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케데헌>귀마과 혼불

케데헌 속 신화, 춤추는 한국문화 10

<구글 재미나이 나노바나나로 만든 혼불이미지>


어린 시절 시골의 장례식은 늘 공포를 몰고 왔다. 특히 한밤중 빈 상여소리와 울음소리는 온 마을을 흔들리게 했지만, 나에게 더 무서운 것은 어떤 말이었다. 바로 마을 어른들이 들려주던 무서운 혼불 이야기였다. “사람이 죽으면 혼불이 나온다.” 장례가 있던 밤이면 누군가는 불빛을 보았다, 아니면 산길에서 혼불이 스쳐갔다는 풍문들이 들려왔다. 나는 그 말이 너무 두려워서, 어둠 속 불빛만 봐도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래서 하늘의 별똥별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꾹 감기도 했다. 혼불은 죽은 이의 영혼이 타오르는 불이라 했다. 불은 따뜻하고 생명을 주는 것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죽음을 알리는 신호 같아 더욱 섬뜩했다. 어린 마음에는 혼불이 언제든 나를 찾아올 것 같은 공포로 자리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혼불은 단지 무서운 것이 아니라, 떠난 이들을 기억하게 하는 불씨이자 남겨진 자들의 마음을 밝히는 등불이었다는 것을.

혼불에 대한 나의 시선을 바꿔준 건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이었다. 제목부터가 어린 시절의 공포를 불러왔지만, 책장을 넘기며 그 불빛은 두려움이 아니라 경건함으로 다가왔다. 소설은 일제강점기 전북 남원의 몰락해 가는 양반가문, 매안 이 씨 집안을 무대로 펼쳐진다. 종부 청암부인은 꺼지지 않는 혼불처럼 집안을 지키려고 애쓴다. 그녀의 고단한 삶은 슬픔 속에서도 빛나는 기품을 보여준다. 종손 강모와 사촌 동생 강실의 비극적인 사랑은 전통과 근대, 집안의 몰락과 새로운 욕망이 충돌하는 지점을 드러낸다.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한 채 시댁살이에 짓눌린 효원의 모습은, 불꽃처럼 흔들리지만 꺼지지 않는 여인의 운명을 상징한다. 『혼불』은 결국 집안의 비극을 넘어, 시대의 아픔과 민족의 혼불을 이야기한다. 꺼져가는 듯 보이지만, 대를 이어 불씨처럼 남아 다시 타오르는 생명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7년 2개월에 걸쳐 10권 분량의 대하소설을 쓰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작가는 삶을 즐거운 소풍이라고 했던 시인 천상병 작가처럼 아름다운 세상 잘 살고 간다는 말을 남겼다.

불은 언제나 인간 문명의 기원이자 상징이었다. 서양 문화의 대명사인 그리스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건넨 존재다. 그의 불은 문명과 기술의 시작을 열어주었지만, 동시에 신의 질서를 어긴 죄로 코카서스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된다. 프로메테우스의 불은 인간이 지혜와 문명을 가질 수 있게 한 선물이었지만, 동시에 고통과 책임을 짊어지게 한 짐이기도 했다. 불은 이렇게 늘 양가적이다. 따뜻함과 파괴, 구원과 형벌을 동시에 담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함께 본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 속의 칼시퍼(Calcifer)도 마찬가지다. 칼시퍼는 불꽃의 형상을 하고 있으면서도 단순한 불이 아니라, 하울의 심장을 품은 존재로 등장한다. 불은 생명을 태워 빛을 내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소모한다. 칼시퍼는 하울과 영혼을 나눈 계약의 불이자, 움직이는 성을 지탱하는 동력이다. 결국 불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생명과 영혼, 그리고 의지의 은유임을 보여준다. 불은 삶을 지키는 동시에 그 삶을 태워 없애는 양면성을 품는다.

이 상징은 <케데헌> 속 귀마에서도 이어진다. 귀마는 악귀들을 조정하는 우두머리로 일정한 형체는 없이 불처럼 타오르지만, 스스로 빛을 낼 수 없는 존재다. 그는 인간의 나약한 영혼을 먹어야만 살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귀마는 인간의 의지를 두려워한다. 불이 파괴의 힘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인간 내면의 불씨, 다시 일어나려는 의지의 마음 앞에서는 힘을 잃고 만다. 귀마의 불은 의지를 앗아가려는 절망의 불이지만, 루미의 칼이 빛을 머금을 때, 그 불은 더 이상 사람들을 삼킬 수 없게 된다. 여기서 불은 단순히 파괴가 아니라, 인간의 의지가 불을 다스리고 변형시킬 수 있음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케데헌> 속 귀마의 불은, 인간의 두려움과 희망이 동시에 담긴 양가적 무대가 된다.

불은 한국 신화에서도 늘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집안 화로의 불씨는 단순한 불이 아니라 신성한 생명의 근원으로 여겨졌다. 설날 아침마다 새 불씨를 지피며 묵은해를 보내고 새로운 생명을 맞이한 풍습,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던 조심스러운 마음은 모두 불이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공동체를 이어주는 혼불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불은 우리 삶의 중심에서 늘 죽음과 삶을 잇고, 영혼과 생명을 지탱하는 존재였다.

어린 시절 무섭게만 들렸던 혼불 이야기는 이제 어느새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것은 나에게 더 이상 두려움의 불꽃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의 흔적을 이어가는 빛이었다. 『혼불』이 보여주듯, 불은 꺼지는 듯 흔들리면서도 대를 이어 타오른다. 혼불은 곧 영혼이자 의지이며, 우리가 지켜야 하는 어떤 삶의 가치를 담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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