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케데헌> 속 부분과 전체, 커피, 그리고 한약

케데헌 속 신화, 춤추는 한국문화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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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지피티로 만든 한약, 커피믹스, 그리고 루미의 포도즙>


나의 할머니는 마술사 같았다. 어릴 적 먹을 것이 없으면 바다에서 대합을 잡아와 작은 쌀에 대합을 넣고 커다란 솥 가득 대합죽을 끓여내셨다. 그때는 가난을 메우던 소울 푸드였는데, 지금은 고급 음식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처럼 느껴진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손자들과 손녀들을 돌보시며 뭐든 만들어내시던 할머니는, 내게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마술사였다.

고등학교 시절, 공부 때문에 도시로 올라온 나를 위해 할머니가 함께 머물며 밥을 해주셨다. 80년대 커피믹스가 막 세상에 퍼지면서 대중화되던 시절이었다. 나는 장난 삼아 달콤 쌉쌀한 커피믹스를 할머니께 내밀며, “할머니, 이게 새로 나온 한약이래요” 하고 약사발에 커피를 담아 드리며 짓궂게 장난을 쳤던 적이 있었다. 할머니는 생전 처음 맛보는 맛에 내 말을 믿으시고, 그 커피를 조심스레 드시며 기운이 난다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할머니의 믿음 속에 깃든 따뜻함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케데헌〉 속 헌트릭스가 한약방을 찾던 장면이 나의 경험과 겹친다. 루미가 찾은 곳은 서울 약령시장에 있는 서울한방진흥센터였다. 목이 아파 노래가 나오지 않자 한약을 지으러 간 루미에게 한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부분을 알려면 전체를 알아야 합니다.” 이는 단순한 진료의 수사적인 말이 아니라, 한국인이 오랫동안 몸과 마음을 다스려온 지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한국에서 한약은 그저 단순한 치료제는 아니다. 몸의 한 군데 아픔을 고치는 것을 넘어서, 사람 전체를 다시 세우고 조화롭게 만드는 보약의 개념으로 여겨졌다. 루미는 한약을 마시며 자기 존재의 균형을 회복해 가려했고, 이 과정은 그녀가 혼문을 지키는 서사와도 겹쳐졌다.

한의사가 부분과 전체를 이야기하는 장면은 곧바로 동양의 고전 <장자>의 제물론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조삼모사라는 이야기에 방점이 찍힌다.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를 주니 화를 내던 원숭이가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니 무척 좋아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결국 이 원숭이들이 받아야 하는 합은 7로 동일하다. 눈앞의 차이를 붙들고 요동하는 것은 집착일 뿐이라고 장자는 부분과 전체를 보는 지혜를 말하는데 이 우화를 활용한다. 반면, <열자>에서는 이 이야기가 다소 다르게 쓰인다. 열자는 어리석은 인간이 눈앞의 꾀에 집착하는 모습으로 이 이야기를 기록한다. 우리는 어쩌면 조삼모사를 장자의 생각보다는 열자의 생각대로 활용해오고 있었던 것 같다. 하나의 이야기가 지혜와 어리석음을 동시에 비추는 거울이 되는 셈이다.

루미에게 한약은 효과가 있는 듯했다. 그녀의 목소리도 차츰 돌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것이 한약이 아니라 포도즙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순간 루미의 표정에는 당혹감이 스쳤지만, 그녀는 곧 깨닫게 된다. 중요한 것은 약의 재료가 아니라 친구들의 응원과 믿음의 힘이었다. 그녀가 몸을 고치려고 마음먹은 순간, 이미 마음은 회복을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루미가 한약의 봉지를 한 겹 벗기고 포도 주스를 발견할 때, 문득 어린 시절 할머니가 커피믹스를 한약이라 믿고 드시던 장면이 떠올랐다. 당연히 나중에 할머니는 그것이 커피인지 알게 되었다. 그래도 당시 손녀가 준 커피 한약이 효엄이 있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결국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믿음을 품는 순간, 그것은 약이 되고, 위로가 되고, 불씨가 되어 삶을 지탱하기도 할 것이다.

한국인에게 한약은 단순히 그저 쓴 약물이 아니다. 한 사발의 뜨거운 탕약에는 가족의 정성과 돌봄이 깃들어 있었고, 몸 전체의 균형을 회복시켜 준다는 믿음이 담겨 있다.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결국 한약은 몸을 고치는 약을 넘어, 삶을 버티게 해주는 따뜻한 위로의 상징으로 작용할 때가 많다. 루미에게 포도즙이 목소리를 회복시키는 명약이 되고 있는 것은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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