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속 스캔들의 대명사, 의상대사

― 의상대사와 선묘 낭자의 이야기

유튜브 신화노트에서 제작한 선묘 낭자



사랑하면, 어디까지 가능한가
이 질문은 늘 너무 커서, 쉽게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의상대사와 선묘 낭자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 들 때마다 나를 같은 자리로 데려다 놓는다. 함께 머무는 일까지가 사랑인지, 오래 기다리는 일도 사랑인지, 아니면 결국은 떠나거나, 더 나아가 전혀 다른 존재가 되는 일까지도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지 묻게 만든다.
의상대사는 흔히 고결한 수행자의 모습으로 기억되지만, 그의 삶의 출발점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세속의 중심에 가까웠다. 신라 시대의 불교는 이미 국가 이념이었고, 출가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선택이 아니라 또 다른 방식으로 중심에 서는 일이었다. 실제로 많은 고승들이 왕족이나 진골 귀족 가문 출신이었고, 의상 역시 그런 시대적 조건 속에 놓인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그와 진덕여왕의 관계는 단순한 연정이나 소문으로 축소되기보다는, 정치와 종교, 개인의 감정과 공적 책임이 복잡하게 얽힌 하나의 긴장으로 읽힌다.
중요한 것은, 그가 그 자리에 머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의상은 선택했다. 중심에 서는 길이 아니라 떠나는 길을. 그것은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을 포함한 모든 관계가 자신에게 요구하는 무게를 정확히 인식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관계를 통해 완성되는 삶이 아니라, 관계를 내려놓음으로써 열리는 길을 택했다.
이 선택은 늘 원효와의 대비 속에서 더욱 또렷해진다. 같은 길을 걷고, 같은 밤을 지나면서도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한다. 해골물 이야기는 흔히 깨달음의 순간으로만 소비되지만, 그 장면에는 동시에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인정하는 깊은 체념과 수용이 함께 들어 있다. 원효는 돌아오고, 의상은 계속 나아간다.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하기보다는, 이 둘이 사랑과 진리를 대하는 방식이 달랐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원효는 관계 속으로 들어가 길을 찾았고, 의상은 관계를 끊는 방식으로 자신의 길을 완성했다는 생각이 든다.
낙산사에서 관음의 진신을 만나는 장면 역시 기적의 클라이맥스라기보다는, 그 선택의 결과처럼 느껴진다. 사랑을 버렸기 때문에 신을 만난 것이 아니라, 사랑을 끝까지 사유하고 견뎠기 때문에 다른 차원의 만남에 이르렀다고 읽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여전히 의상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설화의 결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인물은 의상이 아니라, 중국에 남겨진 선묘 낭자다. 선묘 낭자는 붙잡지 않고, 따라오지 않으며, 자신의 감정을 상대에게 증명하려 들지도 않는다. 대신 그녀는 용이 된다. 이 선택은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조용하고도 단호한 결단에 가깝다. 사람으로 남아 곁에 서는 대신, 장소를 지키는 존재가 되는 길을 택하는 것이다.
부석사 설화에서 그녀가 돌을 들어 올리는 장면은 흔히 위협이나 폭력의 장면으로 오해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공격이 아니라 의지의 선언이다. 맞서 싸우겠다는 몸짓이 아니라, “나는 여기까지 왔다”는 말 없는 증명에 가깝다. 그래서 부석사는 단순히 세워진 절이 아니라, 끝내 지켜진 자리로 남는다.
이 이야기가 오래 살아남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랑이 반드시 함께 있음으로만 완성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사랑은 때로 누군가의 곁을 차지하는 대신, 자리를 남기는 선택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설화는 조용히 보여준다. 선묘 낭자의 사랑은 성취되지 않지만, 실패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다른 형태로 변형되어 공간이 되고, 기억이 되고, 신화가 된 것이다.

요즘 나는 삼국유사의 이야기들을 유튜브 영상으로 옮기는 즐거운 놀이를 하고 있다.

그런데 바로 선묘 낭자 지점에서 멈칫하게 된다. 스캔들, 변신, 기적은 언제나 자극적인 소재가 되기 쉽지만, 그렇게 소비되는 순간 이 사랑의 깊이는 쉽게 사라진다. 문제는 용이 되는 장면이 아니라, 그 선택에 이르기까지의 시간과 망설임, 그리고 감당해야 했을 침묵의 무게다.
이미지 한 장, 짧은 영상 안에 이 서사의 호흡을 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그래서 나는 요즘 정답을 보여주기보다는 질문을 남기려 한다. 사랑하면 우리는 어디까지 가능한가. 곁에 머무는 일만이 사랑인지, 아니면 끝내 다른 존재가 되는 일까지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되묻고 싶다.
이 질문이 사라지지 않는 한, 선묘 낭자는 지금도 여전히 부석사를 지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겨울 고즈넉한 부석사가 오늘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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