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사를 좋아한다.
이사를 자주 다녀 이사를 좋아한 건지,
이사를 좋아해서 이사를 자주 다닌 건지
정확하지 않다.
남편과 결혼하기 전에는 이사를 거의 다니지 않았다.
하지만 10년이 조금 넘는 결혼 기간 동안
대충 기억나는 것만 7번의 이사를 다녔다.
신랑은 결혼 전부터 부동산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결혼 전부터 집을 장만했지만 여러 입지에 관심을 가졌다.
다양한 곳을 경험해 보고 싶다는 신랑을 나는 군말 없이 따라다녔다.
우리는 살던 집을 세주고 전세로 월세로 집을 바꾸며 자유롭게 이사 다녔다.
그러다 첫째가 태어나 우리 집으로 들어왔지만 또다시 이사 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아이가 아토피였기 때문이다.
아이의 아토피는 환경형으로 진단받아 우리는 자연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계획했다.
여러 곳을 이사 다니면서 기억에 남는 집이 몇 곳 있다.
자연환경이 좋은 아파트.
그곳은 앞으로 바다가 펼쳐져 있고 녹지도 가까웠다.
휴양지를 연상케 했다.
35층 고층에 바다전망이라 매일 여행 간 기분을 누릴 수 있었다.
날씨가 좋은 날은 바다 윤슬이 반짝이고
비 오기 전 해무가 끼는 날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신비로운 풍경도 펼쳐졌다.
주말이면 유람선의 불꽃놀이를 집 거실에서 관람할 수 있었다.
매일매일 여행 간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곳은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바닷가 앞인지 고층의 영향인지 바람이 심했다.
밤만 되면 기온이 너무 떨어져 비염이 심해지고
아이도 잠자기 전 매일 코가 막혀 힘들어했다.
차가운 공기가 매일 코를 찔러 코가 편한 날이 하루도 없었다.
멋진 야경이었지만 비염이 있는 내가 살기엔 적당한 곳이 아니었다.
훗날 문제는 나의 코가 아니라 환경인 것을 그 집에서 이사 나온 후에 알게 됐다.
다음 집도 특별하다.
이 집은 너무 고마운 곳이다.
첫째의 아토피가 이곳에서 완치됐기 때문이다.
신랑이 아이를 위해 산을 접한 아파트를 알아봤고
이 집에 이사해 일주일 만에 아토피가 깨끗이 완치됐다.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집의 특징은 앞은 바다, 뒤는 산을 접하고 있었다.
특히 아파트가 뒷산 산책로와 연결돼 있었다.
아토피를 낫게 한 건 역시 산의 역할이 컸다.
산 공기가 좋고 통풍이 잘 됐다.
이곳에 살면서 공기의 중요함을 알게 됐다.
공기는 중요하다.
공기는 가두지 말고 흐르도록 환기에 신경 쓰고
문을 조금 열어놓는 것이 좋다.
집 층수도 5층으로 안정감 있고 채광도 훌륭했다.
대형 평수에 현관으로 들어가기 전 전실이 있어
아이들의 유모차나 킥보드도 부담 없이 들여놓을 수 있었다.
산 공기는 건강에도 좋았지만 너무도 쾌적하고 시원했다.
여름밤은 에어컨 없이도 시원해 열대야는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아파트 내 조경도 친환경적이고 아름다웠다.
매일 밤 물 흐르는 소리와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잠들 수 있었다.
매일 바다를 유유히 떠다니는 배를 바라보며 아이들과 뒷산으로 산책을 나갔다.
하지만 완벽해 보이는 이 집에도 문제는 있었다.
겨울이 되면 바닷바람에 특히 산까지 끼고 있어 바람이 추워도 너무 추웠다.
아이가 어렸기에 우린 매일 난방을 했다,
하지만 확장한 대형 평수여서 인지 관리비가 너무 높게 나오는 것이다.(거의 월세 수준ㅜㅜ)
그래도 난방비를 아끼지 않고 틀었다.
하지만 절망적인 것은 아무리 난방을 해도 집이 따뜻해지지 않았다.
집이 커서 인지 온기라곤 없었다.
나는 난방비를 보며 생각했다.
여길 뜨자.
그래서 지금은 앞이 막힌 구축 아파트이다.
전망은 포기했지만 감기는 피할 수 있었다.
사방이 건물로 막혀 답답하지만 만족스럽다.
덕분에 겨울에도 공기가 따뜻하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우린 조용한 신도시를 선호했다.
'신도시는 장화 신고 들어가 구두 신고 나온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장화는 신었지만 구두는 신지 못했다.
우리는 완성형 도시보다 한적함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도시가 만들어지는 초기에는 불편했지만
한가로운 동네 분위기가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도시의 모습을 갖춘다.
