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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착오를 지켜보는 마음

실패에 대한 양가감정

by 리좀

“우리는 '나처럼 해봐.'라고 말하는 사람 곁에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오로지 '나와 함께 해보자'라고 말하는 사람들만이 우리의 스승이 될 수 있다. 이들은 따라 해야 할 몸동작들을 보여주는 대신 다질적인 것 안에서 개봉해야 할 기호들을 발신하는 방법을 안다. - 질 들뢰즈 『차이와 반복』 中에서 -


경험이 많은 사람은 축적된 정보량으로 인해 확률적으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누군가에게 조언을 하기 쉬운 위치에 있는 사람은 관련된 경험이 많은 사람일 것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양육자는 피양육자와의 밀접한 관계에서 상당량의 조언을 행할 가능성이 높다. 일방적일 수도 있는 그들의 조언은 때로 약이 될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독이 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양육자는 자신이 양육하는 존재에게 끊임없이 주의사항을 알려주면서 그들이 최대한 시행착오를 덜 겪기를 희망한다. 거기에는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의 경험을 실수나 낭비라고 생각하면서 자기가 살아온 방식보다 더 효율적으로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경험은 단지 다른 사람이 전달하는 주의사항만으로 체화될 수 없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고, 타인의 조언은 자신의 경험을 위한 필수지침이라기보다 참고자료에 속해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피양육자에 대한 간절한 조바심 속에서 사는 양육자를 흔히 볼 수 있다. 비효율적일 수 있어도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할 수 있게 지켜볼 수 있는 여유가 없어져버린 경우이다. 왜 그렇게 스스로 할 수 있는 것까지 일일이 간섭하고 지시하냐고 물어보면 가능한 한 자신이 아끼는 존재가 시행착오를 겪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안타까운 눈빛으로 말한다. 많은 경우 그 눈빛 안에는 속도와 경쟁에 쫓겨 각박하게 살아온 자신이 삶이 담겨 있다. 한 편으로는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어찌 보면 단편적이고 근시안적인 '당장의 마음‘에 속한다. 어마어마한 시간 차이 때문에라도 부모보다 더 잘 선택할 수 있는 자식은 없어 보인다. 특히, 자식의 나이가 어릴수록 더 압도적이다. 때로, 효율성이라는 외피를 입은 감정이 독으로 작용한 방식 뒤에 따라올 부작용은 후에 더 큰 비효율을 낳기도 한다. 그것은 이미 효율과 비효율의 문제가 아니다.


반항심이 극에 달했던 사춘기 시절, 보석이는 엄마가 하는 말에 대해 일단 반박을 하고 나서, 그 근거를 찾는 방식을 자주 취했다. 엄마의 경험과 그에 따른 판단을 믿지 못하겠으며, 엄마의 경험과 자신의 경험은 결코 같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일견 맞는 말이어서 나는 엄마의 경험치는 그렇게 간단하게 무시할 수만은 없는 것들이라고 말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부모의 방식이나 의견에 의문을 제기할 때마다 번번이 압살 당하고 풀 죽어했던 나의 경험이 오히려 보석이에게 반항의 틈을 조금이나마 열어줄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한 것도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른 후에야 보석이가 겉으로 또박또박 부정하는 표현을 했던 엄마의 조언을 속으로는 은근히 참고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시절, 혹은 그 이후에 걸쳐 표현된 보석이의 반항심이 모두 소중하게 느껴지고, 더 나아가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기 생각의 틀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기존 생각의 틀에 대한 의문이 들어야 하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하며, 나아가 실행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는 수정과 재구축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유연성과 확장성을 키우게 된다.


들뢰즈의 말처럼 배움은 일방적인 따라하기나 동어반복이 아니다. 스승은 제자에 대해 '내가 너보다 좀 더 많이 알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정답은 아니야'라는 마음으로 함께 답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상황에서 우리는 '그것은 잘못됐고,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거야'라는 생각과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우리를 이렇게 지시-복종적으로 만든 것들로는 주입식 교육과 여전히 건재한 권위주의적 조직 문화, 다양성에 대한 부족한 담론, 획일적인 성장주의 신화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무비판적으로 습득된 가치관은 대를 이어 전수되면서 상당한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시행착오를 거쳐 자신의 경험을 내재화할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은 외부의 뚜렷한 지침이 없으면 불안해하면서 쉽게 흔들린다. 존재하지 않는 수많은 옳고 그름의 갈림길에 자신을 세워두며 선택할 방향을 위한 정량화의 정보에 집중한다. 물론, 만고불변적 진리의 상황도 있기는 하지만 무언가를 배운다(답을 찾아간다)는 것은 그보다 더 열려 있어야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 여기서 변화란 거시적 흐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 자체가 하나의 변화와 생성의 단초가 되는 미시적 상호작용까지 포함한다.


때로 선택의 갈림길에서 어려움을 겪는 피양육자는 자처해서 양육자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네가 마침내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나의 조언을 구하는구나'라는 태도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 가능한 한 덜 주관적인 시각으로 재조명하며 피력하는 것이다. 모든 경험은 일정 부분의 근접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나, 모두 개별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확실한 답을 찾지 못해 불안하겠지만 해결책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는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다. 시행착오를 거쳐 자신만의 생각을 만들어가는 역량은 이러한 아슬아슬한 불안을 기반으로 생성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면시켜 주는 힘든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힘듦은 정서적으로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강도가 높을 수 있다. 확실한 답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눈앞에 보이는 불안감을 해소해 주고 싶어서 자신만만하게 '내가 겪어봤는데 이렇게 하기만 하면 전혀 문제없어'라고 말하고 싶은 굴뚝같은 마음. 그런 마음을 숨긴 채 스스로 잘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말로 대신하면서 불안을 극복해 가기 바라는, 안타까운 애정을 언젠가 보석이가 알아주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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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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