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의 뜻보다 인간의 부탁이 앞설 때
유튜브 신화노트에서 활용한 표훈대덕, 챗지피티 생성
『삼국유사』를 읽다 보면 화려한 기적이나 극적인 영웅담보다 오히려 마음을 오래 붙드는 장면들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하고 담담한데, 읽고 난 뒤 쉽게 잊히지 않는 이야기들이다. 표훈대덕과 경덕왕, 그리고 혜공왕으로 이어지는 이 서사가 바로 그렇다.
신라 경덕왕은 어느 날 표훈대덕을 찾아가 간절한 부탁을 한다. 하늘나라에서 아들을 점지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왕에게 후계자는 개인적인 바람을 넘어 국가의 존망과 직결된 문제였고, 아들을 원한다는 마음은 당시 사회에서 지극히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욕망으로 여겨졌다. 이 장면만 놓고 보면 왕의 부탁은 특별할 것 없어 보인다. 문제는 『삼국유사』가 이 부탁을 전하는 방식에 있다.
일연은 분명히 밝힌다. 하늘의 뜻은 아들이 아니었다고.
원래 점지될 운명은 아들이 아니었음에도, 경덕왕은 표훈대덕에게 부탁하고, 표훈대덕은 그 부탁을 받아들인다. 수행자로서 하늘의 뜻을 알고 있던 인물이 인간의 간청 앞에서 한 걸음 물러서는 순간이다. 그 결과 태어난 인물이 바로 혜공왕이다.
이 지점에서 표훈대덕의 딜레마가 선명해진다. 그는 불교의 가르침을 전하는 고승이며, 하늘의 뜻과 인연의 이치를 아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그는 하늘의 뜻 앞에서 왕의 바람을 단호히 거절했어야 했을까, 아니면 나라를 걱정하는 왕의 불안을 외면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삼국유사』는 이 선택을 단죄하지 않는다. 대신 그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를 조용히 보여줄 뿐이다.
혜공왕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다. 그러나 그는 왕으로서 자신의 시대를 온전히 살아보지도 못한 채,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너무 이른 죽음을 맞이한다. 결국 그는 피살되고 만다.
하늘의 뜻을 비켜간 탄생, 인간의 부탁으로 얻어진 후계자가 감당해야 했던 운명은 지나치게 무거웠다.
이 서사가 더욱 아픈 이유는, 이 모든 선택의 결과를 가장 고스란히 짊어진 존재가 정작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 아이였다는 점이다. 아들을 원한 왕도, 그 부탁을 들어준 표훈대덕도 아니었다. 태어나자마자 왕이 되었고, 왕이 되었기 때문에 죽임을 당한 혜공왕이 그 무게를 대신 짊어진 셈이다.
불교는 업과 인연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 비극의 업은 누구의 것일까. 왕의 욕망에서 비롯된 업일까, 하늘의 뜻보다 인간의 부탁을 우선한 표훈대덕의 업일까. 아니면 시대의 질서 속에서 아무 질문도 허용받지 못한 채 태어난 아이의 업일까. 『삼국유사』는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리지 않는다. 다만 인간의 바람이 하늘의 뜻을 설득하려 들었을 때, 그 대가가 얼마나 멀리, 그리고 약한 존재에게까지 전가되는지를 보여준다.
이 이야기의 또 하나의 중요한 층위는, 이 모든 선택의 배경에 남자선호사상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아들이어야 한다는 생각, 계승은 남성의 몫이어야 한다는 믿음은 왕의 개인적 욕망을 넘어 사회 전체의 상식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그래서 누구도 이 선택을 기이하게 여기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배제된 다른 가능성들은 질문조차 되지 못했다. 딸 부잣집에서 태어난 나는 이 이야기가 내내 불편했었다.
표훈대덕은 악인이 아니다. 그는 선의를 가진 인물이며, 시대의 어른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의 선택은 더욱 중요하다. 선의로 행한 부탁의 수용, 현실을 고려한 타협, 안정을 위한 선택이 결국 한 생의 운명을 너무 이르게 소모시켰다는 사실은 이 이야기를 단순한 옛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는다.
표훈대덕의 딜레마는 그래서 지금도 유효하다. 우리는 여전히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많은 선택을 정당화하고, 그 선택의 결과를 가장 약한 존재에게 떠넘기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삼국유사』는 이 장면을 통해 조용하지만 단단한 질문을 오늘의 우리에게 던진다. 하늘의 뜻보다 인간의 바람이 앞설 때, 그 책임은 과연 어디까지 이어져야 하는가.
이 질문이 아직 낡지 않았다는 사실이, 표훈대덕의 이야기가 오늘도 읽히는 진정한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