엄마들이 자신의 아이가 어려운 책을 손에 들고 있으면 읽는다고 착각하시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아이들이 책은 엄청 많이 읽었는데도 책에서 배워야할 것을 소화하지 못한 채 유치한 생각밖에 못하는 아이들이 되는거예요. 이런 읽기는 그런 엄마들이 좋아하시는 "언어학습을 위한 독서"의 방법으로도 비효율의 극치를 달리는 선택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이들과 책을 읽다보면 "정확성"에 비해 "유창성"이 뛰어난 아이들이 있습니다. 코끼리를 더듬거리면서 만져도 답답해하지 않는 맹인과 같은 아이들이예요. 물론 "정확성"에 너무 집착해서 자기가 모르는게 단 하나라도 나오면 진도가 나가지 않는 답답한 아이들도 문제지만, 두리뭉실하게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에 대한 메타인지가 없는 아이들은 정말 정말 문제입니다. 




그럼 이민1세대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부모는 어떻게 도와주어야하나요? 아이의 레벨에 딱 맞는 책을 찾기도 어렵고 혹, 찾았다고해도 아이들이 읽는 모든 책을 같이 읽을수도 없는데요? 


초등 2학년이면 그림책 읽어도 될 나이입니다. 많은 그림책들의 텍스트는 시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기에 함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들이 풍부합니다. 천천히 음미하고 생각할 꺼리가 넘쳐납니다. 부모가 영어를 모르면 그림만 같이 보면서 한국어로 얘기하면 됩니다. 그림이라는 매체로 지적 자극을 주면 됩니다. 매일 그림책 한 권 소리내서 (아이가 읽으면 됩니다) 읽고 그림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스토리를 자신의 언어로 다시 말해보게 하면 됩니다. 등장인물의 입장이 되어 스토리를 생각해보면 됩니다. 제일 재미있었던 부분을 서로 나누면서 의견을 교환하면 됩니다. 영어로 못하면 한국어로 하면 됩니다. 생각을 담는 그릇이 영어이면 물론 좋겠지만 자신의 생각을 부모의 언어로 표현해보는 것은 또 다른 장점이 있습니다. 엄마가 "해리 포터"를 같이 읽는게 아니라 나중에 그 책을 아이 스스로 온전히 이해할 수 읽을 수 있을때까지 생각의 그릇을 그림책으로 키워주면 됩니다. 부모와 자녀가 그림책 같이 읽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또 글을 올리겠습니다. 한 단락으로는 설명이 부족해요. 언어 학습도 어려운 챕터북보다는 그림책으로 하는게 더 효과적입니다만 구체적인 방법도 다음에 다시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미국아이들은 언어학습은 학교가서 하면 되요. ^^; )


초등 2학년 자녀가 "해리 포터" 읽는다고 자랑하지 마세요. 그건 320쪽짜리 두꺼운 책 손에 쥐어주고 나몰라라 내팽겨치고 있다는 부끄러운 고백입니다. 


책 안 읽어도 지혜로운 사람 많습니다. 책 말고 다른 자극을 통해 생각하는 법을 아는 사람들이겠죠. 책은 생각의 깊이를 위한 도구, 언어능력 향상을 위한 텍스트 일 뿐이예요. 물론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난감이기도 하지만 장난감으로만 활용하기에는 아쉽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학교 공부가 많아서 책읽을 시간이 부족하다는 개탄할만한 불평을 하는 현실 속에서 한 권을 읽더라도 아이들의 뇌와 심장을 자극할 수 있는 책과 독서 활동을 도와주세요. 여러분의 아이들을 사랑하는 저의 간절한 부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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