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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문의 Dec 29. 2023

[병원인턴] 레지던트 결과 발표

10개월 그 긴 여정의 끝맺음

모든 인턴들의 목표이자 바람인 레지던트

사전적으로는 전문의의 자격을 얻기 위하여 인턴 과정을 마친 뒤에 밟는 전공의의 한 과정으로 정의되어 있다.

동시에 특정 지역의 거주자라는 뜻으로도 정의되어 있는데, 병원 안에서는 '병원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통용된다는 풍문이 있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잉크가 채 마르지 않은 면허를 받은 풋내기 의사들은 원하는 과의 전공의가 되기 위해 인턴의 길을 선택한다.

원하는 과를 확실히 정한 사람

두세 개의 과로 선택지를 좁히고 그중 고민하는 사람

아직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은 사람

본인이 어디에 속하는지에 따라 고민의 정도가 달라지고, 원하는 과가 무슨과인가에 따라 고민은 더욱 깊어만 간다.


성형외과 지원 수험표

이 세상에 완전한 선택이 어디 있으랴. 무슨 과를 선택해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 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다는 건 늘 그러하니까. 내 선택을 의심하고 재확인하고,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이 과가 나랑 정말 맞는 과인지, 앞으로의 비전이 괜찮을 것인지 

미래를 보고 오지 않는 이상 결코 답을 내릴 수 없는 의문들이 끊임없이 떠오르고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일천한 경험만으로 인생의 중차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린 우리 풋내기 의사들은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 갈대가 된다.



한 개이든, 두 개이든 원하는 과를 선택했으면 또다시 그 과의 전공의가 될 확률을 높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며 고민한다.

자교 병원에 남는 게 좋을지, 다른 병원으로 떠나는 게 좋을지 

학생 때부터 들어왔던 수많은 조언들을 되새김질하고, 동기들과 선배들에게 알음알음 물어가며 나름의 계획을 세워본다.

오늘은 자교에 남고 싶다가도 내일은 다른 병원으로 가고 싶어진다.

이 병원으로 간 선배가 잘 되었다던데, 저 병원으로 간 선배가 잘 되었다던데

짧게는 몇 달, 길게는 수년 동안 정답 없는 고민을 반복한다.

나 역시 지금 근무하는 병원을 선택하기까지 끊임없이 고민을 거듭했다.

내가 무슨 과를 원하는지, 내가 어떠한 가치를 추구하는지, 내가 바라는 미래의 내 모습이 어떤지

선배들과 교수님들의 조언을 밑거름 삼아 나의 본질에 집중하였다.


수술복을 벗을 날이 없는 인턴

인턴으로 근무하는 1년은 나를 증명하는 시간이다.

과연 내가 원하는 과의 레지던트가 될만한 그릇인가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

인턴 성적으로 나의 성실함과 일머리를 증명해야 했고 평판으로 나의 성격과 인간관계를 증명해야 했다.

전공의 시험으로 나의 공부머리를 증명해야 했고, 면접으로 나의 패기와 포부를 증명해야 했다.

누구 하나 간절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 경쟁이며 단 한 명의 허수도 없는 진짜들의 전쟁터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학생 때는 올챙이가 자라 개구리가 되듯, 인턴이 자라 레지던트가 되는줄만 알았건만 이건 성장이라기보다는 진화에 가까웠다.

포켓몬스터를 보며 자랐던 우리 세대들은 안다. 파이리가 리자몽이 되기 위해 얼마나 혹독한 시간을 견뎌왔는지

적절한 경험과 필요한 조건이 만족해야만 비로소 진화를 할 수 있다.

레지던트가 되기 위한 길도 다르지 않았다.



인턴으로 근무했던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니 나는 참 운이 좋았다.

내가 1지망으로 지원했던 병원들로 근무가 배정되었다. 

그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함께 치열하게 살았다.

힘든 날에는 술잔을 기울이며 고민을 나누고 기쁜 날에도 술잔을 마주치며 기쁨을 나누었다.

퇴근 후에는 함께 운동을 했고, 당직실에서 함께 글을 썼다.

타교 출신인 나를 알뜰살뜰 챙겨주는 자교 출신 친구들을 만났고, 덕분에 타교로서 차별을 당한다는 느낌을 단 한 번도 받지 못했다.

좋은 레지던트 선생님들을 만나 진로에 대한 고민도 나누었다.

내가 지원하려고 하던 병원의 1년 차 티오가 사라져 낙담하던 시기가 있었다.

