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대박 사건(18번-연재 완료)

더 높이 '배면 뛰기'의 패러다임적 혁명이다

by 오엔디

글쓰기 대박 사건의 마무리는 조선의 왕과 신하들이 보여준 진짜 ‘높이뛰기’ 숨은 이야기로 그 여정을 정리해 본다.


인생을 살다 보면, 가로막힌 벽을 한두 번 만나게 되는데, 그것을 스스로 넘고 싶다면, 먼저 ‘뛰는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글쓰기도, 인생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흔히 높이뛰기를 정면으로 넘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모두가 그렇게 했으니까.


그러나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딕 포스베리는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 정면이 아닌 등을 보이며 뛰는, 이른바 ‘배면 뛰기’를 세계 무대에서 처음 선보였다.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렇게 패러다임의 전환, 그건 혁명적 도전이었다.


그 무모한 도전이 중요한 건,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남들이 손가락질할 때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한 그의 아름다운 용기였다.

“목이 부러질 거야.” “말도 안 되는 짓이지.” 이런 비난 속에서도 그는 뒤로 뛰었다. 그리고 훨씬 더 높은 곳을 훌쩍 넘는다. 혁신은 그렇게 시작된다.


배면 뛰기 기록은 2미터 24, 올림픽 금메달. 그리고 인간의 한계를 넘는 뛰는 방식이 트렌드를 만들고, 세상을 함께 바꾸었다.

하지만 진짜 혁신은 숫자나 기록이 아니다. 남들이 조롱하고 손가락질할 때, 자기만의 방식으로 뛰는 용기. 그가 몸을 뒤로 던진 건 단지 자세가 아니라, 패러다임의 새로운 전환 그 자체였다.


조선에도 그런 ‘배면 뛰기’ 왕들이 있었다.

그들은 단지 벽을 넘은 것이 아니라, 방식을 바꾸어 새로운 미래를 열었다.


성종과 집현전의 해체 – '바꿀 수 없다'는 믿음을 훌쩍 뛰어넘은 배면 점핑


성종은 세종과 문종에 이어 조선 초기의 문치주의를 계승한 왕이었다. 그러나 그는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머무르지 않았다.


성종은 세종이 만든 집현전을 해체했다. 누구나 신성시하던 제도였다. 그러나 훈구세력의 기득권이 이 안에서 뿌리내릴 무렵, 성종은 과감히 그 바닥을 드러냈다.


그리고 사림의 새로운 인재를 대규모로 발탁한다. 모두가 "그건 위험해"라고 말하던 그때, 그는 스스로 등을 보이며 위험을 감수하고, 패러다임 점핑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 한계를 훌쩍 넘었다. ‘사림’을 등용해 새로운 정치의 흐름을 연 것이다. 이는 마치 모두가 가위 뛰기를 할 때, 홀로 배면 뛰기를 선택한 지도자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위기를 막고, 더 높이 도약하기 위해. 기존의 틀을 과감히 해체하고, 그 위에 새로운 질서를 세운 위대한 업적이 된 것이다.


정약용과 실학 – 배운 대로 살지 않고, 깨달은 대로 쓰고 다시 배운다


정약용은 성리학이 지배하던 시대에 실학이라는 새로운 낯선 길을 택해 걸었다.

“한 글자를 알면 한 가지 백성을 이롭게 해야 한다”라고 그는 믿었다. 그의 글은 현장을 누비며 실행과 실천으로 걸었고, 민초를 품고, 제도를 바꾸려 끊임없이 도전했다.


누구나 뒤에 등지고 서있던 사상의 가로대 앞에서, 그는 스스로 몸을 눕혀 뛰어 그 한계를 넘었다. 책상이 아니라 이 땅에서 배운 참 글쓰기. 그것이 200년 뒤, 지금도 살아 숨 쉬며 패러다임의 전환을 만드는 이유다.


정조 – 세상의 틀을 넘은 '조용한 배면 뛰기'


정조는 사도세자의 아들로, 정통성조차 늘 위태로웠다. 언제나 노론의 감시 아래 그는 숨죽이며 공부했고, 서서히 그러나 때를 맞이하면 혁명적 틀을 과감하게 바꿨다.


