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가 창백해질 때

by 박유진

초가을의 서늘함이 여름빛을 잃으면

저녁 7시 55분경 코를 훌쩍였다

흥미 없는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지루해진 귀를 틀어막아 침체된 목소리에 집중했다

먼저 떠난 열차의 뒷모습이 지독하게 멀게도 느껴져서

바른말을 뱉으며 지나친 바퀴 아래 납작 엎드렸다

언젠가 치일 것을 기다리며 딱딱한 바닥에 얼굴이 눌리는 감각에

기어이 중독되어 버렸다


돌아눕지 않는다

이미 들이킨 숨으로 폐가 창백해졌기 때문에

돌아눕지 않는다


다음 열차를 알리는 방송은 마치 흥미 없는 라디오 같다

그러나 상관없다 이 모든 것은 마지막이 될 테다

창백해진 폐로는 어디도 갈 수 없다

그러나 상관없다 이 모든 것은 마지막이 될 테다


원망하지 마라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의 탓을 하기에는 굳은 내장의 향기가 너무나도 그립다

몸을 퍼뜨려라 향기를 세상에 전해라

이 모든 것은 마지막이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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