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케데헌> 속 루미와 한국신화 속 오늘이

케데헌 속 신화, 춤추는 한국문화 15

<원천강본풀이>를 애니메이션으로 한 이성강 <오늘이> 중 매일이와 장상이를 챗지피티로 다시 변형함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은 어떤 것일까. 살면서 우리는 수없이 이 질문에 부딪히곤 한다. 내가 잘 가고 있는지,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왜 여기에 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누구나가 던지는 일생의 화두일 것이다.

<케데헌>의 루미는 악령과 헌터 사이에서 태어나 혼문을 완성시켜야 한다는 사명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그녀는 늘 혼란스럽다. “과연 내가 지켜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길은 무엇일까? 어떻게 지키라는 것일까?”라는 질문이 루미의 내면을 끊임없이 흔들고 있다. 자기의 의도와 상관없이 사명은 주어졌지만, 그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고통은 깊다.

한국의 민간신화 <원천강본풀이>의 주인공 오늘이 역시 비슷하다. 이름조차 몰랐던 소녀는 부모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 들판에서 학과 함께 살아가던 오늘이에게 마을 사람들은 ‘오늘’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그 이름은 곧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의 출발점이 된다. 부모가 원천강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오늘이는 험난한 길을 마다하지 않고 나아가기로 한다.

<케데헌> 속 루미의 혼문 지키기와 <원천강본풀이> 속 오늘이의 원천강 찾기는 결국 인간의 자기 탐색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누구나 삶에서 “나는 누구인가, 내 운명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마주하며, 그 답을 찾기 위해 자신만의 길을 떠난다. 두 이야기는 그 길 위에서 만나는 상처와 사랑, 그리고 깨달음의 순간을 신화적 상징으로 담아내고 있다.

<원천강본풀이>의 오늘이는 여정 속에서 다양한 존재들을 만난다. 책만 읽는 매일이와 장상, 꽃을 피우지 못하는 연꽃나무, 여의주를 세 개나 지니고도 용이 되지 못하는 이무기, 벌을 받아 물을 긷는 선녀들. 그들의 사연과 고민은 오늘이 자신의 여정과 겹쳐진다. 부모를 찾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다른 존재들의 물음에 대답을 찾아야만 하는 길. 결국 오늘이는 원천강에 이르러 부모를 만나고, 그곳에서 들은 해답을 들고 돌아와 하나하나 저마다의 문제들을 해결해 준다. 오늘이는 단순히 자신의 부모를 찾는 아이가 아니라, 타인의 운명을 돌보며 스스로 사계절의 여신으로 성장한다.

<케데헌> 속 루미의 이야기도 다르지 않다. 그녀는 사자보이스의 진우라는 악령과 인간 사이에서 갈등하는 존재를 마주한다. 진우는 귀마에게 400년 동안이나 잡혀 살아야 하는 운명에 휘둘리지만, 루미는 그를 귀마로부터 해방시켜주고자 한다. 루미의 선택은 단순한 헌터로서의 임무를 넘어선다. 사랑하는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 안에 흐르는 악령의 흔적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위해 그녀는 싸우는 것이다. 결국 오늘이가 사계절 여신으로 승화했듯, 루미도 진우의 영혼을 해방시키는 존재로 거듭난다.

오늘이와 루미는 공통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 운명과 맞서며, 스스로의 손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여성 영웅으로의 면모를 보여준다. 신화 속 여성들이 단순히 수동적인 존재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오늘이와 루미는 오히려 능동적으로 자기 운명을 개척한다. 오늘이는 부모를 찾아내고 사계절의 여신으로 승화하며, 루미는 진우를 통해 자기 자신을 스스로 구원하며 새로운 혼문을 완성한다.

<케데헌> 속 루미와 진우의 사랑은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다. <원천강본풀이> 속 매일이와 장상이의 사랑을 보는 듯하다. 매일이와 장상이는 왜 자신이 공부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던 답답한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서로를 만나면서 그 이유를 깨닫고, 함께할 때 비로소 완전해지는 운명의 사랑을 이룬다. 그것은 서로를 구원하는 사랑이다. 진우는 더 이상 귀마의 목소리에 휘둘리지 않게 되고, 루미는 악령의 흔적을 지워내며 진정한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다. 사랑은 서로를 변화시키는 힘이자, 존재의 근원을 지켜내는 길이 되는 셈이다.

그들의 사랑은 거창하지 않고 다소 소극적으로 보이기조차 한다. 서로의 부족함을 감싸주고, 대단하지 않은 것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사랑이다. 진우는 루미에게 자신의 불완전함을 드러내고, 루미는 그런 진우를 받아들인다. 반대로 루미 역시 자신이 흔들리고 약한 순간들을 진우 앞에 보여주지만, 그 사랑은 흔들림 속에서도 서로를 붙잡아주는 힘이 된다.

<원천강본풀이>의 오늘이와 <케데헌> 속 루미의 이야기를 겹쳐 읽다 보면, 한국 신화 속 여성 원형과 현대 대중문화 속 여성 캐릭터가 서로 대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두 사람은 모두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안고 길을 떠났고, 사랑과 만남, 그리고 자기 결단을 통해 새로운 자기 자신으로 태어나는 여성 영웅들이다. 그것이 바로 오늘이와 루미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인 것 같다. 운명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랑은 우리를 구원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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