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시, 나를 고쳐 쓴다(1)

제1화, 글쓰기는 내 안의 생명 신호였다

by 오엔디

《이제 다시, 나를 고쳐 쓴다》

글쓰기로 다시 중년의 봄은 피어날 수 있을까?

- 인생 후반기, 새롭게 도전하는 배면 뛰기 점핑 은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냥 온 더 고잉!


퇴직은 끝이 아니라, 나를 다시 써 내려갈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 안에는 늘 무언가 쓸 준비가 되어 있다. SNS는 늘 쓸 만한 거리, 사진과 글, 그것을 움직이는 배경들에 배고프다.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던 어느 날 인가? 익숙한 한 문장이 조용히 손을 내민다. '너도 잘할 수 있어' 짧은 한 마디가 남은 여정을 태운다.


그렇게 시작된 '하루 한 줄'이 내 안의 생명 신호가 되었고, 말하지 못했던 시간들이 문장으로 돌아온다. 이 연재는 누구나 한 번쯤 겪게 될 중년이 행복한 추억으로 삶의 의미를 찾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온 우주의 기운과 정성을 모은다.


글쓰기를 통해 다시 일어선 삶의 조각들을 새롭게 담아서 이젠 직업도, 명함도 사라졌지만

‘♡♧◇♤’라는 작가로 다시 살아보는 행복한 이야기의 시작이다.


버팀목 하나, 글은 병원보다 먼저 나를 다독였다. 수익보다 더 큰 선물, 한 독자의 “저도 그래요.”라는 그 말을 잊을 수가 없다.


버팀목 둘, 새벽 4시, 가장 나다운 시간에 글과의 딱 1시간 데이트,


버팀목 셋, 조회수 하나 없는 글과 한 동안 잊힌 댓글도 결국 나를 지탱해 준다.


버팀목 넷, 퇴직 후의 인생도 걸작이 될 수 있다면, 지금의 첫 문장이 될 수 있다.


버팀목 다섯, “지금 글 써서 뭐 하게요?”, “내 두 번째 봄은 어떤 꽃을 피우며 살고 싶은가?”


그동안 잘 견뎌 왔으니,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아 중년의 배짱과 배면 뛰기 점핑으로, 그 시작과 끝을 함께 써 내려가보자.


제1화. 글쓰기는 내 안의 생명 신호였다


퇴근 후에도 나의 하루는 끝나지 않았다.

팀장도, 부장도 아닌 채로 시간만 흘렀다.

함께 일하던 후배는 어느새 내 위로 올라섰고,

나는 점점 뒤로 밀려나는 느낌 속에서

가늘고 긴 자존감을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술 후 회복이 덜된 건강상 문제가 조용히 내 삶의 균형을 흔들기 시작했다.

여전히 회복되지 않는 체력,

아무도 찾지 않는 퇴근 후의 고요와 정적.

그리고 불쑥불쑥 올라오는 질문들.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하지?”


불안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의미 없는 하루가 반복되던 그 시간,

나는 "이미 너무 늦었어."라며 새로운 도전을 주저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서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작은 신호가 들려왔다.

그 말이 마른땅에 잉크 한 줄기처럼 번져갔다.


글은 내 안의 생명 징후였다. 병원도 해결하지 못한 공허함을, 글이 대신 안아주었다.

그때부터 나는 ‘나’를 다시 써보기로 했다.


요즘 우리는 하루 만 원의 가치로 자신을 내맡기며 산다. 커피 한 잔 3천 원, 김밥 한 줄 4천 원. 그게 오늘 하루의 보상인 듯 힘겨워한다.


예전에 한 주지스님의 강연에서 들은 이야기다.

‘보시(布施)’는 재물이 아니라 마음의 실천이다.

세 사람에게 커피 한 잔씩, 마음을 건네면 하루 만 원의 정성이 1년 후, 천 명에게 마음을 나눈 셈이다. 그런 하찮아 보이는 보시가 선업이 되어 나에게 다시 돌아온다


그 스님의 말이 오래 마음속에 남았다. 그날 이후, 하루 만 원이 보시의 새로운 개념,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지금 무엇을 팔며, 무엇을 얻고 있는가?”


서울 번동에 있는 북부시장.

‘할머니 김밥’으로 불리는 작은 가게에 들렀다.

천 원짜리 김밥이 여전히 존재하는 그곳.

귀도 어두우시고, 말도 더디지만 언제나 김밥의 그 손길은 모락모락 따뜻했다.


“할머니, 이거 천 원에 팔면 남으세요?”

“괜찮아. 내가 덜 남아도, 정(情)을 나누면 그게 이득이지.”

그 말이 가슴속 깊이 와닿았다.

“나는 지금, 누구와 무엇을 나누며 살고 있는가?”


며칠 전, 은퇴 후 요양보호사 자격을 따고

요양센터에서 자원봉사 중인 한 여성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르신들 손 씻겨드리고 말벗되어드리는 일이 처음엔 보잘것없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어느 날, 한 어르신이 그러시더라고요.

‘당신 손이 참 따뜻하네요.’ 그 말 이후, 다시 살아 있는 기분이 들었어요.”


또, 퇴직을 앞둔 어떤 분은 매일 한 시간씩 글을 썼다. 1년 후 그는 이렇게 말했다.

“글쓰기는 나를 하루하루 사랑하는 연습이었다.”


노자의 《도덕경》에는 ‘독립불개(獨立不改)’라는 말이 있다. 홀로 서되 흔들리지 않는 사람.

고립이 아닌, 스스로 고요한 혼자됨을 선택할 수 있을 때 삶은 비로소 나를 자유롭게 만든다.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고독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자유도 사랑할 수 없다.”

혼자됨의 시간, 그리고 오직 하나에 집중하기.

그것이 나를 회복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신영복 선생을 떠올렸다.

옥중에서 그 긴 시간 동안 매일 벽에 글을 새기고 다독이며, 또 그렇게 스스로를 격려했다.

자기 존재를 잊지 않기 위해,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기 위해,

언젠가 세상에 따뜻한 시선을 건네기 위해.


그는 끝도 예견도 없이 썼다. 묵묵히, 그러나 단호하고 철저하게 그 끝이 보일 때까지.

그의 글은 감옥보다 더 좁은 세상에서 세상을 품는 넓은 지혜로 피어났다.


“사람은 만남이고, 관계이며,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이 완성된다.”

그의 글은 타인을 위한 위로이자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상생의 기록이었다.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나를 다시 살리는 글을.

나는 결심했다. 지금이라서 가능한 길,

하나에 집중하고, 다시 나를 고쳐 쓰는 길.


글쓰기는 여전히 내 안의 생명 신호다.


오늘도 그 신호를 따라 나는 나를 다시 써 내려간다. 아주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잉크는 다시 번지고 있다. 그리고 나는, 살아 있다.

한 줄의 문장으로 ‘나’를 일으켜 세우는 중이다.


세이노는 말했다.

“중요한 건, 끝까지 살아남는 힘이다. 누구보다 뛰어나서가 아니라, 누구보다 오래 집중하고 버텨낸 사람이 결국 이긴다.”


글쓰기는 경쟁이 아니었다. 생존 그 자체였다.

스스로를 끝까지 붙들고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펜을 든다.

이것이 내가 살아 있다는 가장 명확한 증거이기 때문에.

나는 이제, 다시 나를 고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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