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된 자기라는 허상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하는 거짓말과 우리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은 인간의 삶, 편안함, 자기기만에 필요한 동일한 과정의 일부이다." 니체의 『유고 (1870년-1873년)』 中에서
사람들은 왜 거짓말을 할까. 속이려는 의도가 뚜렷한 경우도 있지만 자기도 모르게 즉석에서 무의식적으로 거짓말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상황을 모면하려는 순간적인 의도의 거짓말은 진실이 아닌 것을 뻔히 아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자기기만에 가까운 거짓은 대개 방어기제 중 하나로서 작동한다. 진실을 감추려는 심리는 말로 표현되거나 관념으로 자리 잡는데, 자신을 대상으로 하기도 하고 타인을 대상으로 하기도 한다. 가장 속이기 쉬운 대상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다. 자신을 속이는 일에 성공하면 그것은 타인까지 속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감정을 속이기도 하고, 생각을 속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 사실을 왜곡하기도 한다. 우리는 흔히 화난 표정으로 화난 게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을 자주 볼 수 있고, 시기심이나 질투 등의 감정을 의식적으로 억압하다가 의외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자주 접하게 된다. 많은 경우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인식되는 것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억눌리거나 왜곡된다.
거짓말은 근본적으로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입가에 불량식품의 흔적을 잔뜩 묻히고 먹지 않았다고 잡아떼는 아이의 거짓말은 엄마의 꾸중에 대한 두려움에서 만들어지고, 관계 단절에 대한 두려움으로 외도를 숨기고 가짜 알리바이를 만들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타인에 대한 거짓은 들통날 확률이 높은 반면, 자신에 대한 거짓은 주체와 객체가 동일하다 보니 밝혀지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을 가까운 타인이 알아챈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을 속이는 자는 진실을 직면하는 고통이 두려워서 택한 차선의 선택이겠지만 그로 인해 가족관계 같은 근거리에서 다른 사람이 고통을 받는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질 수 있다.
살다 보면 슬픈 일도 있고 기쁜 일도 있겠지만 종합적으로 볼 때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불행하다고 여기는 나의 엄마에 대한 기억은 어두운 표정과 생기 없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엄마의 행복에 대한 기준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훗날 친척들이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 시절 일반적인 성장환경의 기준에 크게 못 미치지는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행복과 불행이란 게 상대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엄마는 자신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 성장환경과 원하지 않는 상대와 어쩔 수 없이 결혼한 것을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불행으로 여겼다. 그리고 그에 대한 자신의 주관적인 견해와 감정을 지속적으로 자식들에게 토로했고, 때로는 투사하기도 했다. 어렸을 때는 자신을 둘러싼, 자신의 행복을 방해하는 가해적 요소와 인물에 대한 엄마의 견해를 그대로 수용했으나 차차 성장하면서 그 내용이 진실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엄마는 자신의 불행에 대한 주체로서의 자신을 인정하기 두려운 나머지 모든 화살을 외부로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 불행의 원인을 순전히 외부적 요소로 돌리게 되면 자식의 불행을 돌보지 못한 것까지 정당화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의 방어기제는 점점 더 강화되어 갔다. 그러한 피해의식적 합리화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자식들을 사랑으로 돌보라는 종교적 억압과 연계해서 더 악화되는 경향을 띠었다. 엄마의 방어기제를 깨뜨리려는 나의 노력은 엄마의 잘못된 인식으로 인한 자식들의 피해를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취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엄마는 더욱 괴로워하면서 도망쳤고 신념과도 같은 자신의 피해자로서의 삶을 수정하기 두려워했다. 아마 수십 년 넘게 갖추어 온 방어기제를 깨뜨리는 과정 앞에서는 (실제와는 차이가 있으나) 자신의 온 인생이 다 부서져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설 것이다. 만발성 분열증세까지 보인 엄마는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느니 남은 인생을 약물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나머지 가족들은 현재로서는 그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식을 낳고 기르면서 느낄 수 있는 기쁨을 알지 못한 엄마의 불행을 바라보면서 불행을 불행으로 이어 가지 않고 아픔을 아픔으로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기울인 나의 노력만은 성공하기를 바랐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속이지 않기 위해서는 두려움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타인과 환경에 영향을 받아 자신이 스스로 세운 자기상像이 뚜렷한 사람일수록 타인에게 바라는 각 역할로서의 像 또한 엄격할 수밖에 없다. 마음을 온전히, 평생 지배하고도 남는 관념 때문에 한 순간도 온전한 자신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아가는 관념적 노력은 부수고 덧붙이고 수정하기를 반복하는 과정과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일찍부터 조금씩, 미루지 않고 이 작업을 해 나가다 보면 한꺼번에 크게 깨뜨려서 전면수정하는 아픔을 겪지 않을 수도 있다.
세상에 온전하고 완벽한 것은 없기에 나름 최선의 노력을 한다고는 했으나 나의 선조들로부터 받은, 보석이에게 미쳤을지도 모를 부정적인 영향은 배제할 수 없다. 역순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나의 부모의 삶과 그 삶에 영향을 받은 나를 되돌아본 것은 보석이를 키우면서 비로소 본격화되었다. 보석이의 성장과정은 매 순간이 나에게는 거울과 같았다. 현재의 나를 비추는 거울이자, 과거의 나, 혹은 그 보다 더 먼 과거까지 비추는 거울이었다. 진실을 드러내고 행여 진실을 은폐한 거짓과 싸우고, 드러난 진실과 마주하는 신비의 거울이었다. 과거의 사실은 돌이킬 수 없으나 과거에 대한 생각은 돌이킬 수 있다. 현재가 과거를 바꾸고 그로 인해 미래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래서 예전보다는 좀 더 편한 나 자신이 될 수 있었다. 가리고 감출 것이 줄어들었으니 훨씬 홀가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솔직한 엄마로 보석이에게 기억되기를 바라며, 보석이가 자신을 찾아가는 길을 걸을 때 엄마에 대한 기억이 긍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하기를 바랄 뿐이다. 나아가 진실을 마주하는 두려움은 실제 보다 첫 발을 내딛는 문 앞에서 가장 크게 느낀다고 말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