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데헌 속 신화, 춤추는 한국문화 11
<사천왕사 사진을 챗지피티로 단청을 더욱 선명하게 만듦>
25년 동안 <삼국유사> 유적지를 기행 하며 전국의 수많은 절을 다닌 경험은 내게 아주 특별하다. 특히 절마다 다른 빛깔과 무늬를 품은 단청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하늘과 땅을 잇는 문양이자 불심의 색채로 보였다. 두 아들들을 데리고 이 절 저 절 돌아다닐 때였다. 작은 아들은 아주 심각하게 어느 날 나에게 물었다. “엄마, 절사람 될 건가요?” 그 질문을 듣고 나는 절이 우리 문화의 휴식 공간이라는 것을 말해주려고 애썼지만 아이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 질문 후로도 나의 <삼국유사>에 대한 지나친 사랑으로 아들들은 원치 않은 사찰기행을 한동안 더 해야 했다.
사찰을 가면 만나는 첫 번째 문은 불이문이다. 불이문은 말 그대로 둘이 아님을 뜻한다. 속세와 불계가 둘이 아님을 알려주는 문, 모든 구분이 사라지는 신화적 자리이다. 그 앞에 서면 나 역시 세속의 삶을 내려놓고 다른 차원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불이문을 지나면 사천왕사가 나타난다. 동서남북을 지키는 사천왕은 사바세계를 지탱하는 힘이자, 우리 곁을 지켜주는 수호신이다. 보통 절 문 앞에는 네 명의 사천왕이 문을 지킨다. 각각 비파, 칼, 용과 여의주, 탑 등을 들고 있다. 절마다 조금씩 다르게 만들어진 사천왕의 모습은 화려한 단청과 어우러져 절을 세속의 공간과 분리시킨다. 사천왕들의 역할은 악귀를 쫓아내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역할이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인간이 가진 두려움과 탐욕을 단절시키려는 염원을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비교적 작은 공간인 사천왕사를 웅장한 공간으로 보이게 하는 것은 그것을 장식하는 단청의 역할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붉은색과 푸른색, 녹색과 금빛이 어우러져 마치 하늘의 궁전을 옮겨 놓은 것처럼 보인다.
사천왕사를 꾸미는 단청의 곡선은 단순한 미적 장식이 아니라 수행의 언어로 보인다. 용과 연꽃, 구름무늬가 천정을 메우고, 색채 하나하나가 불교의 경전을 노래하듯 숨 쉬고 있었다. 그 앞에서 나는 단청이야말로 신과 인간을 잇는 다리라는 생각을 했다.
<삼국유사>에는 유명한 사천왕사 이야기가 전한다. 문무왕의 이야기인데, 선덕여왕의 이야기와 연결되는 신비한 이야기이다. 선덕여왕은 세 번째 유언으로 “내가 죽으면 도리천에 묻어라”라는 말을 한다. 자기가 죽을 날을 예언함으로써 자신의 죽음이 우주 질서의 일부가 되고자 했던 영험함을 보였다. 그런데, 누구도 도리천이 어디인지 몰랐다. 하지만 문무왕은 당나라가 신라를 침범하고자 할 때 선덕여왕의 무덤 아래에 임시 절을 세워 사천왕사라 불렀던 것이다. 불교에서 도리천이란 부처님이 사는 곳으로 수미산의 가장 꼭대기에 위치한다. 상징적으로 모든 사찰은 수미산이 되고 대웅전은 도리천이 되는 셈이다. 문무왕은 선덕여왕이 묻힌 곳을 도리천으로 만들기 위해 그 아래에 사천왕사를 짓고 스님들을 불러 불공을 드리게 했다. 그리고 신라를 쳐들어오는 당나라 군사들을 모두 무찌르게 되었다. 급조된 듯 빠르게 지어진 사천왕사이지만, 그 안에는 시대의 불안을 막고자 하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그 사천왕사는 없고 선덕여왕 무덤 아래 들판에 사천왕사지라고만 적혀있다.
<케데헌>의 첫 무대 바닥의 화려한 연꽃무늬는 바로 이 단청의 세계와 닮아 있었다. 바닥에 연꽃무늬가 번져 나가고, 천정에는 별빛 같은 색채가 흘렀다. 단청의 상징이 무대 위에서 빛의 패턴으로 다시 태어날 때, 관객은 단순히 공연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성전에 들어선 듯한 야릇한 경험을 한다. 이는 마치 불이문의 세계이거나 사천왕사를 지날 때의 문지방 같은 느낌이다. 이 공연이 그냥 공연이 아니라 일종의 기원이 담긴 주술성을 담은 것처럼 보이는 이유이다.
특히 헌트릭스의 마지막 공연 때, 주인공 루미가 연꽃 패턴의 그네를 타고 노래를 부른다. 이는 단청의 이미지를 그네로 만들어 공중으로 날아오르게 한 것이다. 단청이 평면의 그림에서 입체적으로 튀어나와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화려하지만 질서 있는 곡선, 색과 색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신성한 무늬. 그것은 단청이 가진 시간의 깊이를 K-팝의 현장 속으로 불러낸 순간이었다.
오늘날 불교 사찰의 단청은 다시 <케데헌> 속에서 살아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상력은 단청 키보드와 단청 패턴 굿즈로 인기를 끌고 있다. 단청은 더 이상 사찰의 벽과 천장에만 머무르지 않고 미디어와 문화 상품 속애서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삼국유사>의 길 위에서 만난 불이문과 사천왕사, 선덕여왕의 유언, 문무왕의 사천왕사, 그리고 케데헌의 무대 단청까지. 이 모든 장면은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단청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우리의 오래된 문화의 길을 비추는 수채화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