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선에서 자신을 지키기
"건전한 자의식을 가진 사람은 스스로가 느낀 감정과 욕구들이 자신의 자아에 속하는 한 부분이라는 것을 의심 없이 확신한다. 그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길 때 우리는 지지기반과 자기 존중감을 갖게 된다. - 중략- 그렇게 되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를 알고, 사랑을 받든 미움을 받든 거기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다." 엘리스 밀러 『천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의 드라마』 中에서
양육자의 대부분은 피양육자가 많은 사람들에게 되도록 좋은 평판을 받기 원한다. 그런 양육자일수록 다른 사람들의 평판에 민감할 가능성이 높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그런 행동을 하면 사람들이 욕한다.’, ‘남들 보는 눈이 있지’, ‘모난 돌이 정 맞는다 ‘,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가 따로 있는 것이다’ 등등 비슷한 류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 절대로 손가락질받을 짓을 해서는 안되고, 그러려면 남들 하는 만큼의 중간쯤 어디엔가 행동의 기준점을 마련해야 한다. 문제는 그 기준이 얼마나 엄격하게 고정되어 있느냐인데 엄격하면 할수록 자신의 욕구와 생각이 억눌려야 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남들 하는 것을 살피고 따라 하는 일에 익숙하다 보면 정작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기회를 잃게 될 수도 있다. 나의 욕구와 소망과 취향을 파악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공들여 다양한 시도를 해 보아야 하고, 많은 부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 자칫하면 평생 알지 못할 수도 있고, 오랜 기간에 걸쳐 오해할 수도 있다.
남들이 의문시하지 않는 어떤 상황이나 조건에 불편함이나 반감을 느끼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바가 고개를 들기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동반하면서도 그것을 압도하는 의문과 질문으로 촉발되기도 한다. 선택권을 생각하기 전에 이미 정해진, 모두가 의심 없이 감내하는 부분에 대한 궁금증은 다른 방법에 대한 강구로 이어지기도 한다. 틈새 교복 자율화를 겪은 세대라 한 번도 교복을 입을 기회가 없었던 나는 교복 착용에 대한 불편함 혹은 편리함을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교복을 맞추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보석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잘 몰랐다. 초등 고학년시절부터 아예 치마를 입지 않았던 터라 치마에 대한 불만이 상당했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교복바지를 입으면 안 되냐는 말을 무심코 던졌다. 그러자 보석이는 여학생이라고 반드시 교복‘치마’를 입어야 한다는 교칙이 없다는 것을 알아내고 치마대신 남학생들이 입는 교복 바지를 입겠다고 선언했다.
전교에서 교복 바지를 입고 다니는 여학생이 보석이 한 명만은 아닐 것이라는 기대, 눈에 잘 안 띄어서 그렇지 찾아보면 교복 바지를 입고 다니는 여학생이 더 있을 것 같은 희망이 먼저 떠올랐다. 예민한 시기에 튀는 행동이 아닐까 하는 염려도 살짝 들었으나 그런 생각이 먼저 든 스스로를 반성하면서 보석이에게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기로 했다.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지 않는 보석이의 행동에 대한 우려와 근심이 부끄러웠다. 오히려 보석이의 서슴없는 용기와 강단을 대견스러워야 하는데 바로 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나의 부족함이었다. ‘잘 한 결정이다’라고 말하며 같이 교복을 맞추러 갔을 때의 내 표정이 기억나지 않지만 긍정의 표현을 더 강하게 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기호나 생각이 바뀌면 한 번쯤 치마를 입어 보겠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후 보석이는 중고등 6년 동안 한 번도 치마를 입지 않았다. 보석이가 필두가 되었는지 아닌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이후 치마에서 바지로 교복을 바꿔 입은 여학생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교복 치마와 바지에 대해서는 이렇게 애써 회상을 해야 비로소 기억날 정도로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이 되어 버렸다.
학교생활에 대해 시시콜콜 말하지 않는 성격을 가진 보석이가 가끔 던졌던 의미심장한 말 중에 하나는 ‘학교는 평등하지 않은 곳’이라는 말이었다. 더 자세히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말한 이유는 아마도 학교가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위계적으로 나뉘어 있는 조직이어서라고 짐작했다. 그리고, 차차 개선되고 있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관습적으로 남아 있는 남녀 학생 간의 불평등적 요소를 느꼈을 수도 있다. 다른 아이들보다 보석이가 더 민감하게 느꼈을 수도 있지만 무시할 수 없는 감정이어서 그보다 더 어려운 시절을 겪은 나로서는 동의한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반장은 남학생, 부반장은 여학생이 하게 되어 있었고, 아무도 그런 규칙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혹은 못하는 시절을 지내왔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규칙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학교를 벗어나면 불평등한 상황을 학교에서보다 더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위계는 어디서든 존재하고 관습도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좋은 평판을 얻으려면 불평등을 감내하며 부적절한 상황에도 잘 적응해야 하겠지만 그것은 보석이와 내가 서로 동의하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불평등의 문제는 앞으로 계속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가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커뮤니티에 ‘이 정도면 괜찮은 신부/신랑감인가요?’, ‘몇 살의 나이에 재산을 이 정도 모았으면 괜찮은 편인가요?’, ‘어느 정도의 집에 살면 괜찮다고 볼 수 있나요?’ 같은 헛웃음 나오는 질문에 열심히 답을 다는 글을 보기도 한다. 기껏 해봐야 손바닥 만한 구역 안에서 기준점도 없는 좌표를 찍기 위해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느라 마음이 얼마나 불안정할까 싶었다. 자신의 시각은 사라지고 타인을 통해 바라보는 시각만 남으면 끊임없이 타인의 기준을 타진하고 맞춰가느라 허덕일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애매한 타인의 기준점을 맞추었다고 해도 만족감이 들기보다 더 불안해질 것이다. 자신을 일정한 틀에 가두고 그 단계를 지나면 또 다른 틀로 옮기는 시선은 타인이 아니라 스스로가 만든 시선일 가능성이 높다. 살아가는 데 있어 무게중심이 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을 보석이가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게 하기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해 왔고, 해야 하는지, 혹은 어떤 점에 유의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