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케데헌> 속 갓과 GOD

케데헌 속 신화, 춤추는 한국문화 8


하늘과 빛을 숭상해 온 우리 민족의 오랜 사유를 최남선은 <불함문화론>이라는 책에서 ‘광명사상’이라 불렀다. 단군 신화 속 태백산의 밝음, 해를 숭상하던 고대의 상상력은 곧 민족의 정체성으로 확장되었다. 그는 우리 문화의 근본을 ‘밝음’에 두었고, 이 정신이 근대의 문을 열 열쇠라 보았다. 흥미로운 것은 이 광명사상이 서양 기독교의 하느님 개념과도 맞닿아 있었다는 점이다. ‘빛으로 오신 하느님’을 민중이 낯설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까닭은, 이미 오래전부터 ‘밝음’이 우리 마음속에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나는 흥미로운 우연을 찾는다. God과 갓(Gat). 어원적 관련은 전혀 없지만, 발음이 겹친다는 단순한 사실이 나에게 특별하게 느껴진다. 혹시 100년 전 조선을 방문한 서양 여행자가 양반의 검은 갓을 보며 그 ‘갓’ 소리를 들었을 때, 자신들의 신(God)을 떠올리지는 않았을까? 그런 기록이 있는지 열심히 찾았지만 발견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렇게 상상해 보니 흥미롭다. 언어가 만든 우연한 겹침이, 서로 다른 정신세계를 잇는 작은 창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한국의 갓은 서양의 모자와는 전혀 다른 기능을 한다. 단순히 햇빛을 가리는 도구가 아니었다. 갓은 신분과 품격을 드러내는 표식이었고, 학문과 도덕을 중시하던 선비의 기개를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투명한 말총으로 만들어진 얇은 갓은 겉으로는 매우 가벼워 보이지만, 그 위에 얹힌 문화적 의미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100여 년 전 한국을 찾은 서양인들의 기록 속에서도 갓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윌리엄 길모어는 『서울 풍물지』에서 갓을 한국인의 얼굴과 분리할 수 없는 고유한 특징으로 보며, 중국이나 일본의 모자와는 전혀 다른 독창적인 장치라 평가했다. 그는 갓만 보아도 신분과 품격을 가늠할 수 있다고 기록했다. 새비지 랜도어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에서 남성들이 갓을 쓴 풍경이 도시의 질서를 만들어낸다고 보았고, 갓을 웨일스 여인의 모자에 비유하며 투명하고 정교한 구조 속 예술적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두 서양인의 기록은 갓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조선 사회의 질서와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적 매개체였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갓의 상징은 단순히 아름다움에 머물지 않았다. 바티칸의 김대건 신부가 순교의 길을 걸으며 썼던 갓은 신앙과 저항의 표식이 되었고, 무속 신화 속 저승사자가 쓴 갓은 인간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힘의 상징이었다. 이처럼 서로 다른 맥락에서 갓은 성스러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불러냈다. 그런데, 바티칸에 서 있는 김대건 신부의 형상을 사자보이스의 갓과 동일시하는 외국인들의 반응을 보고 상당히 놀랬고 걱정이 되기까지 했다. 이렇게 오늘날 갓이 세계 무대에서 가볍게 소비될 때, 그것은 우리에게 문화 전유(cultural appropriation)의 문제를 던진다. 우리는 특정 문화의 상징이나 전통을 맥락 없이 소비하거나 차용하는 행위를 문화적 전유라는 용어를 쓴다.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에서 갓은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조선 후기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는 핵심 매개체였다. 허생은 한양의 부자 변씨에게 돈을 빌려 제주도로 가서 갓의 재료인 말총을 모두 매점매석한다. 양반들의 체면과 예법에 필수적인 갓과 망건의 재료를 독점함으로써 그는 막대한 부를 얻었고, 동시에 당시 조선 사회 경제 구조의 취약성과 양반 사회의 허위의식을 폭로하고자 했다. 겉치레와 명분에 기대어 사는 양반의 허망한 권위가 말총 하나에 좌우되는 현실을 풍자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오늘날 <케이팝 데몬헌터스> 속 아이돌들이 쓰는 갓은 전혀 새로운 맥락 속에서 소비된다. 무대 위 화려한 조명과 결합한 갓은 한국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장식품이자 글로벌 관객에게 신선한 문화 코드로 읽힌다. 그러나 동시에 우려도 있다. 갓이 가진 깊은 역사와 상징이 상업적 이미지로만 전유될 때, 그 의미는 단순한 이국적 장식으로 축소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갓은 단순한 전통 의복을 넘어 세계인의 호기심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고 있다. 경복궁을 찾은 외국인들이 한복에 갓을 얹고 웃으며 사진을 남기는 모습은 분명 따뜻한 문화적 교류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국 문화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그 장면을 바라보는 마음 한편은 묘하게 씁쓸하다. 본래 갓은 조선 사회에서 신분과 권위를 가르는 사회적 표식이었고, 무속에서는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신성한 매개체였으며, 서양 선교사들의 기록 속에서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강렬한 상징이었다. 이렇게 다층적인 의미를 지닌 갓이 오늘날에는 ‘이국적이고 멋진 액세서리’로만 소비될 때, 그 깊이를 잃고 단순한 장식물로 축소되는 듯하다. SNS 속에서 ‘갓을 쓴 나’라는 이미지가 유행처럼 번져 나갈 때, 그것이 과연 존중의 시선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맥락 없는 소비에 가까운 것인지 되묻게 된다. 갓의 의미를 올바르게 바라볼 비판적 감각과 사려 깊은 교류의 태도가 우리에게는 더욱 필요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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