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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할 줄 아는 사서가 필요한 이유

이민자들도 언어의 장벽없이 도서관 서비스를 충분히 누릴 권리가 있다

전화를 받자마자 한국어로 말씀하시기에 놀랐습니다. 마음이 급하셔서 인사도 없이 용건부터 말씀하셨어요. "우리 딸이 그러던데 여기로 전화하면 한국책을 빌리는 것을 도움받을 수 있다고 하던데요." 


"네, 맞아요. 어떤 책이 필요하세요?" 


"아이고... 고맙네요. 그럼 그 책을 제가 여기 도서관에서 픽업할 수 있는거죠?" 


"네, 저희 도서관에는 한국책이 없어요. 원하시는 책을 알려주시면 다른 도서관에는 있는지 알아보고 있으면 저희 도서관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할 수 있어요. 일주일 정도 기다리셨다가 책이 여기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으시면 그때 이리로 오셔서 가지고 가시면 됩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그러면 제가 다시 연락드릴께요. 직통 번호 좀 알려주세요."


내 책상 전화기의 번호를 알려드리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대출창구에 전화하셔서 한국어 가능한 직원을 바꿔달라고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아직 그 할머니(로 추정)를 도와드린건 하나도 없는데 벌써 뿌듯한 걸까요? 모국어 잘 한다고 뿌듯할 일은 없고 영어 스트레스만 많은 직장 생활 중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입니다. 현재 일하는 도서관의 타운은 한국사람이 거의 없는 동네입니다. 센서스 통계에 의하면 한국어 사용자가 전체 인구의 1.7퍼센트인 동네이지요. 당연히 제가 이 도서관에 취직이 되었을때는 저의 한국어 능력이 플러스가 되기보다는 도리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는 마이너스로 작용했습니다. 


뉴욕 내에도 한국인이 많이 사는 지역의 도서관에 근무했더라면 한국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의 경우 그 전의 두 번의 사서 포지션도 한국어 능력이 장점으로 작용하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첫번째 직장인 Queens Library는 흑인과 히스패닉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에 있던 도서관이었고, 두번째 직장인 New York Public Library는 말그대로 melting pot으로 영어라는 공통어만을 사용하던 도서관이었습니다. 


물론 인터뷰 할 때는 영어를 못하는 나의 장점보다는 다른 언어를 할 줄 안다는 점을 장점으로 세일즈했습니다. 단지 언어 차원이 아니라 global perspective를 가지고 있는 열린 태도의 도전적인 이민 1세이자 후천적 노력으로 영어를 마스터한 똑똑한 사람으로 나 자신을 포지셔닝한 것입니다.

 



도서관에서 근무하다보면 나처럼 다른나라의 언어를 할 줄 아는 직원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언어의 장벽 때문에 도서관 활용에 제약을 받는 많은 이민 1세대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이민 1세대 학부모들이야말로 아동사서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자신이 미국의 학교생활을 해 보지 못했기에 자녀를 도와줄 수 없는 약점을 도서관에서 도와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서관의 자료들을 구입할때도 센서스 통계자료나 공립학교의 설문조사 자료들을 참고해서 다양한 언어의 자료를 구입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뉴저지의 한국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Fort Lee라는 동네에서는 당연히 한국책과 잡지, DVD를 많이 구입합니다. 현재 한국어 사용자가 전체 타운 인구의 20퍼센트이지만 그렇다고 전체 예산의 20퍼센트를 한국 자료에 쓰지는 않습니다. 한국어 사용자들도 미국책들을 더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이민 1세대의 경우 도서관 사용률이 현저히 낮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국어로 된 도서관 안내지나 프로그램 설명서 등이 꼭 필요하고 실시간으로 도와줄수 있는 직원이 있다면 도서관의 문턱을 낮춰줄 수 있게되어 더 좋습니다. 


저의 경우 New York Public Library에서 일할때 한국책의 구입에 도움을 준  적이 있습니다. New York Public Library의 경우에는 각 브랜치가 알아서 책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headquarter에 구입을 담당하는 부서가 따로 있었습니다. 40여개 언어의 자료를 구입을 하지만 그 모든 언어를 할 수 있는 직원이 있지 않고 스페인어 담당자와 중국어 담당자만 있었습니다. 나머지 언어는 NYPL에게 책을 판매하는 vendor에서 예산에 맞게 추천하는대로 구입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어의 경우 맨하탄 한인타운에 있는 한 책방이 vendor였기에 그 책방에서 알아서 책을 납품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책을 구입하는 것이 저의 업무는 아니지만 특별히 아동도서의 경우 제가 원하는 책을 골라서 Purchasing Dept.의 담당자에게 전해주면 너무 고마워하셨습니다. 


또한 New York Public Library 근무 당시 한국어 스토리타임을 처음 시작하였습니다. 맨하탄에 살고 있는 이민 2세 학부모님들이 고마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손자, 손녀를 데리고 참여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자신들은 자녀에게 한국어를 가르치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는데 그런 자녀들이 손자, 손녀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려고 하는 정성이 귀하고 또 그런 아이들에게 한국어로 프로그램을 해 주는 저에게 감사를 표시하실때 참 뿌듯했습니다. 뉴저지로 옮긴 이후로도 한국어 스토리타임은 꾸준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인 이민자가 많은 뉴저지의 도서관에서도 한국어가 가능한 직원의 수가 너무 적습니다. 그래서 주변 지인 중 도서관 직종에 관심을 보이기만 하면 제가 적극 추천하면서 취업을 위해 도와드리려고 합니다. 지금보다 훨씬 더 한국어 가능한 직원이 많아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언어를 잘 하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건 다른 언어와 문화에 대한 열린 마음이기도 합니다. NYPL에 근무하던 당시 다른 직원들에 비해 제가 이민 1세대 사용자들에게 더 친절할 수 있었던건 저 또한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손짓 발짓을 통해서라도 상대방을 도와주고자하는 직원들의 태도가 중요한 것이죠. 


특별히 요즘은 구글 번역기가 너무 잘 되어 있어서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기도 쉬운 상황입니다. 예전 NYPL에 근무할때 한 중국분께서 저에게 오셔서 (저희 도서관 직원 중에 아시안이 저 밖에 없었거든요) 중국어로 솰라솰라하시다가 제가 미안한 표정으로 "No Chinese"했더니 구글번역기로 중국어 -> 영어로 바꿔서 여쭤보시더라고요. 저도 영어 -> 중국어로 바꿔서 대답을 해 드렸어요. 답변을 들으신 사용자께서 환하게 웃어주시고 저도 같이 웃었어요. 우리의 공통 언어는 얼굴 표정 뿐이지만 기술발전으로 서로 통하는 세상이 된거죠. 




저에게 전화주셨던 할머니처럼 적극적인 태도도 한국어 가능한 직원을 당당히 요청하시는 일이 많아질수록 도서관 매니저가 한국어 가능한 직원을 뽑아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꺼예요. 또한 저처럼 현재 도서관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한인 이민자들을 위한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해서 한인 이민자들께서 도서관 통계에 영향을 줄 수도 있고요. 많은 한인 이민자들께서 쭈뼛거리지말고 당당히 도서관 건물 안으로 들어오셔서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해주시면 전체 한인사회를 위한 큰 도움이 될꺼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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