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데헌 속 신화, 춤추는 한국문화 16
<위키백과 황룡사 9층목탑, 루미 혼문의 정신과 연결됨>
<케데헌> 속 처음부터 끝까지 줄기차게 등장하는 혼문은 무엇일까. 혼문은 쉽게 말하면 영혼의 문이다. <케데헌> 속 헌트릭스가 세우는 혼문은 단순히 악령을 막는 방어막이 아니라, 존재와 세계를 이어주는 영적인 울림이다. 헌트릭스의 스승 셀린이 지켜온 혼문은 오랜 전통 속에서 이어져 온 방패와 같다. 악령이 인간의 삶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굳건히 세운 울타리, 그것이 그녀의 혼문이다. 그러나 제자 루미가 바라보는 혼문은 완전히 다르다. 그녀는 반인반악의 운명 때문에 몸에 악령의 흔적을 지니고 태어났고, 그 흔적은 평생의 고통과 낙인이었다. 루미는 이를 숨기고 살아가지만, 진우와의 만남을 통해 오히려 자신을 드러내고, 그 상처를 인정하면서 새로운 혼문을 세워 나갈 결심을 한다. 그것은 집단의 전승을 단순히 이어가는 혼문이 아니라, 자기 성찰과 치유의 과정을 통해 새롭게 완성되는 혼문이었다.
루미의 혼문은 ‘황금 혼문’이라 불린다. 팬들의 마음, 동료들의 다름, 그리고 자신의 불완전함이 모두 모여 빛으로 빛나는 이 혼문은, 단일한 장벽이 아니라 다채로운 공명이다. 셀린의 혼문이 세상을 지키는 ‘오래된 방패’라면, 루미의 혼문은 자신과 타인의 상처를 포용하는 ‘새로운 문’이다.
이 새로운 혼문은 한국의 전통 상상력 속에서도 읽을 수 있다. 바로 <삼국유사> 속 선덕여왕이 세운 황룡사 9층목탑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선덕여왕은 외적의 침략과 나라의 위기를 물리치기 위해 자장법사의 권고를 받아들여 황룡사에 아홉 층의 거대한 목탑을 세웠다. 높이 80m에 달하는 그 탑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나라와 백성을 지켜내고자 하는 정신적 방패였다. 경주 어디에서도 보이는 이 탑은 백성들의 정신적 위안이었을 것이다. “탑을 완성하면 사방의 적이 스스로 물러갈 것”이라는 믿음 속에서, 탑은 곧 국가의 상징적 혼문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황룡사 9층목탑은 셀린의 혼문과 닮았다. 외부의 악령, 곧 외적의 위협을 물리치고자 세워진 상징의 장벽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루미의 혼문과도 연결된다. 선덕여왕이 단순히 적을 막기 위해 탑을 세운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두려움과 불안을 위로하고 나라의 기운을 한 곳에 모아낸 것처럼, 루미 역시 자신의 불안정한 목소리와 상처를 포용해 모두의 감정을 하나로 묶는다. 황룡사의 탑이 공동체 전체의 기운을 모아낸 집합적 혼문이었다면, 루미의 혼문은 개인의 상처에서 출발해 공동체의 울림으로 확장되는 문이다.
선덕여왕이 자장법사를 불러 탑을 세운 까닭은 분명하다. 나라를 구하기 위한 길은 무기를 드는 것이 아니라, 신앙과 정신 즉 믿음을 모으는 데 있었다. 혼란한 시대일수록 인간은 눈에 보이는 방어보다, 보이지 않는 정신적 방패를 갈구한다. 루미의 세계도 같다. 귀마와 악령은 단순한 괴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 불안과 두려움이 만들어낸 그림자이다. 그것을 막아내는 길은 외부의 싸움이 아니라, 내 안의 상처를 인정하고 다름을 포용하는 데 있다.
마지막 귀마와 싸움을 하러 돌아온 루미의 “What it sounds like” 노랫말은 이를 더욱 선명히 드러낸다. “부서진 유리 속에도 아름다움이 있다”, “흉터는 나의 일부다”라는 대목은 루미가 악귀의 문양을 감춘 채 고통받다가, 마침내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순간을 닮아 있다. 그녀의 혼문은 완벽한 황금빛이 아니라, 불완전한 빛들이다. 그러나 그 빛이야말로 세상을 지켜내는 진정한 방패가 된다.
선덕여왕의 탑과 루미의 혼문은 시대와 맥락이 달라도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지켜야 할 세상은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있다는 것이다. 선덕여왕은 백성들의 불안을 탑으로 달래며 나라를 지켰고, 루미는 자신의 상처를 받아들임으로써 공동체를 위한 문을 완성한다.
오늘 우리가 세우고 싶은 혼문도 별반 다르지 않다. 불안한 시대 속에서, 혼문은 단순히 외부의 적을 막는 문이 아니라, 자기 안의 상처와 불안을 받아들이고, 서로의 다름을 껴안으며 함께 살아가는 문이어야 한다. 오래된 혼문이 방어의 상징이었다면, 새로운 혼문은 성찰과 성장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지어야 할 혼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