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케데헌> 속 루미의 댕기머리와 자유

케데헌 속 신화, 춤추는 한국문화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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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데헌의 루미 머리와 신윤복의 단오풍정 속 트레머리와 가체, 챗지피티 활용>


내 인생의 대부분의 증명사진 속 나는 짧은 커트머리를 하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늘 짧은 머리였다. 어떤 이들에게 머리카락은 여성성의 상징이고, 신화 속 삼손처럼 힘의 근원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게 머리카락은 그런 신비한 상징이 아니라, 여름이면 덥고 손이 많이 가는 현실 그 자체였다. 머리가 길면 덥고 번거롭다는 이유로 나는 늘 짧은 머리를 택했다. 하지만 긴 머리에 대한 향수는 늘 남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와 말했다.

“엄마, 나도 엄마 머리가 길었으면 좋겠어요.”

그 말에 웃음이 났지만, 마음 한쪽이 묘하게 흔들렸다. 아이의 말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여성의 표상’이었다. 그 후 몇 번 긴 머리를 시도했지만, 결국 나는 다시 짧은 머리로 돌아왔다.

그런 나에게 루미의 댕기머리는 묘한 울림을 주었다. 저런 댕기머리를 한 번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K-팝 데몬헌터스〉 속 루미의 보랏빛 트윈테일은 전통의 댕기를 비틀어 새롭게 태어난 형상이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할 만큼 풍성하고 화려한 머리카락. 그러나 그 과장된 헤어스타일 속에는 억눌렸던 여성의 욕망과 자기표현의 자유가 뒤섞여 있는 것 같다. 루미의 댕기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자신을 되찾는 깃발처럼 보인다.

조선시대 여성들도 머리카락으로 자신을 표현했던 적이 있었다. 가체와 트레머리는 자유와 억압이 교차하던 상징이었다. 영조·정조 때 사치 풍조를 이유로 ‘가체 금지령’이 내려졌다. 심지어 비싼 가체는 노비 수십 명을 구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고 한다. 또한 무거운 머리 장식으로 인해 여성들이 목디스크와 두통과 허리통증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금지령 이후에도 조선의 여성들은 머리카락에 비녀 하나라도 꽂으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 했다. 신윤복의 〈미인도〉 속 여인은 검은 머릿결을 단정히 틀어 올렸지만, 그 속에는 은근한 자의식이 숨 쉬고 있다. 〈단오풍정〉의 여인들이 머리를 느슨히 풀고 냇가에서 서로의 머리를 빗겨주는 장면 역시 단정함과 해방감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머리카락은 신윤복의 붓끝에서 단순한 미적 장식이 아니라, 욕망과 자유의 언어가 되는 것 같다.

19세기말 조선을 방문한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은 『내 기억 속의 조선, 조선 사람들』에서 조선인을 “댕기 달린 동물”이라 표현했다. 남녀 모두 혼인 전에는 긴 머리를 땋아 댕기로 묶었고, 여성의 비녀와 남성의 상투는 성인으로 가는 의식적 상징이었다. 로웰에게 댕기는 단순한 머리 장식이 아니라, 사회 질서와 정체성을 드러내는 문화적 표식으로 인식되었다. 외국인의 눈에도 댕기는 조선인의 내면을 규정짓는 ‘언어’였던 것이다.

나는 루미의 보랏빛 댕기머리에서 그 오래된 민족의 기억을 보았다. 루미의 올라간 댕기머리는 자신을 묶고 있는 운명에 대한 반기처럼 보였다. 루미는 더 이상 타인의 시선을 위해 댕기를 묶지 않는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스스로 선택한 ‘무기’이자 ‘언어’가 된다. 그 보랏빛은 유년의 천진함이 아니라, 상처를 지나 다시 피어난 생존의 빛으로 읽힌다.

시대가 바뀌어도 머리카락은 여성을 규정하고 해방하는 상징으로 남는다. 현대인이 루미의 댕기머리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화려함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낸 용기, 그리고 그로부터 피어나는 자유인 것 같다.

댕기머리는 어쩌면 단순한 전통의 장식이 아니라, 자신을 잊지 않기 위한 ‘기억의 매듭’이다. 루미의 머리카락은 그렇게 과거의 억압과 현재의 자유, 그리고 미래의 자기 선언을 잇는 보랏빛 리본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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