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취미가 뭐예요?
라는 대답에 나는 주저없이 러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러닝의 매력을 최대한 간단한 어구로 표현한다면 '나에게 허락되는 가장 쉬운 치유'다.
러닝은 기본적으로 유산소다. 많은 기술을 요하지도 않고, 그저 건강한 신체와 적절한 환경만 주어지면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다. 접근성이 쉽다는 뜻이다. 물론 어느 운동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힘들지만, 달린다는 행위가 익숙해질 즈음 체력이 길러지면서 내 몸 자체에 자신감이 붙게 된다. 기구의 도움이 없이 온전히 내 몸과 내 힘으로 달리는 것이기 때문에 성취했을 때 그 짜릿함은 배가 된다.
그렇게 러닝에 흥미를 붙이고 하다 보면 달리는 어느 순간, 내가 치유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헬스장 러닝머신 위에서 앞에 놓인 축구경기를 보며 아무 생각 없이 뛰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도로에서 자연과 함께 숨 쉬며 정신을 치유할 수 있다. 복잡한 고민이 있다고 해도 상관없다. 달리기 위해 나는 체력을 써야 하고, 그것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 사이에 고민은 나의 날숨과 함께 다 날아가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러닝은 나에게 허락되는 가장 쉬운 치유가 되는 것이다.
러닝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게 된 계기는, 우연히 선물 받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덕분이다.
책 좀 읽는다고 하는 사람들이라면, 하루키를 모르는 사람은 잘 없다. 그런데 하루키는 소설가 아니었나? 갑자기 웬 달리기?라고 생각하며 책의 첫 페이지를 읽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이 소설가, 러닝에 진심이다. 20대 후반에 러닝을 시작해 매 달 200km가 넘는 러닝을 뛰어왔고, 일 년에 꼭 한번 이상은 풀코스 마라톤(무려 42.195km)을 뛴다고 한다. 일주일 중 6일을 러닝을 한다고 하니, 대단한 의지가 아닌가 싶다.
러닝은 참 매력적인 운동이다. 특히 노력과 꾸준함의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스포츠다. 우리가 정말 프로페셔널 엘리트 선수를 꿈꾸지 않는 이상, 사람이 달리는 건 다 고만고만하다. 그렇기에 러닝은 타인의 기록과 비교하기보다는 나 자신과 싸워서 이기는 게임이 된다. 오늘 10km를 달림으로써 어제의 나보다 더 체력과 정신이 수양되는 나의 모습. 얼마나 멋진가?
러닝을 처음 시작했을때, 나는 쉼 없이 10분도 달리지 못했다. 그러나 몇 개월 간 꾸준히 연습한 결과 이제 30분은 쉬지 않고 뛸 수 있는 체력을 갖추게 되었다. 나의 한계를 뛰어넘고 꾸준한 연습으로 어제의 나보다 훨씬 나아진 오늘의 내가 되는 과정을 목격하는 것.
이것보다 더 자존감을 높이고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계기를 쉽게 가질 수 있을까?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저자인 하루키는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로부터 까닭 없이 비난을 받았을 때, 또는 당연히 받아들일 거라고 기대하고 있던 누군가로부터 받아들여지지 못했을 때, 나는 언제나 여느 때보다 조금 더 긴 거리를 달리기로 작정하고 있다. 여느 때보다 더 긴 거리를 달림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만큼 자신을 육체적으로 소모시킨다. 그리고 여느 때보다 긴 거리를 달린 만큼, 결과적으로는 나 자신의 육체를 아주 근소하게나마 강화한 결과를 낳는다, 화가 나면 그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 분풀이를 하면 된다, 마음이 받게 되는 아픈 상처는 그와 같은 인간의 자립성이 세계에 대해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될 당연한 대가인 것이다.
나는 하루키의 이 말이 참 좋다.
세상 일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특히 간절히 원했던 것일수록 조급해지고 두렵기 때문에 공 칠 확률이 높다. 그렇게 간절히 기대한 만큼 상실감과 좌절은 배가 된다. 소중한 나 자신이 이렇게 아파하고 있을 때, 과연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술을 진탕 퍼마시거나 잠을 많이 잘 수도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 사실을 맞닥뜨리며 내면의 나와 깊이 소통하고 화해해야 하는 게 아닐까?
러닝은 그런 측면에서 확실한 도움이 될 수 있다. 자신의 한계를 경험해 보고 그것을 이겨내고 발전해 나가는 경험을 하는 순간, 나 자신을 용서하게 되고 더 좋아하게 된다.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치유법.
내가 러닝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