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시간

by 행커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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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방에 새로운 친구를 데려왔다.

애인과 함께 겨울 철새를 보러 간 저수지 옆에 비닐하우스로 된 화원이 하나 있었다.

화원 앞에는 식물들이 계란판 같은 곳에 하나씩 가지런히 꽂혀있었고, 그 앞에는 "천원"이라는 푯말이 있었다.


천 원이면 거저 아닌가 하는 마음에 들어간 화원에서 한 참을 고민하다가 다육식물과 화분을 두 개씩 골랐다.

작은 파인애플이 두 손을 뻗고 있는 모양인 앙증맞은 다육식물과, 작은 몸집이면서도 파란 잎이 꽤 풍성해서 나무를 보는 것처럼 시원한 느낌을 주는 씩씩한 다육식물이 나와 애인의 마음에 쏙 들었다.


다육식물을 고를 때보다 다육식물이 살 화분을 고를 때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화원에 구비된 화분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그간 다육식물을 끝까지 잘 키워내지 못했던 경험 덕에 이제는 화분을 보는 눈이 생겼기 때문이다.


화분은 적어도 일 년은 분갈이를 해주지 않아도 식물이 답답하지 않을 만큼 낙낙해야 했다.

그리고 다육식물의 뿌리가 잘 뻗을 수 있도록 높이도 있어야 했다.

자취방의 낮은 창틀에 올려두어도 볕을 잘 받을 수 있도록 화분 밑에 발이 있으면 더 좋았다.

게다가 나는 유약처리가 되지 않아 흐린 색과 거친 질감이 그대로인 화분을 선호해서 그런 것만 찾았다.


한 참 이 화분 저 화분을 들어보면서도 선뜻 하나를 고르지 못하니 결국 사장님께서 박스 안에 담긴 새 화분 몇개를 더 꺼내 보여주셨다. 사장님이 박스 속에서 꺼낸 화분들 중에서 나는 사진처럼 손으로 만지면 차갑고 까슬한 느낌이 참 좋고, 다육식물이 쑥쑥 자라기에 크기와 높이도 적당한 화분 두 개를 찾을 수 있었다.


작은 파인애플 모양의 다육식물의 이름은 "시간"으로, 땅땅한 나무 모양의 다육식물 이름은 "자유"로 정했다.

시간과 자유는 새 화분에 옮겨심겨졌고 막상 계산을 하려니 값이 만만치 않았다.

나는 역시 천 원짜리 아메리카노를 파는 커피숍의 카페라떼는 사천오백 원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사장님이 덮개를 자른 비타오백 종이박스에 담아서 조심히 건네주는 시간과 자유를 잘 받아 들었다.


자동차가 과속방지턱을 덜컹거리고 넘을 때마다 마음을 졸이면서 조심히 데려온

나의 소중한 "시간"과 "자유"는 지금 내 자취방의 창틀에서 살고 있다.

내가 데려오면서 분갈이를 했으니 새로운 화분에 적응하느라 꽤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화원과는 기온도 습도도 다른 내 자취방에도 적응해야만 할테니 몸살을 앓고 있을지도 모른다.


"시간"은 내가 보내는 모든 시간들을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자유"는 나에게 항상 크고 깊은 자유가 넘실거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각각 붙여준 이름이다.


다육식물과 내가 소통하거나 공감하는, 서로 공명할 수 있는 존재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이 다육식물들에게 "시간"과 "자유"라는 이름을 붙여준 이상 이들은 나와 관계 있는 생명이 되었다.

"시간"과 "자유"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 만으로도 나를 조용히 웃게 하거나 마음의 평온을 주는 생명이다.

아마도 나는 그들에게 그런 존재는 못 될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시간"과 "자유"가 나에게 무해한 만큼 나도 이들에게 무해한 생명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랑을 주는 내 모습에 취해서 물을 지나치게 많이 줘서 뿌리를 썩게 만들거나

출근할 때 블라인드를 걷어주는 작은 배려도 잊어서 하루 종일 어둑한 방 안에 두지는 말아야지.

계속 "시간"과 "자유"가 파랗고 통통한 잎과 씩씩하고 곧은 줄기를 가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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