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는 오븐

by 박유진

하얀 칠이 벗겨진 오븐은 이제 벌써 9년을 사용했지. 하루를 여러 번 불타던 젊은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저 식을 뿐이야. 그럼에도 반시계로 돌아가는 레버는 오늘도 바로 설 줄 몰라. 아직 강산조차 변하지 못한 세월에게 휴식을 떠안길 수는 없어.


꺼지지 않는 오븐은 밤새 돌아가, 뱃속에 아무것도 넣지 않았는데도. 굶주린 고철은 트레이에 낀 기름때로 만족할 수 없고 그렇게 만든 건 우리야. 삐걱거리는 관절을 억지로 젖혀 문을 열어도 텅 빈 냄새만이 맴돌지. 그 속으로 손을 넣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어, 기껏해야 손목 위로 붉게 달아오른 자국만 남길 게 분명해.

그래도 꺼지지 않는 오븐은 밤새 돌아가, 좋은 향기를 풍기지 못한 채로. 윙윙거리는 기계소리가 아무도 없는 집안을 가득 채우면, 모두가 비운 자리 위로 일 킬로그램의 쓸쓸함이 남지. 먼지가 높게 쌓인 콘센트는 그 누구의 손도 닿지 않아. 그것은 너무나 먼 곳에 있지, 볼 수 없을 정도로 먼 곳에 있지.


하지만 꺼지지 않는 오븐은 밤새 돌아가, 붉은 열기를 쬐면서. 입력된 시간이 지나도록 열을 내면서 가끔씩은 모니터 받침대가 되는 꿈을 꾸기도 해. 쭉 그래왔어. 9년 동안 쭉 그래왔어. 하지만 그러지 못했지. 하얀 칠이 벗겨진 오븐은 그러지 못해. 앞으로도.


그러나 꺼지지 않는 오븐은 밤새 돌아가. 모두가 잠들어 흙으로 돌아가고 삭지 않은 뼈가 사각형의 좁은 트레이에 오를 때까지. 꺼지지 않는 오븐은 밤새 돌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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