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정류장의 이름은

by chldew

정류장의 이름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프로그램이 종영한 지금은 더더욱. 수능이나 면접 등에 가산점이 들어간다면 조금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무의미한 존재들이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이런 일들이 필요하니까. 이 일들 또한 우리들이 만들기는 했지만……. 그렇게, 의미는 무한대로 나아가는 걸까. 그 자체로 존재하는 모든 대상들을 흡수하고 소화시키면서. 그 끝이 어디일지는 모르겠다. 같은 존재들을 꺼내도 바라보는 시선은 다 다르니까.


물론 무엇인가가 잠깐 머무르는 장소라는 본질에서는 벗어나지 않는다. 노선 안내도와 시간표, 햇빛이나 비를 피할 가림막 같은 게 공통으로 있음을 생각하면 더더욱. 다른 점이라면 정류장의 넓이나 느낌 정도일까. 서울의 번화가나 이런 곳들은 대부분 넓지만 그 외의 정류장들은 그렇게 넓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이 움직이니까 당연한 결과겠지만……. 대신 어딘가 드라이한 느낌이랄까. 화려한 광고나 그림들이 있음에도 그렇게 화려한 느낌은 없었다. 그곳들이 시내의 일부이기 때문일까?


도심을 벗어난 정류장들을 보면 더욱 그런 기분이 들었다. 요즘은 이조차도 도심의 그것들과 비슷해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지만, 아직 그렇지 않은 곳들도 있었다. 벽돌로 만든 곳이나 광고가 없이 뻥 뚫린 곳들이 있음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실제로 있어보면 여름과 겨울에 답답해도 사진 촬영 장소로는 무난하다. 가을의 논밭처럼 화려한 느낌이라면 더더욱. 그런 날이면 벽면이 유리창이어도 나쁘지 않다. 때 묻은 느낌이 아니라면 더 좋고. 적어도 그 자체로 하나의 풍경과 아우러지기에는 무난하니까.


지금 있는 이곳도 그랬다. 다락쉼터 인증부스. 천장과 지붕 사이의 공간에 만든 방이 다락임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뭔가가 천장과 지붕처럼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막상 갔을 때는 뭔 소린가 싶었다. 그냥 뻥 뚫린 공간에 벤치만 있었으니까. 숙소에 도착한 후에야 그곳이 왜 그렇게 이름이 지어졌는지 알긴 했지만……. 조금만 더 둘러보았으면 알 수 있었을까. 그것까지는 모르겠다. 가지 않은 길에 미련이 남았다고 돌아갈 수 있었다면 그보다 더 이전의 시간들을 돌아보았을 테니까. 그러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고.


정류장도 마찬가지 아닐까. 대중교통에게, 정류장은 성공한 자들이 머물 수 있는 그늘이 아닌 업무 때문에 들러야만 하는 곳이다. 자기가 지나치고 싶다고 멋대로 지나치거나 그럴 수는 더더욱 없고. 물론 버스라면 급하게 오는 승객들을 위해서 몇십 초 정도는 멈춰서 문을 열어줄 수 있다. 요즘은 그조차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하지만 쉬고 싶다고 멋대로 후진을 하거나 머무를 수는 없다. 원한다면 할 수는 있겠으나 그랬다간 십중팔구 사고가 나기 때문이다. 경적 소리만 연달아 들으면 다행이고.


도심 바깥의 정류장이라고 다를 건 없으리라. 풍경의 아름다움과 대중교통의 의무는 별개니까. 어쩌면 더욱 피곤할지도 모르겠다. 처음이라면 조금 신선하다는 느낌을 가질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나 신선함은 식재료가 아닌 이상 신선함을 유지할 수는 없다. 하이브리드 아이스나 영화 <매트릭스>의 뉴럴라이저라도 있었다면 달라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신선하다는 감각을 개인이 최고조로 느꼈던 순간에 머무르게 할 수는 있으니까. 같은 장면을 여러 번 봤던 기억을 없애도 비슷할 수 있고.


그래서 이 정류장을 본 지금이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다. 정류장 뒤편의 식물원 카페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런 느낌의 정류장을 접한 기억은 없었다. 그런 곳에서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면 어떤 기분이 들까. 여유를 가졌다면 그 의문을 풀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잠시나마 맞은편의 초록색 정류장에 앉아볼 수도 있었을 것 같고.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음을, 머리로는 알고 있다. 목적지까지만 가면 된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고.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럴 수가 없었다. 목적지를 잃은 정류장처럼.


목적지를 잃어버린 정류장은, 더 이상 정류장이 될 수 없다. 감성만이 머무르는 곳이라면 운이 정말 좋은 거고. 그렇다면 이곳은 감성만이 머무르는 정류장일까? 아니면 실제로 버스가 잠깐 머무르는 곳일까. 버스가 멈추는 걸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거기까지는 알 수 없다. 처음에는 이 의문이 풀리길 바랬으나 지금은 물음표로 남아도 괜찮으리라. 감성만이 머무르든 버스도 머무르는 곳이든 딱히 상관은 없으니까. 누군가가 머무는 곳이라는 개념은 그대로이기에 더더욱. 그렇게…… 자전거 한 대와 함께 정류장의 손님 하나는 제 갈 길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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