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목표는 이윤 추구다. 이윤 추구의 최전선에는 기획, 상품개발, 영업, 마케팅 부서가 있다. 이들에게는 불편한 존재가 있는데, 바로 리스크관리(risk management), 준법감시(Compliance), 감사(Audit) 같은 내부통제(internal control) 조직이다. 내부통제 조직은 당장의 매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된다면서 영업 활동에 딴지를 걸 때가 많다. 그러니 영업과 내부통제 조직 사이에는 일정한 갈등 관계가 존재한다.
내부통제 부서에서도 할 말이 있다. 영업을 무리하게 했다가 경기가 위축되면 회사의 자금 사정이 어려워진다. 법에서 금지한 상품을 만들면 나중에 이익보다 더 많은 과태료를 부담할 수 있다. 소비자의 신뢰가 훼손되면 회사의 영업 기반 자체가 무너져 모두가 함께 망할 수 있다. 분식회계가 만연했던 엔론사와 위험한 금융상품을 많이 팔았던 리먼 브러더스의 주식은 결국 휴지 조각이 됐다.
맞는 말이지만, 안타까운 점은 아무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쇼펜하우어는 “세계는 의지의 표상(representation)”이라고 했다. 오로지 돈 버는 의지로 충만한 CEO에게 세계는 기회의 땅으로만 보인다. 위기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 회사의 내부통제 조직은 사사건건 영업이나 방해하는 찬밥 신세가 될 수 있다. 그런 회사는 위험하다.
일반 회사의 내부통제 실패는 많은 경우 회사가 망하고 주주가 손해를 보는 선에서 끝난다. 하지만 금융회사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금융회사의 수익 원천은 남의 돈이다. 금융회사는 일반 회사보다 부채비율이 훨씬 높다. 따라서 분식회계나 리스크관리 태만과 같은 금융회사 내부통제의 부실은 수많은 채권자를 불안하게 하고 금융시장의 정상적인 작동을 마비시켜 건전한 기업과 성실한 가계의 생계까지 위협한다. 외부통제(external control) 조직인 금융감독기구는 그래서 필요하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금융회사의 건전성과 영업 행위의 준법성을 감시, 감독하는 조직으로서 금융회사 내부통제를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외부통제 이상의 권한, 아니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 이상의 권한이란 금융회사의 영업―영업행위의 준법성을 넘어 영업의 내용과 종류, 범위―에까지 강력한, 때로는 선제적이면서도 세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금융위와 금감원의 유권해석이나 행정지도가 내려지면, 금융회사가 그에 대한 오류를 지적하거나 토를 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친 짓이다.
아이들은 자정 장치(self-correcting mechanism) 덕분에 걷는 법을 배운다. 몸을 잘못 움직여 넘어지면 실수에서 교훈을 얻어 약간 다르게 움직여본다. 부모나 교사와 같은 외부 교정에만 의존하거나 실수에서 배우기는커녕 변명으로 일관하는 아이는 제대로 걷기 어렵다. 어른도 다르지 않다. 어른 역시 걸을 때마다, 일을 할 때마다, 사람을 만나고 위기를 겪을 때마다 복잡한 자기 교정을 거친다. 금융회사도 마찬가지고 자본주의도,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전체주의는 그렇지 않다. <넥서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오류를 인정하고 그것을 계속 수정해 나가면서 자기 교정 기능을 유지했던 시스템은 살아남았지만, 무오류를 가정했던 전체주의는 통제력을 잃는 순간 그 체제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금융감독기구가 금융회사의 영업 내부까지 깊숙이 간섭하게 된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예컨대, 국회에서 만든 법률 자체가 명확하지 않아서 금융감독기구의 유권해석이 필요한 경우가 많이 있다. 하지만 그런 문제는 입법의 문제로 해결해야지, 금융회사 영업을 수시로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힘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금융회사 외부의 힘은 전지전능하지 않지만, 웬만해서는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힘이 커질수록 금융회사 내부의 영업과 자기 교정 능력을 비례적으로 약화시키고, 정치권에서 금융회사의 외부 통제력에 간섭할 유혹이 발생하며, 정치나 사회 갈등의 영향으로 그 통제력을 잃는 순간 모든 것이 위험해진다.
바람직한 금융 시스템이란 무엇일까. 은행은 생산 능력 있는 개인이나 기업에 은행의 차용증(은행예금, 돈)을 공급하고, 개인은 기업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받은 돈을 증권사나 보험사를 활용해 적극적으로 관리한다. 급전이 필요하지만 은행에 접근하기 어려운 가계나 기업은 제2금융권으로부터 돈을 빌린다. 이 과정에서 내부통제 조직은 자신이 속한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감시하고, 법과 공공 윤리를 무시하고 금융소비자를 기만하거나 언론에 지적될 만한 부당한 행동이 있었는지 감시한다. 금융법은 그런 틀을 만들고, 금융감독기구는 그걸 도와주면 되는 게 아닐까.
금융감독원은 국민 세금이 아니라 금융회사의 분담금으로 운영된다. 분담금은 금융회사의 자산 규모나 이익에 비례하도록 설계되어 있으므로 금융회사가 커질수록 금융감독원의 수입도 증가한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금융감독원은 중대한 책임을 진다. 또 금융회사가 망하면 분담금도 줄어든다. 금융회사가 안정적으로 커지는 게 금융감독원에는 가장 좋은 일이다. 금융감독원은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조직과 마찬가지로 금융회사와 공동운명체적인 성격이 있다.
최근 금융감독기구 개편 윤곽이 나왔다는 뉴스를 봤다. 금융위원회를 사실상 해체하고, 금융감독원은 금융건전성 감독과 금융소비자보호 조직으로 이원화한다고 한다. 금융감독원이 이원화된다는 것은 업무의 성격이 다른 건전성 감독과 금융소비자 보호의 전문성을 키운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영업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간섭은 없애고, 외부 통제에 대한 전문성은 높여서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부서)와 공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해석이 맞다면, 아주 잘한 선택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추신) 금융산업은 조선, IT 등과 같은 산업 발전의 도구로 활용될 수는 있지만, 금융산업 자체의 발전을 위한 산업정책이라는 개념은 없다. 금융산업을 발전시키려면 영업 규제는 완화하고, 대신 금융회사의 건전성과 준법행위에 대한 내부통제와 외부통제를 강화하면 된다. 금융산업 육성을 위해, 혹은 금융산업정책을 위해서 엑셀을 밟을 기관(예컨대, 금융위원회)이 필요하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정부 주도로 금융산업이 발전한 나라는 여태까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