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케데헌> 속 낙산공원과 400전 전 한류스타

케데헌 속 신화, 춤추는 한국문화 17

<서울관광정보 낙산야경을 챗지피티로 색체 변형함>



올여름,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낙산공원 언덕을 올랐다. 길가에는 작은 교회가 있었고, 나는 그곳을 찾기 위해 뜨거운 햇볕 속을 묵묵히 걸어 올라갔다.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지만, 이상하게도 발걸음은 가벼웠다. 마치 오래된 기억이 내 곁을 따라오듯, 낙산으로 향하는 길에는 묘한 설렘이 묻어 있었다.

공원을 걷는 동안 문득 ‘왜 이 산은 낙산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강원도 양양에 있는 낙산사와 연결된 이름일까. 불교와 관련이 있을까. 성곽길을 오르며 머릿속에 이런저런 상상이 이어졌다. 낙산사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전설이 남아 있듯이, 혹시 이 산에도 영험한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낙산이라는 이름 속에는 단순한 지명이 아닌, 종교적 기운과 사람들의 바람이 함께 얽혀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실제로 알게 된 낙산의 유래는 의외로 소박했다. 산의 모양이 낙타의 등처럼 둥글게 솟아 있어 ‘낙타산’이라 불리던 것이 줄어 ‘낙산(駱山)’이 된 것이었다.

낙산은 조선 왕실의 눈물도 품고 있다. 단종이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겨 영월로 유배되자, 그의 어머니 정순왕후는 매일 낙산에 올라 영월 하늘을 바라보다 눈물 속에 생을 마쳤다고 전한다. 그리움과 안타까움의 언덕이다.

그렇다면 낙타는 언제부터 이 땅에서 살았을까. 사막에 살던 애들이 어찌하여 머나먼 타국에 왔을까 궁금해졌다. 낙타는 고려시대에 중국 사신이나 아라비아 상인들에 의해 조공과 교역품으로 한반도에 들어왔다. 그러나 사막에서 생명을 지탱하던 이국의 짐승은 혹독한 겨울과 낯선 풍토에 적응하지 못해 자주 죽어갔고, ‘낙타의 수난사’는 여러 기록 속에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942년 태조 왕건 시절 만부교 사건은 가장 극적인 장면이다. 거란이 보낸 사신 30명은 유배되고, 함께 끌려온 낙타 50 필은 다리 밑에 묶인 채 굶어 죽었다. 사막에서는 생명줄이던 낙타가 고려 땅에서는 냉혹한 정치적 결단 속에 단절과 거부의 상징으로 사라진 것이다. 다리 아래 말라죽던 낙타들의 긴 속눈썹을 떠올리면, 왕조의 강경함 뒤에 감춰진 인간적 슬픔이 겹쳐진다.

그러고 보니 20여 년 전 아들들과 매주 찾던 동물원에서 본 낙타의 모습이 떠오른다. 바싹 마른 몸에 긴 속눈썹을 한 눈은 외로움이 가득했다. 사막이 아닌 철창 안에 갇혀 있던 낙타는, 마치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잃은 듯 안타까운 기운을 풍겼다.

불행하게도 낙타는 한때 우리에게 질병과도 연결된 존재였다. 2015년 한국 사회를 휩쓴 메르스(MERS) 즉 중동호흡기증후군의 매개체가 바로 낙타였다. 멀리 사막에서 살아가던 동물이 인간 사회에 전해준 병은, 자연과 인간이 서로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다시금 일깨워 주는 것 같았다. 낯선 동물의 이름을 가진 낙산의 언덕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인간의 운명과 질병의 역사를 다시 겹쳐 보게 된다.

그러나 낙산공원은 어둠만 품고 있지 않다. 애니메이션 <케데헌> 속에서 헌트릭스의 루미와 사자 보이즈의 진우는 이곳 성곽길을 함께 걸으며 서로의 아픔을 나눈다. 해가 저물고 푸른빛이 드리우는 성곽 위에서 부른 <Free>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라는 선언처럼 울려 퍼진다. 노래는 고요 속에서도 흔들리는 목소리를 담아낸다. “숨기려 했지만 무언가 부서졌고/ 상처도 나의 일부”라는 가사는 거짓을 벗고 확실한 나를 향해 나아가려는 결심을 상징한다. 루미와 진우가 함께 부른 이 노래는 서로의 상처를 마주하며 불완전한 자신조차 끌어안자는 고백이다. 낙산의 바람 속에 오래도록 감도는 로맨틱한 기운은, 그렇게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순간의 위로와 닮아 있다.

낙산공원에는 우리가 놓치치 않아야 할 또 다른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바로 조선의 실학자 지봉 이수광의 옛 집 ‘비우당’이다. 그는 청렴함으로 이름 높았던 유관 선생의 집을 물려받아 ‘비를 가리는 집’이라 이름 지었다. 그런데 이수광은 단순한 학자가 아니었다. 400년 전 베트남에까지 이름을 알린 최초의 ‘한류스타’였던 것이다. 그의 책 『지봉유설』에는 일본 인질로 끌려간 조완벽이라는 사람이 베트남에서 한류스타가 되어 있는 이수광을 증언하고 있다. 조완벽에 의하면 베트남 학자들은 이수광의 시를 붉은 글씨로 점을 찍어 암송했고, 조선의 문장이 바다를 건너 울려 퍼졌다.

그러고 보면 400년 전, 이미 이곳 낙산 언덕에서 한류의 별빛이 반짝였던 셈이다. 오늘날 케이팝이 세계를 무대로 울려 퍼지듯, 이수광 역시 지식과 사유를 통해 아시아의 무대에 섰던 셈이다.

과거 한류스타가 살던 집터 위에 오늘날 젊은이들이 찾는 낙산공원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쩐지 필연처럼 느껴진다. 낙타의 이름을 품은 산, 왕비의 눈물이 서린 언덕, 그리고 400년 전 한류의 지식인이 살던 집. 낙산은 여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품고, 우리들을 부르는 것 같다.

keyword
이전 16화16. <케데헌> 속 혼문과 선덕여왕의 황룡사 9층목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