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케데헌> 속 일월오봉도

케데헌 속 신화, 춤추는 한국문화 9

<나무위키에서 인용한 일월오봉도>


사랑하는 애완동물을 떠나보낸 뒤 남는 공허함을 우리는 ‘팻로스 증후군’이라 부른다. 나 역시 지난해 해님과 달님이라는 15년 반려견들이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것을 보면서 그 아픔을 깊이 겪었다. 그 순간 떠올린 명장면이 하나 있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1997)에서 잭 니콜슨이 잠시 동안 돌보던 이웃집 강아지 버델을 주인에게 보낸 뒤, 피아노 앞에서 너무 슬퍼서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다. 반려동물을 향한 애틋한 사랑과 상실의 무게가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흔드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당시 영화를 볼 때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았기에 공감하기 어려웠지만, 그 후 강아지를 키우고 보니 그 마음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래서 브런치의 필명에 해님 달님을 넣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버델을 마음속에 간직하며 살아가는지 모른다.

그런데 요새 우리 해님 달님을 기억나게 하는 <일월오봉도>가 <케데헌>에 등장해서 나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는 조선의 왕이 앉은 어좌 뒤를 장식했던 그림이며, 오늘날 경복궁 근정전에서도 여전히 볼 수 있는 유명한 그림이다. 해님과 달님, 다섯 봉우리, 출렁이는 파도와 소나무. 이 구성은 단순한 장식으로 보기 어렵다. 왕이 홀로 진정한 왕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자연과 우주 질서가 그를 떠받칠 때에만 왕좌가 완성됨을 보여주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일월오봉도>는 결국 왕이란 자연의 질서를 잘 조화롭게 이끌어가는 지도자여야 함을 암묵적으로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이 이미지는 오늘 우리의 일상 속에도 자리한다. 만 원권 지폐의 세종대왕 뒤에 바로 이 <일월오봉도>가 희미하게 드러나 있다. 우리는 지갑 속 돈을 꺼내면서도, 그 안에 깃든 종교적·우주적 상징을 인식하지 못한 채 무심히 살아간다. 화폐의 <일월오봉도>는 왕의 권위를 넘어, 국가의 정체성과 정신세계를 담아내는 도상으로 변주된 셈이다.

<일월오봉도>의 중심 요소인 ‘오봉(五峯)’은 백제 <금동대향로>에서도 발견된다. 부여에서 출토된 이 향로의 뚜껑 위에는 다섯 봉우리가 솟아 있고, 그 사이사이에 신선과 동물이 노니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이는 도교적 상상력의 결정체다. 산봉우리와 연기가 맞닿으며 인간 세계와 신선 세계가 이어지는 순간, 우리는 신성의 기운을 체험한다. <일월오봉도> 또한 그러하다. 봉우리와 해와 달은 왕의 세계와 신선의 세계, 그리고 인간의 영혼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

놀라운 것은 이 상징이 현대의 글로벌 문화 콘텐츠에서도 변주되고 있다는 점이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데헌> 속 헌트릭스의 마지막 하이라이트 공연 배경으로 등장한 것도 바로 <일월오봉도>였다. 조선의 왕좌를 받쳐주던 그림이, 이제는 아이돌의 무대를 신성한 공간으로 전환시킨다. 왕이 자연의 질서 속에서 완성되듯, 아이돌 역시 무대라는 우주적 배경 속에서 새로운 ‘왕관’을 쓰게 된다.

그 무대 위에서 울려 퍼진 노래는 헌트릭스의〈Golden〉이었다. 가사 속 한 구절은 일월오봉도의 상징과 묘하게 겹쳐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I was the queen that I’m meant to be (나는 원래부터 여왕이 되기로 정해진 사람이었어)”

왕좌에 앉은 군주의 무게와, 아이돌이 짊어진 무대의 무게가 서로를 보조하면서 비추는 것처럼 보인다. 해와 달이 왕을 완성하듯, 무대와 팬덤, 그리고 노래가 아이돌을 완성하는 것 같았다. 더 나아가 한 개인 개인이 해와 달을 사이에 두고 이 우주의 주인으로 당당하게 거듭나는 모두의 이야기 일 것이다.

<일월오봉도>와 백제 <금동대향로>, 만 원권 지폐, <케데헌>의 공연 무대,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서로 다른 시대와 맥락 속에서 같은 메시지를 함축하는 것 같다. 진정한 의미의 왕은 홀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연과 신화, 상징과 기억, 인정과 응원이 함께할 때 비로소 한 존재가 제 자리에서 힘을 얻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항상 매일매일 보는 해님과 달님으로 강아지들의 이름을 짓고 그들을 수도 없이 부르면서 나도 모르게 우주의 질서를 늘 내 안에서 되뇌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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