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지방에는 벌써 꽃이 피었어요

by 행커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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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부드러운 쌀 과자 같은 꽃 한 송이를 발견했다. 안 그래도 오늘은 어제보다 날이 풀렸다는 생각을 하면서 발을 재촉하던 참에 꽃 하나가 이렇게 톡 핀 것을 보니 괜히 뭉클한 마음이 든다. 이렇게 꽃이 피어나고 새순이 돋는 걸 보면 나무가 생명이라는 것이 새삼스럽다. 그렇다. 도로 갓길을 따라서 장식처럼 울타리처럼 심긴 나무들은 햇볕과 바람에 이렇게나 민감한, 날씨를 온 존재로 끌어안고 살고 있는 생명이다.


평소에 생각을 자주 하지만 연락을 잘하지는 않는, 막상 연락을 하면 딱히 나눌 이야기는 없는 지인들이 모인 단체 채팅방에 "남쪽 지방에는 벌써 꽃이 피었어요"라는 말과 함께 위 꽃 사진을 보냈다. "서울은 아직 추운데.", "입춘이 지났다더니 벌써 꽃이네" 등의 답을 빠르게 읽으면서 다시 꽃을 바라봤다.


꽃과 나무는 계절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을 존재 자체로 조용하고 분명하게 표현한다.

나는 꽃이나 나무와 달리 시끄럽고 부정확한 사람이라서 '날이 풀려서 겨우내 움츠리던 허리와 무릎이 부드럽게 풀어졌다.'는 느낌을, '이 정도 온도면 깨끗하게 차가운 하늘을 보면서 벤치에 앉아 따뜻한 커피는 마실 수 있겠는데.'는 생각을, '참 길게 느껴졌던 겨울이 어느새 이만큼은 물러갔다는 생각에 괜히 뿌듯하고 이상하게 슬퍼져서 당신들이 보고 싶기도 하다.'는 말을 꽃 사진을 툭 보내는 것으로 대신한다.


"여러분 남쪽 지방에는 벌써 꽃이 피었습니다."


이 꽃 덕분에 나는 오늘 아침 잠깐 확실하게 행복했다.

나무가 숨 쉬고 꽃이 피는데 내가 보탠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나는 꽃을 보면서 즐겁고 반가운 감정을 느꼈고, 평소에는 게을러서 잘하지 않던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잠깐이지만 나에게 온전히 집중했고, 꽃 사진 덕분에 오랜만에 지인들에게 연락까지 했다. 우연히 만난 꽃에게 염치가 없을 정도로 나는 꽃에게 많이 얻어갔다.


자연이 내리는 축복은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자연이 자연 그대로 존재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안 했으면서도 자연의 모든 것을 공짜로 누리는 것에 오는 만족감. 오늘 작은 꽃에게 내가 값을 치르지 않고 받은 것을 보면 거저 얻는 것은 없다는 옛말은 아주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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