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데헌 속 신화, 춤추는 한국문화 12
<구글 재미나이 나노바나나로 그린 이그드라실>
15년도 훨씬 전에 북유럽 여행을 갔을 때 들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가는 곳마다 나무 아래에 돌을 차곡차곡 쌓아놓고 간다는 것이다. 현지인들은 그 의미를 알지 못해 치워야 했고, 심지어 한국인 때문에 국립공원에 ‘돌 치우는 일자리’가 새로 생겼다는 농담까지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문득 깨달았다. 우리에게 나무는 단순한 그늘이 아니라, 소원을 담는 서낭당이라는 것을. 돌 하나하나가 간절한 마음이 담긴 소망의 탑이었던 것이다.
〈케데헌〉 속 서낭당도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작품 초반, 이전 세대의 헌트릭스였던 셀린은 세 명의 후배 여전사들에게 혼문을 지키라는 사명을 당부한다. 거대한 나무 아래에서의 그 장면은 단순한 서약이 아니라 영혼을 지켜내는 맹세였다.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어 하늘과 땅을 잇듯, 여전사들의 약속 또한 세계의 시작과 끝을 연결하며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것처럼 다가왔다.
북유럽 신화에도 이와 같은 나무가 있다. 우주를 떠받친다는 세계수 이그드라실이다. 뿌리는 저승 니플헤임에 닿고, 줄기는 인간 세계 미드가르드를 감싸며, 가지는 신들의 영역 아스가르드에 닿아 있다. 그 나무 아래에서는 신들도, 인간도, 괴물도 서로 만난다. 결국 세계수는 생명과 죽음을 잇는 다리이자, 모든 존재를 묶는 끈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문화 속 나무 상상력 또한 북유럽 못지않게 신화적이다. 마을 어귀의 큰 나무는 단순한 그늘이 아니라 서낭당이 되어 사람들의 기도를 품었다. 우리나라 곳곳을 다니다 보면 수백 년 동안 한 마을을 지켜온 수많은 ‘세계수’들을 만나게 된다. “서낭”은 마을 수호신을 뜻한다. 돌무더기와 나무에 걸린 오색 헝겊 조각에는 간절한 소망이 스며 있었고, 오래된 나무는 그렇게 사람들의 웃음과 눈물을 함께 지켜낸 신목이 되었다.
가장 유명한 신목 중 하나는 바로 <강릉단오제>의 신목이다. 지금은 우리 곁에 계시지 않은 아버님과 가족들이 함께 단오제를 보러 갔던 기억이 있다. 신목을 베어 축제를 시작하고, 그 나무를 태우는 것으로 45일간의 긴 축제를 마무리하는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곳에는 <삼국유사>의 <조신설화>와 함께 등장하는 범일국사가 대관령 국사성황으로 나라의 안녕을 지킨다는 전승이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허균의 『성소부부고』에는 국사성황을 신라의 장군 김유신으로 기록하기도 했다. 결국 단오제의 신목은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공동체의 운명을 함께 짊어진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서양에서 나무는 선택과 운명의 상징으로도 사용되었다. 도시 아테네의 수호신을 정할 때,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바닷물을 솟구치게 했고 지혜의 여신 아테나는 올리브 나무를 심었다. 아테네 사람들은 결국 올리브를 택했다. 평화와 풍요를 가져다주는 나무는 도시의 영혼이자, 아테네인의 삶을 결정한 선택이었다.
현대의 미디어 상상력 속에서도 나무는 여전히 세계를 지탱하는 축으로 등장한다. 영화 〈아바타〉 속 나비족이 숭배하는 에이와(Eywa)의 나무는 조상들의 기억과 후손들의 생명을 잇는 통로였다. 나비족은 나무에 손을 얹고 기도하며, 죽은 자와 산 자가 같은 뿌리에서 이어져 있음을 느낀다. 무엇보다도 인상 깊었던 것은 나무줄기와 나비족이 접속해 과거의 역사와 문화를 마치 컴퓨터 자료를 내려받듯 흡수하는 장면이었다. 나무 에이와는 거대한 슈퍼컴퓨터 본체처럼 보였다. 나도 모르게 ‘우리도 공부 안 하고 저렇게 배우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 적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서낭당은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많은 시련을 겪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미신이라며 무참히 잘려 나갔고, 새마을운동 시기에는 낡은 풍습이라며 사라지기도 했다. 돌무더기는 허물어지고, 헝겊 조각은 미신의 흔적으로 낙인찍혔다. 서울 지하철 4호선 ‘당고개역’도 본래 서낭당에서 유래된 이름이었지만, 최근 ‘불암산역’으로 바뀌었다. 이름 하나만 보아도 서낭당의 흔적이 우리 문화 속에서 어떻게 지워져 왔는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데헌〉 속 서낭당은 다시 우리 곁에 살아나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루미는 거대한 서낭당 나무 앞에 서서 자기 존재를 지워 달라고 셀린에게 부탁한다. 그러나 곧 깨닫는다. 자신이 그동안 숨기며 지켜왔던 혼문은 더 이상 의미가 없고, 이제는 스스로 지켜야 할 새로운 혼문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것을. 루미의 결심은 서낭당 나무 아래에서 이루어지고, 셀린의 당부는 루미의 새로운 맹세로 이어진다.
서낭당 나무는 결국 시작과 끝, 소멸과 재생을 모두 품은 자리라고 볼 수 있다. 돌 하나, 천 조각 하나에도 사람들의 기도가 스며 있었듯이, 〈케데헌〉 속 서낭당 나무는 인간의 두려움과 희망, 그리고 영혼을 지켜내려는 의지를 증언한다. 그래서 오래된 나무 아래에 서면, 우리는 언제나 다시 힘을 얻고 새로운 시작을 꿈꿀 수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