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속 밤의 비형랑, 드라마 속 낮의 도원대군

드라마 <은애하는 도적님아>를 읽는 한 가지 시선

드라마 <은애하는 도적님아>광고


1

드라마 〈은애하는 도적님아〉는 얼핏 보면 익숙한 구조를 갖고 있다.
법을 지키는 대군과 법을 어기는 도적, 그리고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로맨스.
그러나 이 드라마를 조금 다르게 들여다보면,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구도가 생각보다 단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특히 도원대군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 인물을 단순한 국가 권력의 대행자로 두기엔 어딘가 불편하다.
도원대군은 왕의 동생이다.
조선 최고의 명탐정이라 불리며, 법과 질서를 대표하는 얼굴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의 삶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그는 언제나 대신 칼을 드는 사람일 뿐이다.
법을 만들지도, 방향을 정하지도 못한 채 그저 집행만 맡은 존재.
국가의 중심 가까이에 있으되, 중심이 될 수는 없는 자리다.
이 모습은 오래전 한 인물을 떠올리게 한다.


유튜브 신화노트에서 활용한 비형랑, 챗지피티생성


2
바로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비형랑이다.
비형랑은 폐위된 왕 진지왕의 아들이다.
혈통만 놓고 보면 왕족이지만, 현실에서 그는 아무것도 될 수 없다.
공식 질서 밖으로 밀려난 그는 밤마다 도깨비들과 어울리는 이방인이 되고,
인간도 요괴도 아닌 경계의 존재로 살아간다.
그러나 삼국유사는 이 인물을 ‘위험한 자’로만 그리지 않는다.
왕이 나라의 일을 맡기자,
비형랑은 도깨비들의 힘을 빌려 하룻밤 사이 다리와 탑을 세운다.
법과 제도 밖의 힘이었지만, 그 결과는 분명히 공동체를 살리는 일이었다.
비형랑은 질서를 어지럽힌 자가 아니라,
공식 질서가 감당하지 못한 영역을 메운 사람이었다.
이 지점에서 도원대군의 얼굴은 비형랑과 겹쳐진다.
비형랑이 밤의 질서를 맡은 자였다면,
도원대군은 낮의 질서를 맡은 자다.
둘 다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지 못했고,
둘 다 국가의 이름으로 움직였으며,
둘 다 자기 이름으로는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도원대군이 도적 홍길동을 쫓을 때,
그는 단순히 ‘범인을 잡는 자’로 머무르지 못한다.


3
여인 홍은조가 도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연,
그가 훔친 것이 재물이 아니라 백성의 숨통이었음을 알아보는 순간,
도원대군의 시선은 법에서 관계로 이동한다.
이 변화는 중요하다.
삼국유사가 늘 묻던 질문과 닿아 있기 때문이다.
누가 진짜 나라를 지키는가.
법을 집행하는 자인가,
은혜를 기억하는 자인가.
비형랑은 도깨비를 적으로만 보지 않았다.
도원대군 역시 도적을 죄로만 보지 않게 된다.
이때 두 인물은 같은 자리에 선다.
제도의 칼을 쥐었지만,
그 칼의 한계를 가장 먼저 자각한 사람들.
그래서 〈은애하는 도적님아〉는
도적과 대군의 대결담이 아닌 것이다.
이 드라마는 국가에 의해 선택되었으나, 끝내 국가만으로는 살 수 없었던 두 경계인의 이야기다.
비형랑의 얼굴로 돌아온 도원대군,
그리고 그가 마주한 은애하는 도적.
삼국유사는 오래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법을 어긴 사람이 아니라,
은혜를 잊은 사람이 나라를 무너뜨린다고.
이 드라마가 낯설지 않은 것은
아마 그 오래된 삼국유사 속 질문을 다시 꺼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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