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데헌 속 신화, 춤추는 한국문화 7
시골 앞바당에는 스무 두렁이 넘는 조그만 밭이 있다. 그 두렁마다 어머니의 자식 사랑이 켜켜이 심겨 있었다. 벽 아래 작은 두렁은 아로니아밭인데, 보랏빛 열매는 자식들의 눈을 맑게 한다고 믿으셨다. 어느 해 어머니는 웃으며 말씀하셨다.
“작년에 온 까치가 올해는 증조할머니까지 데리고 왔구나.”
까치를 옆집 이웃처럼 말씀하시는 그 순간, 나는 왠지 모르게 푸근했다. 까치는 그렇게 늘 우리 곁에 이웃처럼 머물러 있었다.
어린 시절 시골 마을의 겨울 감나무 끝에는 꼭 까치밥이 달려 있었다. 아이들 입장에선 긴 장대로 따 먹지 못해 아쉬운 감이었지만, 어른들은 그것을 일부러 남겨둔다고 말씀했다. 까치를 위한 밥, 더 나아가 굶주린 다른 새들을 위한 몫이었다. 그러니까 까치밥은 단순한 열매가 아니라 약자를 배려하는 삶의 지혜였다. 겨울 숲의 생명을 살리는 작은 마음이었고, 나에게는 나눔의 따뜻함을 가르쳐준 아련한 기억이었다.
까치밥처럼 친숙한 말이 까치집이다. 시골에서 봄이면 분주한 까치들을 보곤 했다. 전봇대 위, 소나무 가지 사이에 둥지를 짓는데, 나뭇가지뿐 아니라 비닐, 철사까지 가져다 정교하게 얽었다. 까치집은 마치 작은 성채 같았다. 빗물과 천적을 막아내는 구조물 속에서 까치는 소중한 가족을 키워냈다. 그 집은 처마 밑에 지은 제비집처럼 진흙이 주재료가 아니라 모든 것이 재료가 되는 신기한 집이었다. 어린 나는 그 집을 보며 까치의 재주에 감탄하기도 했다. 까치는 지혜로운 건축가인 것 같았다.
우리 문화는 먹는 밥과 사는 집에 까치를 불러들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지내는 명절까지도 까치와 함께 공유한다. “까치까치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이 노래는 어디서 배웠는지도 모르지만 늘 나의 입가에서 흥얼거리는 리듬이었다. 어린 나는 왜 그 좋은 설을 까치가 먼저 쇠는 걸까. 기다렸다 우리랑 같이 세면 먹을 것도 더 많을 텐데. 어린 마음에 생각하곤 했다. 동요 속 까치설날은 사실 학문적으로는 ‘아치설(작은설)’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한다. ‘아치’가 ‘까치’로 변하면서, 마치 길조인 까치가 설을 맞이하듯 굳어졌다. 어린아이의 혀끝에서 자연스레 변형된 말이지만, 까치의 상서로운 이미지와 겹쳐지며 우리에게는 설의 전날을 따뜻하게 알리는 이름이 되었다.
<삼국유사> 속에서도 까치는 신비한 존재로 여러 번 등장한다. 가장 유명한 것은 제4대 신라의 왕 석탈해의 신라 입성 이야기에 등장한다. 이야기에서 까치는 왕권 교체를 알리는 하늘의 전령처럼 비친다. 까치가 우는 순간, 사람들은 그것을 단순한 새소리로 듣지 않았다. 그것은 곧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는 하늘의 신호로 여겨진 것 같다.
<삼국사기>에는 <삼국유사>보다 더 많은 까치가 등장한다. 그런데 조금 특별한 흰 까치 이야기들이 여러 번 등장한다. 보통은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까치지만, 흰 까치의 출현은 예로부터 큰 길조로 여겨졌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흰 까치가 나타났을 때는 나라의 태평과 왕권의 안정을 상징한다고 믿었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자연 발생적 희귀 현상을 기록한 것인지, 아니면 신성한 징조로 해석한 것인지 논의가 분분하지만, 분명한 것은 까치가 그만큼 신뢰할 만한 상징으로 여겨졌다는 점이다.
조선후기 민화 <호작도>에서도 까치는 중요한 배역을 맡았다. 호랑이 곁에서 재잘거리며 위세를 희화화시키는 까치는 권위에 대한 민중의 해학을 드러냈다. 두려움을 웃음으로 바꾸어내는 까치의 힘은, 민중에게 작은 위로이자 풍자의 언어였다. <케이팝 데몬헌터스> 속 까치도 이 전통을 이어받아 무대 위에 다시 등장한다. 호랑이 곁에서 인간과 악령의 세계를 잇는 동반자로 소환된 까치는, 전통의 상징을 디지털 무대 위에서 새롭게 숨 쉬게 한다. 주인공 루미는 진우에게 왜 까치가 모자를 쓰고 있냐고 묻는다. 진우는 호랑이 더피에게 준 모자를 까치 서씨가 빼앗아 쓴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대사는 호작도에서 까치의 영악함을 설명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그런데 <케데헌> 속 까치는 현실의 까치와 다르게 눈이 세 개다. 왜일까? 두 눈으로는 인간 세상을, 세 번째 눈으로는 영적 세계를 꿰뚫어 본다는 뜻일까. 아니면 시대를 넘어 진실을 보는 통찰의 상징일까. 까치는 늘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그러나 제주도로 건너간 까치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갖는다. 까치는 까마귀를 산중턱으로 몰아내고, 전봇대 위 까치둥지는 정전을 불러왔다. 길조의 상징이던 까치가 생태계의 불청객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 까치는 자연스럽게 건너온 새가 아니었다. 1989년, 인간이 인위적으로 제주에 들여놓으면서 시작된 일이었다. 자연의 질서를 길조의 상징으로만 해석한 인간의 선택은 결국 또 다른 자연의 불균형을 낳고 말았다. 어쩌면 세 개의 눈을 가진 <케데헌> 속 까치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아래와 같은 질문을 묻고 있는 건 아닐까.
“자연을 인간의 뜻대로 해석해도 괜찮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