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하루는
먹거리를 차리고 치우는 것으로 시작하고 끝이 나는 것 같다.
하루 세끼 중 내가 가장 공들이는 식사는 아침이다.
남편은 간단하게 먹고 요즘 한창 성장 중인
둘째는 무엇이든 불평 없이 잘 먹는다.
문제는 첫째이다.
사춘기에 접어든 여자 아이다 보니
특히 아침 식사시간에 까탈스러울 때가 있다.
아이에게 아침밥은 잠에 양보하고 싶고
건너뛰고 싶은 그 무엇이다.
특히 여자라서인지 머리 만질 시간은 있지만 밥 한 술 뜰 시간은 없다.
거울 앞에서 시간을 보내며 아침밥을 계속 미루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애가 탄다.
매일 아침밥 먹으라는 나의 소리에 아이는 예민하게 반응하더니 굶고 가는 날도 많아졌다.
아침 먹으라고 달래도 보고 야단도 쳤지만 나의 애가 탈수록 아이는 더욱 냉담해져 갔다.
아이는 학교로 향하고 식탁 위 밥은 차갑게 식어 간다.
주인 없이 덩그러니 놓인 밥은 참 초라하다.
빈속에 학교 가는 길이 허기질 텐데
수업은 어떻게 들을까?
아이가 아침을 굶고 가는 그날은 하루 종일 한숨이 나온다.
나의 끼니를 마주할 때마다 아이의 놓쳐버린 그 초라한 밥상이 자꾸 떠오른다.
그래서 아침 풍경을 바꿨다.
아이의 아침밥을 강제할 수 없으니
최대한 아이가 스스로 먹고 싶은 아침상을 차렸다.
정갈한 한식.
가장 고급스럽고 단아한 그릇에 부담스럽지 않은 양의 밥을 담고 국도 놓았다.
메뉴도 자주 먹는 음식이 아닌 호기심이 생길만한 새로운 음식들로 꾸몄다.
밥이 부담스러우면 대신 먹을 수 있도록
빵과 과일은 화려한 접시에 곁들였다.
마치 손님상을 차리듯
아이가 밥을 강요받는 것이 아닌
대접받는 기분이 들게 해주고 싶었다.
밥 먹으라는 소리는 멈추고 아침식사만 차려두고
나의 일을 하고 있으면
어느 새 아이는 식탁에 앉아 자신의 끼니를 먹는다.
그렇게 우리의 아침 밥상엔 평화가 찾아왔다.
하지만 오늘은 아이가 먼저 말을 건넨다.
"엄마 미안해요. 오늘은 학교 행사 때문에 일찍 가야 해서 친구랑 편의점에서 먹고 가기로 했어요."
오늘 나의 아침상은 편의점에 밀렸지만 그래도 엄마의 실망한 마음을 위로해 줘 고맙다.
아이의 아침밥에 웃고 우는 나를 보니 나는 나의 엄마를 떠올렸다.
가난한 집에서 삼 남매를 키운 엄마는 오롯이 자신의 밥으로만 아이들을 먹여 키웠다.
외식을 한 적도 아침 차리기를 거른 적도 없었다.
우리 집에선 자식들의 성적보단 아침밥이 중요했다.
시험 치는 날도 시험 잘 치라는 말 대신 아침밥은 꼭 먹고 가라고 야단이다.
제철 음식으로 차려낸 밥과 국, 반찬들로
나의 아침은 소박하지만 풍요로웠다.
자식은 이미 성장했지만
엄마의 끼니 걱정은 지금도 이어진다.
엄마는 여전히 나를 만나면 남편과 아이들 밥 잘 챙기고 굶지 말고 다니라고 잔소리한다.
먹을 것이 넘쳐나는 시대에 왜 엄마는 늙어서도
밥 걱정을 할까?
나는 그 걱정이 참 지긋 지긋했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자식이 밥을 굶으면 부모 몸과 마음의 에너지는 빠진다.
그 허기짐은 부모에게 쓸쓸함과 처량함으로 다가온다.
따뜻한 국에 밥 한 그릇 뚝딱하는 자식을 보면
부모는 행복한 포만감을 느낀다.
허기지면 먹고 싶은 욕망이 생기 듯 아이의 밥은 부모에게 채우고 싶은 욕망이자 행복이다.
얼마 전 아이와 요즘 유행하는 프로그램인 '흑백 요리사'를 시청했다.
아이는 음식이 작품 같다고 파인 다이닝을 먹어보고 싶다 한다.
그런 아이를 보며 나는 먹지 않아도 되니 파인 다이닝 요리사가 되고 싶다 생각했다.
엄마가 유명 셰프처럼 매일 아침을 차려주면 너는 아침밥을 굶지 않을 텐데
내 엄마의 끼니 걱정을 잔소리처럼 여긴 나의 모습은 아이에게 전해지고
엄마의 밥 걱정은 나에게로 이어져 입맛 없다고 하는 아이의 투덜거림에도 매일 나는 밥을 차려낸다.
부모 앞에서 밥 한 끼 든든하게 먹는 모습만 보여줘도 효도인데
자식이라는 존재들은 참으로 까탈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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