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교
우여곡절 끝에 경북 포항시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했다. 낮은 내신과 수능 점수의 굴레에선 벗어날 수 있었지만, 정체 모를 두려움과 불안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1학년 신입생들은 반드시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 교칙이 있어서 나는 새로운 사람들과 환경에 적응해야만 했다. 공동체 리더십 함양이라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선 오히려 힘든 생활로 이어졌다.
함께 생활한 구성원들은 좋은 사람들이었다. 누구도 나를 괴롭히거나 따돌리지 않았다(딱 한 명이 공격적인 성향을 보였는데 모든 사람에게 평등(?)했다). 그러나 고등학생 때와 마찬가지로 관계 속에서 불안을 느꼈다. 사람들 속에서 소외당할까 봐 여전히 두려웠고, 자신감은 빠져 있었다. 불가피하게 사람들과 어울려야 할 땐 배척되는 경험을 하지 않으려고 오히려 과장된 행동을 했다. "나는 이 무리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에요! 나는 매력적인 사람이에요!!" 평소보다 반응을 크게 하며 내 에너지를 소모했다. 소리 없는 아우성과 같은 처절한 자기 방어였다.
하지만 내 바람과 현실 모습의 괴리는 컸다. 컴퓨터와 게임은 여전히 내 유일한 도피처였다. 항상 수업 시작 시각 20~30분 전 급하게 잠에서 깼고, 남는 시간엔 기숙사에서 컴퓨터 게임을 했다(당시엔 유튜브가 없었다). 더 수업이 없으면 버스를 타고 시내 PC방에 갔다. 식사는 근처 편의점에서 컵라면 또는 도시락 따위로 해결했다.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근처에 없다는 것 자체로 마음이 편했다. 3~5시간 정도 게임을 하다가 마지막 버스 시간에 맞추어 PC방을 나섰다. 밤 11시쯤 학교로 돌아오면 씻은 뒤 다시 컴퓨터를 켰다. 밤 12시, 새벽 1시, 2시... 추가로 게임을 하거나 음란물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잠을 잘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분명했다. 내게 허락된 유일한 안식의 시간인 새벽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날씨가 좋은 봄날에 기숙사 방에 틀어박혀 혼자 의미 없이 컴퓨터를 하고 있으면 들려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현재 외로운 내 처지를 깨닫게 하였다. 밝은 공간에 있노라면 '나는 혼자야'라는 잔인한 메시지가 지속해서 속삭였다. 그래서 어둠 속으로 도망쳤다. 모두가 잠든 새벽만이 나에게 가장 평온한 안식을 주었다. 아무런 소음도 들리지 않는 적막함이 편안했다. 이 순간만큼은 나만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고요했다. 덕분에 더는 자신을 외톨이라고 몰아세우지 않아도 됐다. 그 결과 대학생 1, 2학년 땐 새벽 5~6시쯤 잠을 청했다. 여명이 창문을 통해 조금씩 들어오고 새들의 조잘거림이 들려올 때가 되어서야 컴퓨터 모니터를 끄고 침대에 누웠다. 그렇게 누군가의 하루가 시작될 때쯤이 되어서야 하루를 마무리 지었다.
당시에 나는 누군가의 눈을 3초 이상 마주치는 것조차 힘들었다. 정말이다. 단둘이 밥을 먹는 것도 고역이었다. 상대방의 눈과 마주치면 평가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모든 사람, 매 순간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편안함을 느끼는 친구 소수가 있었고, 그들 덕분에 그나마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절벽에 매달린 채 생존만 했을 뿐이지, 일상생활을 영위하긴 힘겨웠다.
낮은 자존감은 미진한 학업 성적으로 이어졌다. 자신감 부족과 학습 동기의 부재는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심리학자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이론에 따르면, 성취의 욕구보다 소속의 욕구가 더 중요하다. 이미 내 미래에 대해 부정적인 상황인데 학업에 에너지를 쏟을 여유가 없었다. 또한, 공부법에 대해서도 무지했다. 당시의 나는 암기하는 법조차 몰랐다. 대학생 첫 성적은 4.5점 만점에서 1.45점으로 '학사경고'를, 2학기엔 평점 2점대 초반을 받았다. 모두 예견된 결과였다. 2학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A 학점을 받았을 정도로 성적이 좋지 않았다.
학업 부진은 가뜩이나 부족한 자존감을 갉아먹었고, 축소된 자존감은 학업 부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