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와 함께 하면서
나는 영문과에서 대학을 시작했다.
셰익스피어와 소설, 시와 비평의 언어를 배우며 문학이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에 매혹되었다.
그러다 국문과 대학원으로 옮겨 석사와 박사를 거치며 현대문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박사 이후, 나는 다시 한번 방향을 틀었다.
영상과 신화, 디지털 서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돌아보면 나는 늘 경계에 서 있었다.
전공을 바꿀 때마다, 연구 대상을 확장할 때마다
“왜 굳이?”라는 질문이 따라왔다.
심사를 받을 때마다 평가는 극을 오갔다.
“신선하다”와 “애매하다” 사이,
“융합적이다”와 “정체성이 불분명하다” 사이를 오갔다.
학술 발표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문학 쪽에서는 영상 이야기가 낯설었고,
미디어 쪽에서는 신화와 고전이 너무 오래된 언어처럼 느껴졌다.
논문을 발표하고 나면 늘 어딘가 몸이 불편했다.
의자에 제대로 앉지 못한 느낌,
언제든 밀려날 수 있는 가장자리의 감각.
특히 내가 삼국유사를 이야기할 때
그 불편함은 조금 더 또렷해졌다.
삼국유사를 현대의 시선으로 읽어내는 일은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낯설다.
고대의 기록을 오늘의 언어로 말하고,
신화 속 인물들을 현재의 감각으로 해석하는 일이
혹시 원형을 훼손하는 것은 아닐지,
지나치게 가볍게 만드는 것은 아닐지
나 스스로에게도 자주 묻게 된다.
어떤 자리에서는
“삼국유사는 그대로 두는 게 맞지 않나요?”라는 말도 들었다.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잠시 망설인다.
하지만 동시에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여전히 이 이야기를 읽고 있는 걸까.
왜 천 년이 넘은 텍스트가
지금도 교실과 강의실에서 살아 움직이는 걸까.
아마도 삼국유사는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매번 다시 읽히며 의미가 바뀌는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것을 ‘훼손’이 아니라
‘다시 만나는 일’이라고 믿고 싶다.
어정쩡한 자리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던 내가
교양교육의 장에 오니
풍경은 조금 달라졌다.
전공의 중심에 서 있던 것들이 오히려 주변이 되고,
주변으로 밀려나 있던 것들이 중심이 되었다.
신화는 교양의 언어가 되었고,
영상은 사유의 도구가 되었으며,
문학은 현실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창이 되었다.
그곳에서는
“그건 네 전공이 아니잖아” 대신
“학생들이 어떻게 반응하나요?”라는 질문이 돌아왔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중심이란 고정된 자리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이동하는 지점일지도 모른다.
교양교육의 현장에서는
눈치를 덜 보게 되었다.
공부를 확장하고, 응용하고, 연결하는 일이
오히려 장점이 되었다.
나는 자유로웠다.
공부가 다시 재미있어졌다.
학생들에게 한 교양 열 전공 부럽지 않다는 마음으로 임해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연구철이 돌아오면 나의 자신감과 자유로움은 또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그래서 이 연구는 어디에 속하나요?”
“문학인가요, 신화인가요, 미디어인가요?”
나는 늘 멈칫하면서 기타 인문학이라는 칸을 수줍게 누르게 된다.
매번 연구 기획서를 쓸 때면 나는 다시 경계에 선다.
선명해지고 싶지만,
선명해지는 순간 사라질 것 같은 것들이 있다.
그래서 요즘 나는 자주 묻는다.
학문이란 무엇일까.
배우고 익히는 일은
정말 즐거움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학문은 고단하다.
특히 경계에 서 있을수록 더 그렇다.
설명해야 할 것이 많고,
이해받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이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경계에 서 있기에
다른 언어가 들리고,
다른 풍경이 보이고,
다른 질문이 생긴다.
중심에만 있었다면
나는 결코 만나지 못했을 이야기들이다.
학문은 어쩌면
정답으로 곧장 가는 길이 아니라,
조금 돌아가며
서로 다른 시간을 잇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완전히 중심도, 완전히 주변도 아닌
이 애매한 자리에서
조용히 공부를 계속한다.
고단하지만,
그래서 조금은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즐거움과 함께.
*이번 글로 약속한 30편의 삼국유사가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사실 계획했던 것의 10퍼센트도 못 꺼낸 느낌이다. 아마도 다음 책으로 못다 한 이야기들을 좀 더 들려드려야 할 것 같다. 부디 원하는 독자가 있기를 바랄 뿐이다.
유튜브 신화노트에서 다룬 삼국유사 속 경계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