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속 여우와 드라마 속 여우

드라마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을 보면서

드라마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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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에서 가장 인상적인 설정은 여우가 인간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존의 구미호 서사가 인간화의 욕망을 중심에 두었다면, 이 드라마는 그 전제를 정면으로 거부한다. 여우는 인간이 되는 순간 따라오는 감정의 소모, 관계의 책임, 끊임없는 자기 설명을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묻는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과연 진화인가, 아니면 또 다른 굴레인가. 이 질문은 판타지의 언어를 빌리고 있지만, 실은 오늘날 인간 조건에 대한 매우 현실적인 성찰처럼 들린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인간적이어야만 하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삼국유사 거타지설화를 유튜브 신화노트에서 재해석해 만든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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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우의 항변은 자연스럽게 오래된 이야기로 나를 이끈다. 『삼국유사』에 실린 거타지 설화다. 바다를 건너던 거타지는 서해의 늙은 용에게서 도움을 요청받는다. 용은 자신과 가족을 위협하는 존재로 늙은 여우를 지목하고, 거타지는 인간의 무기인 활로 여우를 쏜다. 위협이 사라진 뒤, 용은 감사의 뜻으로 자신의 딸을 꽃으로 변하게 하여 거타지에게 보낸다. 이 설화는 명확한 권선징악의 구조를 취하지 않는다. 자연 내부의 갈등에 인간이 개입하고, 그 결과로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는 과정을 담담하게 기록할 뿐이다. 이야기는 해결로 끝나지 않고, 인간에게 맡겨진 존재 하나를 남긴 채 다음 국면으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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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타지 설화에서 특히 주목할 대목은 여우의 정체다. 여우는 처음부터 여우가 아니었다. 그는 늙은 스님의 형상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거타지가 활을 쏘는 순간, 그 외피는 벗겨지고 여우의 본모습이 드러난다. 이 장면은 단순한 요괴의 위장이 아니라, 신앙 질서의 변화를 암시하는 상징적 장치로 읽힌다. 설화 속 용은 여전히 민간신앙적 자연신의 자리를 유지하지만, 스님에서 여우로 변형되는 존재는 불교의 권위가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게 된 시대적 감각을 반영한다. 활이라는 세속적 무기에 의해 종교적 형상이 해체되는 순간, 신성은 벗겨지고 생존의 본능만이 남는다. 이는 종교 간 우열의 선언이라기보다, 불교가 민간적 상상력 속에서 재해석되던 국면의 흔적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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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거타지 설화는 문화 갈등을 선과 악의 대립으로 환원하는 서사의 위험성을 드러낸다. 용은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남고, 여우는 제거되어야 할 대상으로 처리된다. 그러나 여우의 행위는 악의 발현이라기보다 생존의 방식이었고, 용의 요청 또한 정의라기보다 절박함에 가까웠다. 인간은 중재자로 개입하지만, 그 중재는 언제나 폭력을 동반한다. 갈등은 정리되지만, 한쪽의 존재는 소거된다. 문화와 신앙, 생존 방식의 충돌을 선과 악의 문제로 번역하는 순간 서사는 명료해지지만, 갈등의 구조와 책임의 문제는 사라진다. 거타지 설화는 이 불편함을 해소하지 않은 채, 인간이 개입한 이후의 세계를 독자에게 남겨둔다.
그래서 나는 다시 드라마 속 여우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인간이 되기 싫다는 그녀의 선택은 도피가 아니라 판단처럼 느껴진다. 갈등을 너무 쉽게 선과 악으로 나누고, 그 이후의 책임은 묻지 않는 세계라면, 여우로 남겠다는 말이 오히려 정직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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