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그 사람

by 박유진

벗겨져 한 짝만 남은 수면양말 열두 갈래로 깨진 거울

밥풀이 말라붙은 밥그릇 끝까지 잠기지 않은 수도꼭지

정리되지 않은 이불 침대에 눕기 전 끄지 않은 전등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먼지 봄이 올 때까지 웃고 있는 눈사람

웃고 있는 눈사람

웃지 않는 사람 사람 그 사람


휘갈긴 글씨처럼 그 형체는 흐릿했고 냄새는 미약했고

붉게 얼어붙은 손을 비비며 마주 보던 그 눈은 아득해서

함께 붙어 찍은 폴라로이드를 반으로 찢으며: 그새 열세 갈래가 된 거울을 보고

그중에서 진짜 나는 누구인지 얼굴을 들이밀고 찾아야 했다


재채기를 하면 열세 개의 내가 재채기하고 울면 열세 개의 내가 울고

화를 내면 화를 내고

외로워하면 또 외로워하고

그러나 웃지는 않고야 마는


눈사람에게 거울을 보여줬다. 다음 중 옳은 것을 고르시오.

(1) 녹아내리는 이목구비는 웃고 있었다.

(2) 그러나 웃지는 않고 있었다. 눈사람은 외로워하면서 외로워했다.

(3) 열세 개의 눈사람 중 진짜가 누구인지 모른다.

(4) 웃고 있는 눈사람

(5) 웃지 않는 사람 그 사람


깨진 유리는 진실을 보여줄 수 없어서 결국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나는 거울을 보았다. 다음 중 옳은 것을 고르시오.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4시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