휑했던 거리는 화려한 간판들로 채워지며
미분양 세대가 사라지고 아파트값이 오른다.
동네 풍경이 바뀌면서 우리 마음도 변한다.
차도 사람도 드물던 풍경이 그리워진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 변한 것 같은
우린 동네가 낯설다.
빽빽이 들어선 건물과
북적이는 사람들이 답답하고 견디기 힘들어진다.
그즈음 우리는 또 이상한 결심을 하게 된다.
여길 뜨자.
인프라가 갖춰지고
동네의 가치가 올라 집값이 상승하면
우린 허허벌판 한산한 동네를 찾아 미련 없이 떠났다.
어디든 돈 버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늘 중요한 순간에 이상한 결심으로
우린 그 행운을 비켜갔다.
그래서 우리는 장화만 신고 구두는 신지 못했다
이사를 자주 하며 얻은 장점이라면 집을 더 이해하게 된 것이다.
구축부터 신축까지, 역세권, 전망 좋은 곳 등 골고루 살아본 덕분에 이젠 굳이 살아보지 않아도 장단점을 파악하게 됐다.
바다전망 고층 아파트는 전망엔 좋지만 비염에는 나쁘다.
산 공기는 건강에 좋지만 난방비가 사악하다.
집 주위 대형 쇼핑몰은 편리하지만 주말마다 집 앞이 교통체증으로 번잡하다.
역세권은 교통이 편리해 집의 가치를 올려주는 최고의 조건이지만
주변 소음과 먼지 등으로 실거주 환경으로 좋지 않다.
고속도로 입구는 도로 진입이 편리하지만 집에 들어가기 위한 신호를 받으려면 길다. 특히 좌회전.
아파트 앞 동은 이동은 편하지만 사람과 버스 소리, 상가 불빛 등으로 불편하다.
오히려 뒷동이 조용해 만족도가 높다.
확장한 아파트는 탁 트인 느낌과 기능이 편리하다.
하지만 베란다 또한 매력 있다.
실내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실외도 아닌 과거 시골집의 평상이나 마루 같은 느낌.
구축은 베란다는 온도조절 그리고 환기시킬 때가 만족스럽다.
아이가 있다면 이사는 신중해야 한다. 꼭 해야 한다면 저학년 그리고 학기 초에 옮겨야 아이의 적응이 유리하다.
이사를 하며 얻게 된 또 하나의 장점은 집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버리게 됐다.
어디에 사느냐가 그 사람에 대해 말해준다고 하지만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화려한 곳에 살며 고급차를 끌고 다니지만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는 사람들과
오래된 아파트에서 똑똑한 투자로 자산을 늘려가는 사람들을 봐왔기 때문이다.
집도 사람과 같다.
보이는 모습보다 내면이 중요하듯
집 외형보다 내부를 정갈히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옷에 비유하자면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듯
이사 경험을 통해 집도 나에게 가장 편하고 어울리는 집을 고를 수 있게 됐다.
또 집은 주인이 나를 진정으로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고 있다.
이사 가고 싶다면 살고 있는 집의 단점보다 장점을 봐야 한다.
지금 살고 있는 집과 환경에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좋은 주인을 만날 수 있도록 마음을 내야
집과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다.
이사를 자주 다니며 생긴 단점은 한 곳에서 오래 사는 것이 단조롭게 느껴진다.
동네에 적응이 됨과 동시에 지겨워진다.
대개 2년 주기로 동네의 풍경이 지겨워지고 사소한 일에도 여길 뜨자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사란 아이들에게 낯설고 힘들 수 있기에 초등 이후로는 무조건 신중해야 한다.
집이 그저 필요해 살았던 시간을 지나 집을 통해 가치를 높이고 싶은 욕망의 시간도 지나왔다.
지금 나에게 집은 무조건 편하게 쉬고 싶은 곳이다. 어쩌면 집의 본래의 기능으로 돌아온 것이다.
요즘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 마당 있는 집에서 살지 않았던 것이 후회된다.
다시 돌아간다면 아이들 초등 입학 전까지는 마당 넓은 집에서
마음껏 햇빛도 쬐고 흙 놀이도 하며 살고 싶다.
첫째는 학교와 친구들이 가까이 사는 아파트를 가장 좋아하기에
아이들이 공부할 동안은 아파트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 서운하다.
이사를 하는 것은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것과 같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행복하듯
새로운 집엔 더 즐거운 일이 생길 것 같다.
아직도 나에게 이사는 설레는 일이지만
아이들을 위해 좋은 인연을 오래 유지하는데 노력할 것이다.
그래도 내가 살고 싶은 집을 그려보며 상상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