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멸하는 검은 문

by 박유진

여기, 한 마리의 이글루가 짙은 절망에 빠진다면

녹아내린 안구의 흐릿한 냄새가 발끝에 스칠 테다


여기, 한 송이의 탁상용 스탠드가 깊은 사랑에 빠진다면

불 켜진 손가락의 끔찍한 냄새가 세상에 퍼질 테다


“하지만 이 감정이 그토록 소중하다면, 우리는 점멸하는 검은 문으로 들어서야 해.”


그래도,

심장은 하나뿐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간직한 채 경계를 넘어야 할까


“감당할 수 없는 것 전부.”


그래도,

문은 소리도 없이 닫힌다

그렇다면 언제 여기서 빠져나가야 할까

“만약, 그것이 널 죽여버린다면.”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다면.”

“문틈에 낀 시체를 놓아주지 않는다면.”


수많은 가정 속에서도 고통만큼의 사랑스러움이 있다면

단 하나의, 떠도는 물음이 있다면


“그걸 안고 떠나. 전부 안고 떠나.”

“돌아올 수 있는 거지?”

“그건······.”

“······.”


여기, 답을 알아도 부러 물을 수밖에 없는 문장이 있다면

침묵하는 소매의 저릿한 냄새가 문을 넘을 테다

그래도,

‘그래도’라는 말로 우리는 후일을 기약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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