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가롭고 우연한 오후 길을 걷다
달큰한 계수나무잎 향기에 부딪히고서야
비로소 오래 잊은 마음 있는 줄 알게 되었네
바쁜 일상에 숨죽이느라 기척 못 낸 마음
어느덧 시 한 방울 맺히지 않는 마음
멜로디 한 가닥 스미지 못하는 마음
휘황하게 웅성거리는 잡설에 가려
드러나지 않는다고 없는 듯 살고 있었네
無心에 익숙한 듯 소리마저 잃은 채
상처받느니 차라리 숨이 멎겠다고
옅고 밭은 숨소리도 내지 않고 있었네
마음 쓰지 않고 일을 하고
마음 주지 않고 사랑을 하고
마음 한 줌 없이 웃고 떠드느라
한참 동안 겸연쩍은 마음 송두리째
자취를 감춘 것도 알지 못했네
늦은 저녁 마음이 빠져나간 자리에
속절없는 바람 불어와 옷깃 여며도
찾지 않았네 너의 부재에 눈 돌린 나
차라리 잘 된 거라 생각한지도 모를
죄책감마저 같이 사라지길 바란 듯
마음 없이 성긴 하루하루를 보냈네
마음이 없어도 살아낼 수 있다는
허황된 꿈으로 네가 없는 자리를
가득 메운 설익은 포만의 밤들
물밀듯 한 헛헛함 견디지 못해
번쩍이는 것들로 채워 넣을수록
더욱더 비워지는 무저갱 속
마르고 갈라진 마음의 바닥에 닿기 전에
어서 돌아오기를
모멸의 시간을 견딘 가여운 마음 이제
나의 늦은 참회를 받아주길 고통에
숨이 멎더라도 두 손 꼭 잡고
같이 아파하겠다는 다짐
믿어주길