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케데헌> 속 무덤과 한국의 저승관

케데헌 속 신화, 춤추는 한국문화 14

<네플릭스 애니메이션 <케데헌>두 장면을 캡처한 후 지피티 활용해서 한 장면으로 만듦, 무단 복사 금지>


어릴 적 무더운 시골의 대낮에도 무덤가를 지나가는 일은 늘 두려웠다. 풀벌레 소리 사이로 들려오는 새소리조차 괜히 죽은 자들의 신호처럼 느껴져 반갑지 않을 때가 많았다. 밤이면 그 공포는 더 커졌다. <전설의 고향>에서 무덤이 갈라져 귀신이 솟구쳐 나오는 장면이 떠올라 발걸음을 재촉했다. 무덤은 어린 나에게는 그저 두려운 공간, 산 자와 죽은 자를 나누는 경계의 공간으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되었다. 무덤은 단순한 두려움의 상징이 아니라, 남은 이들의 기억과 눈물이 켜켜이 쌓이는 자리라는 것을. 아버지는 살아생전 자신이 묻힐 자리를 미리 준비해 두셨고, 결국 할머니 할아버지가 함께 계신 곳으로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자리도 이미 그 곁에 마련되어 있다. 마치 단체로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이사를 가듯, 또 다른 공간으로 옮겨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덤은 그렇게 단절이 아니라 이어짐의 장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삼국유사』에 실린 미추왕의 죽엽군 설화는 이 사실을 잘 보여준다. 신라가 외적의 침입으로 위기에 빠졌을 때, 대나무 잎을 꽂은 군사들이 나타나 적을 물리쳤다. 전투 뒤 미추왕릉 앞에 쌓인 대나무 잎은, 무덤 속 임금이 후세를 구한 증거라고 말하고 있다. 훗날 김유신 장군의 무덤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소리가 들려왔을 때도, 미추왕의 혼은 응답했다. “대의가 더 크다”는 설득에 김유신의 영혼은 회오리바람을 멈추고 다시 무덤으로 돌아갔다. 무덤은 단순히 죽음을 가두는 곳이 아니라, 억울한 혼을 달래고 나라의 대의를 회복하는 영적 공간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무덤 중에서 제주의 무덤 풍경은 매우 독특하다. <케데헌> 속 배경에 등장한 산담은 제주의 매장 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산담은 돌담으로 둘러싼 무덤을 말한다. 산담 위로 야생화가 피어나고, 그 옆에는 돌하르방이 우직하게 서 있다. 무덤은 제주 사람들에게 단순한 매장의 장소가 아니라, 고을을 지키는 수호의 자리였다. 루미와 셀린이 무덤 앞에서 나누는 대화 장면은 그래서 더욱 절절하게 다가온다. 죽은 이를 기리는 동시에, 남은 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세우는 자리로 무덤이 기능하기 때문이다.

현대의 아픔을 담은 미디어 이야기 속에서도 무덤은 중요한 장치로 등장한다. 제주를 배경으로 한 네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28살 애순과 29살 관식은 요절한 막내아들 동명이의 무덤을 함께 찾지 못한다. 죄책감과 슬픔이 너무 커서 차마 함께 가지 못하고, 각자 다른 자리에서 슬픔을 삭인다. 그러나 눈 오는 날, 애순이 무덤을 찾아가 눈을 털어내고 무덤을 끌어안는 장면은 마치 아이를 안아주는 어머니의 품처럼 느껴진다. 무덤은 그렇게 죽은 자와 산 자를 이어주는 따뜻한 매개가 된다.

무덤은 여성의 자궁과도 닮았다고 말한다. 새로운 생명을 품는 자궁처럼, 무덤은 죽음을 품어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문이다. 어머니의 무릎에 안겨 엉엉 울던 순간처럼, 무덤은 고통과 위로가 교차하는 자리다. 한국인의 죽음관을 연구한 김열규의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에서도 무덤은 단순한 종착지가 아니라, 죽음을 기억하고 성찰하며 삶을 더욱 충실하게 만드는 장치로 이해된다.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 곧 삶을 더 깊이 사는 길이라는 것이다.

이제 무덤은 두려움만이 아니라 이야기의 공간이 된다. <케데헌>의 셀린은 루미의 머리를 만져주면서 루미의 엄마 류미영의 묘지에 앉아 있다. 이때 제주 산담은 낮은 돌담 무덤을 둥글게 감싸 안으며 바람과 세월을 막아주는 듯하다. 풀꽃이 무덤 위에 피어 있어 야생의 기운과 생명의 숨결을 더한다. 곁에 놓인 제물과 향로는 망자를 기리는 정성을 보여주고, 주변의 숲과 돌들이 어우러져 제주의 거친 자연과 깊은 신앙심을 함께 담아내는 것 같다.

<케데헌> 속 산담 장면이 우리에게 묻는 것도 아마 이 질문일 것이다. 무덤은 끝인가, 아니면 또 다른 시작인가? 헌트릭스 루미의 엄마가 제주에 묻혀있다는 것이 매우 의미 심장하게 느껴진다. 제주 여성신화의 자청비와 오늘이, 감은장아기까지 모두 무덤과 저승의 상징과 연결되게 느껴진다. 어쩌면 무덤은 단절이 아니라 기억의 문을 열어 주는 이음의 공간일 것이다. 우리는 그 앞에서 두려움 대신 삶과 죽음의 경건함을 배우는 것 같다. 곧 추석이니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이들을 보러 우리는 저마다 길을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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