이때 본인의 일처럼 가능성이 있을 것 같은 다른 병원을 알아봐 주시는 건 물론이고 교수님들께 어떻게 인사드리면 되는지, 이력서를 어떻게 준비하면 되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가르쳐 주셨다.

늘 잘 될 거라며 응원해 주시던 선생님들

아들처럼 대해주시며 인생에 대해서, 또 여러 지혜들을 가르쳐 주셨던 교수님들

내 능력에 비해 과분한 상을 받게 도와준 수많은 직원분들

나의 인턴생활은 수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격려와 도움과 배려로 가득했다.


소중한 인턴 동기들

레지던트 합격 결과는 12월 26일, 크리스마스 다음날에 발표되었다.

호의적이지 않은 분위기에서 면접을 치른 터라 이미 반쯤 마음의 준비를 한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발표 당일이라고 해서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그저 무덤덤하게 매일 같은 일상을 보낼 뿐이었다.

오전 10시 정도 되었을까, 합격 여부를 확인하라는 문자가 왔다.

문자를 보니 마음 편하게 결과를 확인하고 훌훌 털어버리자는 다짐은 온데간데 사라졌다.

심장이 쿵쾅대는 게 온몸으로 느껴져서 심호흡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분명 잘했던 기억도 많았는데 합격 발표 앞에 서니 좋지 않은 사실들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25%의 확률, 내가 돌지 않았던 병원으로의 지원

기대에 못 미쳤던 시험 성적, 타교라는 신분

부정적인 생각들이 물밀듯이 밀려와 범람하려 하기에, 마음을 진정시키고 스스로에게 또다시 물었다

이전으로 돌아가면 더 열심히 할 수 있겠냐고

나는 이미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오히려 내 능력 이상의 결과를 얻어냈다.

그럼 됐다. 합격과 불합격은 나의 손을 떠난 일이다.

그렇게 나는 눈을 지그시 감고 합격 조회 버튼을 눌렀다.


성형외과 합격 

결과창을 보는 순간 숨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내 두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내가 보고 있는 것을 믿지 못했다.

눈은 빠르게 움직였고 숨은 가빠졌다.

됐다!! 하며 나도 모르게 내지른 소리를 듣고 방 안에서 자고 있던 동기가 달려 나왔다.

내가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모니터를 본 동기는 나에게 달려와 뜨거운 포옹을 안겨주었다. 

고생했다. 정말 잘했다. 다행이다. 수고했다.지난 시간들을 인정해 주고, 현재의 합격을 축하해 주고, 앞으로의 날을 축복해 주며 마음껏 기뻐했다.



진정되지 않는 마음을 간신히 다잡고 나니 가족의 얼굴이 떠올랐다.

며칠 전 나는 면접을 보고 불합격의 기운을 강하게 느꼈었다.

이번에는 쟁쟁한 경쟁자들이 너무 많아서 안될 수도 있다, 2지망을 쓴 과는 갈 생각이 있냐

이런류의 질문들로 점철된 면접을 보고 나니 참 썼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되는 게 있구나

물론 끝날 때까지 끝난 건 아니었지만 부모님께 이러한 점들을 미리 말씀 드려놓았고, 우리는 불합격을 마주하더라도 너무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늘 면접 결과가 나오는 걸 알고 있었던 부모님은 전화를 받자마자 애써 차오르는 아쉬움을 억누르며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물었다.



나붙었어

결과를 보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던 나보다도 더 큰 소리로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렸다.

엄마는 내가 붙었다는 사실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아빠는 그저 너무 좋다며 수화기 너머로 껄껄 웃으셨다

동생은 '미친 사람'이라는 극찬을 퍼부으며 자랑스러움을 표현했다.

합격은 내가 했는데 되려 본인들이 더 기뻐하는 우리 가족

가족들의 이런 반응을 보기 위해 열심히 해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교수님, 선배, 후배, 동기들에게서 축하 인사를 받으며 하루를 보내고 저녁에는 동기들과 회에 술 한 잔을 걸치며 기쁨을 나누었다.

기쁨과 성취감, 그리고 막막함과 불안감

여러 감정이 한데 뒤얽힌 채로 느껴졌지만 있지만 그중 제일은 뭐니 뭐니 해도 기쁨이었다.

앞으로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당장 내년부터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올해까지는 합격의 기쁨을 무한으로  즐겨보련다


참치와 술, 완벽한 축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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