규장각을 세우고, 실학자를 등용하고, 장용영을 창설하며 국방도 정비했다. 어찌 보면, 그의 개혁은 소리 없는 배면 뛰기였다.

적들을 정면으로 부딪치기보다, 우아하게 넘는 방식으로. 그의 말 한마디는 지금도 곧게 남아 있다. “임금이 독서하지 않으면, 세상은 눈먼 짐승이 된다.”


사도세자와 영조 – 금기의 문턱 앞에 선 두 사람


아버지 영조는 '탕평책'으로 당쟁을 넘으려 했고, 아들 사도세자는 '감성 정치'로 백성에게 다가가려 했다.


둘의 방식은 전혀 달랐다. 영조는 조심스러운 점프였다면, 사도세자는 감정과 직관의 점프.

결국, 그 방식의 차이는 비극으로 귀결되었지만, 사도세자의 파격적인 시도는 이후 정조를 통해 다시 꽃핀다. 마치 실패한 점프였지만, 다음 세대의 성공을 예비한 높이뛰기였다.


그리고 오늘, 나는 묻는다.

당신은 여전히 정면으로만 뛰려 하는가?


세상은 이미 바뀌고 있는데, 당신은 아직도 같은 자세, 같은 틀 안에서 계속 넘지 못하는 실패를 반복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제 뛰는 자세를 바꿔야 한다. 지금 이 순간이, 당신의 배면 뛰기가 될 수 있다.


진짜 용기에 대한 세이노의 가르침,

그는 이렇게 말했다.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는 한,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결과는 똑같다. 자신만의 길을 가되, 그 길은 반드시 남을 이롭게 해야 한다.”


그의 글을 읽은 한 중년 가장의 이야기를 큰 울림으로 전하고 싶다.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그는 50대에 갑자기 해고되었다. 재취업은 쉽지 않았고 늘 생활고에 시달렸려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접한 세이노의 말에 따라 작은 도서관에서 독서 모임을 시작했다.


처음엔 두세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가 꾸준히 나누었던 세이노의 소중한 문장과 재취업, 그리고 인생 회복 기록은, 어느새 지역 신문에 실리고, 청소년 대상 강연 요청까지 이어졌다.


“나는 아직도 실업자입니다. 하지만 내 삶은, 내 마음은 실업자가 아닙니다.”


그가 말했다. 누군가는 이 변화를 미미한 점프라고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그에게 있어 가장 높은 벽을 넘은 순간이었다.


나도 오늘, 내 방식으로 다시 뛰어본다.

정면이 아닌, 비웃음 속에서도 조용히 몸을 뒤로 던져, 오직 나만의 호흡으로 나만의 글로,

저 벽을 넘는다. 지금 당신 앞의 그 가로대는,

당신의 자세만 바꾸면 충분히 넘을 수 있는 높이일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가 진짜 배워야 할 건 높이 뛰는 법이 아니라, ‘다르게 뛰는 법’이다.


우리는 왜 늘 정면으로만 부딪히려 할까?, 왜 나만의 방식으로 넘으려 하지 않을까? 등, 배면 뛰기의 진짜 가치는 ‘신체의 유연성’이 아니라, 세상의 틀을 바꾸는 ‘시선의 전환’에 있다.


글쓰기 역시 그렇다. 지금까지의 방식으로 안 되는가? 그렇다면, 약점이든 강점이든 등을 보이며 뛰어야 할 시간이다.


세이노는 이렇게 말한다. “위대한 사람은 기존 질서 안에서 열심히 한 사람이 아니라,

질서를 바꾸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제 정면으로 뛰지 않으려 한다. 세상이 보지 못한 배면 뛰기를, 내 글에서 먼저 시도해 보려 한다.


높이뛰기는 가로대를 넘는 일이 아니라,

고정관념을 넘는 일이다. 그리고 그 혁신은 늘 혼자서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시작된다.


항상 기억하라!

높이뛰기의 핵심은 '다르게 시도할 용기'이며,

글쓰기의 본질은 '그 용기를 기록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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